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식인의 역할



 흔히 알기로, ‘작가’란 문학을 창조하는 사람, 즉 소설가, 시인, 극작가를 말한다. 어느 사회에서건 작가는 숭고한 역할을 수행하며, 어쩌면 ‘지식인’보다 더 명예로운 지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창조적인 능력과 예언적인 독창성, 그리고 숭고한 정신은 지식인이 아니라 작가에게 있는 것이다. 반면에 지식인들은 문학과 관련한 분야 등에서 ‘비평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약간 격이 낮은 ‘기생층(寄生層)’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초에 작가는 부당한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고, 박해와 고통의 증인이 됨으로써 점차 지식인과 대조적인 속성을 띠게 되었다.

 작가들의 ‘시대 정신’은 세계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작가들은 개인이나 협회의 이름으로 전쟁과 기아, 거짓과 탐욕 등을 준엄히 질타하기도 하고, 인류의 진실과 화해를 강조하기도 하면서 우리 시대의 ‘특별히 상징적 존재’로 존경받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보스니아와 알제리에서와 같은 내전, 독재 정권의 언론 검열, 남아프리카와 아르헨티나, 북아일랜드 등지의 대립과 갈등 등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그 해답을 모색해왔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은 그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역대 작가들의 문학 세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딘 고디머, 오에 켄자부로, 데렉 월코트, 월 소잉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옥타비오 파스, 엘리에 위셀, 저트런드 러셀, 귄터 그라스, 리고버타 멘추 등 …

 프랑스의 비평가 파스칼 카사노바가 《문학의 세계 공화국》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학성 ․ 템포 ․ 원리 ․ 세계성 ․ 시장 가치 등을 모두 포괄한 문학의 세계화 체계가 150여 년의 노벨문학상 역사를 거치는 동안 구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세계화 체계는 동화(同化), 이화(異化), 변환 등 문화의 상호 작용을 거쳐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작가군을 배출해왔다. 이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재능이 뛰어난 한편 보편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세계 지향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게 카사노바의 주장이다. 마치 특정 국가의 법이나 사회 규범을 뛰어넘는 언어 능력을 구사한 제임스 조이스나 섀무얼 베케트의 경우처럼 ….

 그러나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아무래도 그의 전체적인 시각은 모순적이다. 카사노바는 현실의 정치적 제도와 담론을 뛰어넘어 세계 보편적인 자율성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가들이 탈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또 다른 형태의 정치적 현실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살만 루시디에대한 논쟁은 그의 작품 《악마의 시》의 문학적 가치와는 무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 논쟁은 작가들이 어떻게 종교적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종교적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쓸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이란 혁명의 지도자였던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슬람 세계의 율령(fatwa)을 선포한 뒤 작가와 독자들은 종교적 소재와 주제를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호메이니의 옛 율법 추종자들조차도 작가와 지식인 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이상, 그 공적인 역할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작가와 지식인의 현실 참여에 주목해야 한다.

 작가의 현실 참여는 18세기 초반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에게서도확인할 수 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지배 계층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그는 당시 가장 뛰어난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였다. 그는 작가로서 사회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책을 펴낼 때마다 1만 부 이상을 찍어냈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과 같은 전자 매체 시대에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누구나 원하는 글을 접할 수 있다. 한 작가가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게재할 경우,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지 이를 읽을 수 있고, 원하면 무한정으로 디지털 복제를 할 수 있다. 이같은 지적 환경의 변화는 정부나 특정 세력의 검열이나 규제를 자연스럽게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의 경우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금지해 왔지만, 지금은 두 나라 모두 인터넷에 대한 제한적인 접근을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비록, 외부 세계에 대한 통제를 복잡하기만 했지 별 효과도 없는 값비싼 잠금 장치를 설치해 놓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시대상의 변화에 힘입어 뉴욕에서 영국 신문에 글을 기고할 경우에도, 개인 웹사이트나 전자 우편을 통해 미국, 일본, 파키스탄, 중동, 호주, 남아프리카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이를 접할 수 있다. 작가나 발행자는 자신들의 출판물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복사되거나 재유포된다고 해도 이를 통제할 수단이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나는 어떤 특정 장소에서 기고하거나 발표한 글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세계의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 나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으며, 이럴 땐 화를 내야 할지, 환영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처럼 독자를 정확히 명시하는 것이 어렵다면, 도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할 것인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작가나 지식인들이 글을 쓸 경우에는 마음속에서 기대하고 있는 ‘상상의 독자들’이나 원고를 부탁한 매체의 요구에 맞추어 펜을 잡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상상의 독자’라는 개념이 어느 순간부터 매우 사실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10여 년 전 아랍인들을 독자층으로 한 아랍 간행물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구체적으로 기존 독자층만을 고려했던 게 사실이다. 나의 ‘상상의 독자층’은, 스위프크가 살던 시절 개혁을 원했던 일부 사람들만이 그의 고정적인 소규모 독자층이었던 사실에 견주어 볼 때 스위프트보다도 더 구체적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상상의 독자’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작가는 오래 전 우리가 예상했던 독자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게 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글을 써야 한다. 설사 독자들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더 많은 독자를 원하는 작가의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오늘날 글쓰기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상상의 독자층’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 요즘, 작가들은 자신과 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자신의 주장을 독자가 바로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또한 이렇게 확장된 새로운 공간에서의 글쓰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완전히 불투명하거나 완전히 투명한 사실에 대해서만 언급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를 다룰 경우에는 불투명한 것보다는 투명한 것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극히 일부 사람들이 소유한 거대한 다국적 미디어 그룹 5~6개가 전세계의 눈과 귀를 지배하고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지식인들이 소명과 대의를 갖고 자신들의 신념을 주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지식인들은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다. 게다가 이들은 스위프트가 ‘웅변 기계’라고 빈정거렸던 주류 매체들이 회피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특정 매체들에게 영향력을 갖는 행동파 지식인들과 연계해 대학 강연과 교회 설교, TV와 라디오 출연, 신문 및 잡지 기고, 인터넷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주류 매체가 아니더라도, 작가와 지식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사상 전파의 수단과 방법은 광범위하다.

