Trotsky의 모순세계

  [추방된 예언자](그동안 아이작 도이처의 [무장한 예언자]의 책 본문에 의거해서 [추방당한 예언자]라고 써왔는데 이번에 번역된 책의 제목은 "된"이더군요. 이번 기회에 수정.)를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처음 [무장한 예언자]를 접하고 들었던 묘했던 감정의 흐름이 이제 흐느낌이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학교에 다니던 당시 선배며 후배 동기들이 사회주의의 역사(이론이 아닌)에 대한 별다른 고찰이 없이 당장의 행동에만 역점을 두었던 시절이라 그들과 술자리 합석이나 학술적인 댓거리 참석 외에는 거리를 두고 지내던 때 접했던 그 책에서 받은 느낌은 "이렇게 해서 되는 것일까?" 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왜 그는 그러한 엄청난 성취를 레닌과 함께 일궈내고도 사후 오랜 기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존재해야 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무장한 예언자]를 91년 하반기에 읽은 뒤 그의 저작을 찾아 헤매다가 [평가와 전망 and 연속혁명(당시는 영구혁명으로 불렸던)]을 군대가기 전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평가와 전망]은 1906년 경의 저작이니 그의 인생에서 전성기를 들어가기 전에 만든 것이고 [연속혁명]은 그가 중앙아시아의 오지 알마아타로 유형당하고 나서 만든 것으로 다분히 자신의 사상에 태클을 건 한때 동지의 "배신"에 대한 자기변호성 글이다 보니 그의 "현실"을 보는 데는 어려움이 적잖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연속혁명]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10여 년 가까이 지나 새로운 판본이 나오고서야 가능했죠.
  제대 후에도 기회가 날 때마다 그의 저작을 찾아다녔지만 서점에서 서서 읽은 [만화로 본 트로츠키]가 고작이었습니다. 어쩌다 서점에서 접한 두어 권의 책([반파시즘 투쟁]과 [배반당한 혁명]은 서문 및 본문에서 너무나도 심하게 뒤섞여 있는 혼란의 시대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던데다 생계 문제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기였기에 도저히 읽혀지지 않았고 그래서 구입하는 것도 상당 기간 포기했었다죠(지난 해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국 그 두 권은 구입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저작으로 [러시아 혁명사]를 접했고 당시 풀무질 출판사에서 나온 1권을 구입했지만 후속 권들이 나오지 않아 발을 구르다가 결국 상중하 3권으로 나오게 되면서 그 한을 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저작은 그가 터키로 추방당하여 프린키포 섬에서 망명생활의 초반기를 보내면서 만든 것으로 정작 그가 추방당한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었죠.

  그랬기에 아이작 도이처가 쓴 [예언자] 시리즈의 나머지 두 권이 절실했습니다. 오죽하면 제대 후 학교도서관에서 찾은 [비무장한 예언자]의 영역본을 제본까지 해 가면서 읽어 보려는 시도를 했을 정도니까요. 물론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집을 나오면서 그 책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죠.
  결국 지난 해 말에 [무장한 예언자]가 새로운 출판사에 의해 빛을 보게 되면서 다른 두 권도 곧 나오겠지 하는 심정이었는데 근 반 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무척 다행이었죠.

  그의 승리에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패배의 불길한 기운... 그리고 결국 레닌의 후광에 기대지 않고 진정한 민주적 대의를 통해 사회주의 러시아를 이끌고자 했으나 편견과 정치적 야합에 한번 좌절하고 상대의 기만을 눈치 못채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치고 만 트로츠키, 과연 그가 레닌 이후의 러시아를 장악하였다면 과연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궁금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나 그 작품을 모체로 영화화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와 같은 호사가의 뒷담화에 불과할 뿐이겠죠. 어쩌면 그의 패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아이작 도이처의 책을 보면서 마음 속에 이입된 트로츠키의 인성적 측면에서 그는 패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거기에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예언했고 또 노력했던 여러 가지 안건과 방향이 인류 역사에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한 회의도 드는 것이 사실이랍니다. 일부 분야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저에게 난해한 측면도 있어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점도 인정해야겠죠.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신을 러시아혁명의 대의와 일치시켜 일인독재의 방향으로 치달려 간 스탈린과 달리 러시아혁명의 일꾼으로 스스로를 낮춰 혁명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나간 것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추방당한 이후 어디에서도 자기 자신을 환영해 주지 않는 세계에 절망하면서도, 자신의 편이 줄어드는, 심지어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잃는 비극 속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대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모든 곤경 앞에 노출시켜 가면서 싸운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더군요. 또 그의 오류와 실수, 실책, 시행착오와 잘못을 가감없이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준 아이작 도이처의 문체에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보아 온 인물평전 내지 위인전 형태의 책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냉정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요. 아마 이 점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정치꾼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그리고 그들의 "죽은 채로 살아 있는 이"의 전기를 써 준 이들에게도 나름 반성의 기회가 되었으면 싶네요.

  작년에 재구입해서 다시 읽을까 하는 심정으로 [무장한 예언자]를 책꽂이에서 꺼내들었는데 생각을 바꿔 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수 년 전에 읽다가, 또 베끼기 작업을 하다 포기했던 그의 저작인 [러시아혁명사]의 나머지 부분(상권은 다 읽었고 베끼기는 초반과 막판 일부 장, 하권은 다 베끼면서 읽었지만 중권은 거의 손을 안 댔다는)을 읽을까 합니다. 물론 전철 출퇴근길에 읽기엔 버거운 감이 들기는 하지만요. 정 안되면 새벽에 베끼기라도 하면 되겠거니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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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 내의 서술형문제 자료집의 답지 작업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한 상황, 거기에 교재연구 작업도 거의 중단된 상황(노트 열장이나 썼나도 싶고)에서 새벽 시간을, 물론 피로에 마음이 지쳐 뻗어버리면 안 되겠지만, 쪼개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의 전기였습니다. 그가 일생 내내 보였던 활력과 헌신, 희생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면서 자본과 물신에 굴복해서 살아야 하는 저같은 소인배에게는 너무나 큰 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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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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