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사흘째 침을 맞고 난 현재, 약간 서두르는 정도의 걸음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정도까진 그런대로 힘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뛰는 것까지는 아직 허리 아래쪽에서 스멀스멀 느껴지는 통증의 잔여 부분과 불안감 때문에 자제 중이라죠.

  옆자리 선생님(남자 영어 강사)이 이직을 고려하시면서 많이 헐거워지셨습니다. 저도 만만찮은 투덜이과이긴 하지만 수업 시수며 앞으로 변하게 될 학원의 시스템-매뉴얼화에 대한 것이며 이곳에서의 비전 여부에 대해 좋은 쪽은 좋다고도 하시지만 어려워질 부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시더라는... 그러면서 그동안 그분의 제의로 식사를 같이 해 왔는데 자신이 떠나기 전까지 같이 있게 되면 오히려 그분이 떠나고 난 다음 제 입지도 같이 안 좋아질 터이니 식사는 떨어져서 하자고 말씀하시더라는... 그래서 이틀 동안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밥맛이 나질 않네요. 평소부터 혼자서 먹어 왔지만 간만에 같이 먹을 사람이 생겨서(팀 단위로 식사하는 경우는 좋아하지 않아서) 나름 즐거웠는데 어째 공허해진다는.

  2학기 기말고사 대비로 한창이지만 정작 불안감은 계속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중이라죠. 1년 계약의 기간은 채워 가는 중인데 과연 재계약 제의가 올 것인지(제의가 없으면 그냥 계약해지니 나가야 하는), 재계약이 이루어지기 전에 면담 등을 통한 상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에서 벌어진 일 등에 대한 서로 간의 오해의 소지를 해명할 기회가 있을지(내 자신이 떳떳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편가르기며 입방아며 애들 강의평가 설문 등 감정적인 요소가 차지하는 것도 만만찮을 테니 말이죠),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이곳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인데 만약 재계약이 성사되면 보직은 어느 학년에 어느 계열이 될 것인지 등등 말입니다. 더구나 두 달 이상을 상위 계열을 두 학급씩 40명 가까운 아이들을 데리고 개념 및 요점 설명하면서 나가려니 스트레스는 해소되질 않고 계속 쌓여만 가느라 목소리도 잘 안 올라간다는.
  내년을 쉽게 기약하기 어려운 직업에 종사한다는 스트레스에 괜히 일도 손에 안 잡혀요. 책읽기도 잘 안 되고. 특히 근래 들어 내 자신의 수업 내용이 아이들에게 통할 만한 것이냐에 대한 회의감도 짙어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하다는... 역사 파트 쪽에 대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접근할 기회가 워낙 없다 보니 아무리 잘 설명해 주려 해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밖엔 안 들리고, 더 자세히 하자니 시간이 절대 부족한 상황... 겨우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문제만 잡아서 설명해 줘도 뒷자리에 숨듯이 앉은 녀석들은 대놓고 다른 과목 공부나 숙제에 매달리는 상황... 이렇게 되어서야 수업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구나 내년부터는 주당 수업 시수 두 타임(합계 100분 기준)에서 주당 15분을 주간테스트로 빼놓아야 한다는데... 그 시간이면 빠르게 진행해서 한 단원 요점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인데... 진정으로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과목의 가치를 낮추기 위한 것인지 가닥이 안 잡히네요. 해가 가면 갈수록 사회 속의 현상에 대해 이해가 태부족한 애들이 올라오는데 그네들을 위해 시수를 늘리거나 심화해서 가르쳐 줄 시간을 배정하기는 커녕 점수만 내게 하라는 방식에 속병만 앓아 간다는...;;;

  이럴 때 비록 공교육이 죽어간다 어쩐다고는 해도 학교에서 가르치면 어떤 것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네요. 너무 장밋빛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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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대학야구동아리의 여러 학교 최근 졸업생 몇이 모여서 야구팀을 창단, 리그에 참여하려는 의논을 한다고 해서(지난 번 연락을 통해 가입 의사를 밝혔음) 내심 채비를 했는데 다음 주로 연기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 토요일 약속이니 일요일 보강이나 심판배정에 당장 타격이 있진 않아 상관없다는 답신을 보냈지만 내심 이것도 갸웃갸웃이에요. 초기 비용도 만만찮은데 되도 걱정, 안 되면 다른 지인을 통해 알아봐야 하는지(즉 내년 심판일을 쉬도록 할 것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내년에도 힘겨운 심판일을 지속해야 하는지 말이죠. 한 해 정도 숨돌리면서 되새겨 볼 기회가 필요한데 애시당간에 기회 마련도 쉽지 않고 결국 돈에 휘둘리는 꼬락서니가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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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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