 지식인들로서는 주류 매체인 PBS 뉴스아워나 ABC 나이트라인에 초대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초대된다 하더라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허락될 뿐인데, 그나나 주최측의 임의대로 편집되기 일쑤다. 따라서 오히려 주류 매체가 지식인들에게는 더 불리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지식인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부합하는 여타 매체들에서는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받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식인들이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의 강단(또는 무대, 스위프트의 표현을 빌자면 순회 공연)을 통해 자신의 깨어 있는 의지를 알리고 논쟁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새로운 흐름의 지적 활동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보겠다. 세계적으로 약 40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퍼져 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1982년에 사브라와 샤틸라 대학살이 일어난 레바논과 요르단, 시리아에 살고 있거나 가자 지구와 서안의 대규모 난민 캠프에 수용되어 있다. 1999년 서안의 베들레헴 근처의 데이셔 캠프에 수용되어 있는, 교육받은 젊은 난민들로 구성된 한 진취적인 단체가 국경 횡단 프로젝트를 주요 과제로 삼은 이브다 센터를 세웠다. 이것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의해 정치적 ․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주요 캠프의 난민들을 컴퓨터를 통해 서로 연결하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1948년 그들의 부모 세대가 뿔뿔이 흩어진 이래 처음으로, 베이루트나 암만의 팔레스타인 난민 2세대들이 팔레스타인 내의 동포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과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폐쇄가 어느 정도 느슨해졌을 때, 데이셔 주민들은 이전에 그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 구역에 있는 마을을 방문했고,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 지역에 갈 수 없었던 다른 난민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정치적 의지를 사상 처음 공동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반세기 동안 질곡처럼 짊어지고 살아왔던 수동적인 운명을 거부하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8월 26일 데이셔의 모든 컴퓨터가 정치적인 만행으로 파괴되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난민은 난민으로 남아야 한다는 의미, 즉 난민은 오랫동안 침묵해왔던 그대로의 상태를 깨뜨리거나 어지럽혀서는 안된다는 술책이 틀림없었다. 이런 만행을 저질렀으리라 의심되는 용의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들이 고발되거나 체포됐을 리 없다. 어쨌든 데이셔 캠프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곧 이브다 센터의 재건에 착수했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왜’ 개인이나 집단은 침묵을 거부하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려고 하는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지적한 것처럼,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침묵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갈망한다. 미국의 지식인들이 더 큰 목소리를 갖고 있고, 발언의 기회도 많지만, 부조리한 현실 타파를 위해 나서기란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며, 거의 모든 곳에 개입하고, 무궁하지는 않더라도 막강한 지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지식인의 역할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비판의 칼날을 곧추세우고, 강요된 침묵과 거짓된 평화에 항거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시장’, ‘민영화’, ‘작은 정부’ 같은 단어들이 세계의 흐름을 설명하는 용어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단어들은 이미 드러난 것처럼 논쟁을 위한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반대로, 거짓된 세계가 저항이나 반발에 부딪칠 때마다 이를 미리 봉쇄하고 뭉개는 데 사용된다.

 이와 함께 정치 권력과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기이한 논리를 합리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방과 이슬람이 벌이는 ‘인형극’의 이면에는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온갖 수단과 장치(사탄이나 깡패 국가, 테러리즘 이론)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란의 경우 한쪽에서는 강경파 지도자 하세미 라프산자니가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이란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의 조지 부시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슬람 테러리즘과 깡패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은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미국의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추진한 신보수주의 정책이 건강 ․ 교육 ․ 노동 ․ 사회 보장 분야에 대한 사회적 기틀을 완전히 해체했으며, 그 뒤를 이은 클린턴 ․ 블레어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국가적 자기미화를 포함한 일종의 상징적인 반혁명과 모순적인 억견(臆見)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렇게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실제로는 보수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진보를 가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퇴행과 역행 등 가장 낡은 과거 질서의 복원을 꾀한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인터넷 네트워크 기업 등 소위 뉴이코노미(신경제)의 환상을 이용해 인류를 완전히 새롭고도 풍요로운 자유의 시대로 이끌 수 있다고 오도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나 혁명은 순전히 거짓이다.”



 또 리차드 로티는 “현실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데 있어 극도의 포스트모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또 오늘날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집단 ․ 학살 ․ 고문 ․ 검열 ․ 기아 ․ 무지 등의 재앙에 대해서 ‘문화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상당 부분 임마누엘 월러스틴, 아누아르 압델-마렉, J.M. 블롯, 자넷 아부-루고드, 피터 그랑, 알리 마즈루이 같은 전문가 및 역사가들의 노고 덕택이다. 또 시애틀이나 제노바에서처럼 반세계화 논쟁을 하거나, 그 논쟁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브루스 로빈스의 《세계적인 사고 : 골치 아픈 세계주의》(1999), 티모시 브레넌의 《세계 속에서 : 현재의 세계주의》(1997), 닐 라자루스의 《탈식민지 세계에서의 민족주의와 문화적 관행》(1999) 등 역작들의 사상적 기반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책들은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인의 비판적이고 투쟁적인 노력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주장은 20년 전에는 감지할 수 없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들이지만, 식민 제국과 냉전의 종식, 사회주의 국가와 비동맹 블록이 무너진 뒤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현실과 모순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담 필립스의 최근 저서 《다윈의 벌레》(1999)에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책은 다윈이 일생 동안 하찮은 지렁이에 관심을 보인 끝에 자연 전체를 보지 않고도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구조를 깨닫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필립스는 지렁이에 관한 그의 연구를 통해 세속적인 종족 보존의 신화가 창조 신화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현재 종족 보존을 위한 인류의 투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세 가지 방법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의 과거를 잊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찾되, 역사의 다양성 역시 인정해야 한다. 예로부터 역사를 서술하고 기록을 축적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기본 속성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으나, 종종 이기적인 사관에 의해 왜곡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출신의 톰 세게브나 피터 노빅, 노먼 핀켈슈타인 등이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연구에서 드러낸 끔찍한 이중적 사관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그토록 충실했으면서도 남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눈을 돌렸다. 얼마나 독선적이고, 허위 의식에 사로잡힌 행동인가? 더 이상 역사는 강자나 신성한 존재가 결정한 법칙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역사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분명히 인식하는, 중독되지 않고 깨어 있는 역사 의식이 필요하다.

 둘째, 지식인들이 이제 평화 공존의 장을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할 때다. 특히 식민지 해방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데, 해방의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다 할지라도 폭력적인 극렬 민족주의자의 출현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정의와 인권의 수호를 위해 특정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자원의 재분배를 요구하고,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권력과 자본의 야합에 대해 비판을 가해야 한다. 평등 없는 ‘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 ‘평화’라는 말은 실제로 말 자체에 찬성하고, 칭송하게 만들고, 감정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언론들은 얼마 전에 발생한 코소보 전쟁에 대해 특정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며 독자와 시청자들을 오도했다. 물론 ‘전쟁’과 ‘평화’라는 말의 의미는 강자에 의해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이 끝난 뒤 강자에 의해 결정될 평화 협상의 향방에 주목하고, 비판의 눈길을 거두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마이클 이그나시에프가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에 대한 파괴와 그들의 죽음을 고발하는 ‘자유주의자’ 관점의 기사를 썼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와 노력을 가져야 한다. 지식인은 늘 양심이 잠들지 않도록 스스로 채찍을 들어야 한다. 이럴 때 최선의 방법은 지금 폭탄을 맞을지도 모를 사람이 당신 앞에서 당신의 글을 읽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절대로 끝나거나 완료되지 않듯이, 결코 화해하거나 통합할 수 없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오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허락된 당은 원래 영토의 20%에 불과하고, 그나마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는 이스라엘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이들 팔레스타인인에게 허용된 땅을 아무리 기술적으로 재조정한다 해도,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만일, 이스라엘인들에게 이전의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이렇게 되면 이번에는 이스라엘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난민이 될 것이다. 모두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한 민족 전체의 땅과 유산을 빼앗거나 그들을 억압하거나 죽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 역시 고통받는 사람들이며 커다란 비극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꼭 필요한 정복이었다고 주장한 지브 스턴헬의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 고난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죄를 범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으로서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사회적 불의에 동화된 음악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식인의 참모습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위해 불의에 항거하고, 타협하지 않는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지식인의 길은 마치 도달하기 힘든 예술을 구현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 길은 어렵고도 힘들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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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otz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