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론] 1편 1장 - (後)
베끼기 작업을 진행한 [전쟁론]의 1편 1장의 두번째 업로드입니다... 마음에 드는 장이 두엇 더 있지만 당분간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군요. 교재일독 후 노트정리 작업에 시험직전에 따른 작업 등도 해야겠다 싶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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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기에서 양극성의 원칙이 요구된다.
한쪽 최고지휘관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다른 쪽 최고지휘관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반대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참된 의미의 양극성이다. 아래에 이 원칙에 따로 하나의 장을 마련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은 여기에서 말해야겠다.(그 장은 없습니다-옮긴이의 해설)
양극성의 원칙은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서 양(陽)의 크기와 그 반대인 음(陰)의 크기가 정확히 상쇄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 전투에서는 양쪽 모두 승리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참된 의미의 양극성이다. 왜냐하면 한쪽의 승리는 다른 쪽의 승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에 공통적인 관계를 갖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사물이 있다면, 두 사물이 아니라 두 사물의 관계가 양극성을 갖는다.
16. 공격과 방어는 그 종류와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양극성을 적용할 수 없다.
한 가지 형태의 전쟁만 있다면, 즉 공격만 있고 방어가 없다면 또는 공격과 방어가 단지 적극적인 동기를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데 따라서만 구분된다면, 싸움은 언제나 똑같을 것이다. 이런 싸움에서는 한쪽의 유리함은 언제나 똑같은 크기만큼 다른 쪽의 불리함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양극성이 존재할 것이다.
전쟁은 공격과 방어라는 두 가지 형태의 활동으로 나뉜다. 아래에서 객관적으로 밝히겠지만 그것은 종류도 매우 다르고 강도도 같지 않다. 따라서 양극성은 양쪽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결전에 존재하는 것이며 공격과 방어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쪽 최고지휘관이 결전의 시기를 늦추려고 하면 다른 쪽 최고지휘관은 그것을 앞당기려고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싸움의 형태는 똑같다고 가정한다. A가 지금이 아니라 4주 후에 적을 공격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면, B는 4주 후보다는 지금 공격을 받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직접적인 모순관계다. 하지만 이 모순으로부터 B가 A를 바로 지금 공격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히 전혀 다른 문제다.
17. 방어가 공격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양극성의 효과는 없어지며 이로써 휴전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방어 형태가 공격 형태보다 유리하다면 나중에 결전을 치르는 데서 얻게 되는 한쪽의 장점이 방어를 하는 데서 얻게 되는 다른 쪽의 장점과 똑같을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모순관계로도 전자의 장점은 후자의 장점에 필적할 수 없으며 전쟁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따라서 장점의 양극성이 갖는 추진력은 방어가 공격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효력을 잃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에 유리한 쪽이 방어의 장점을 버리기에 너무 약하다면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불리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불리하겠지만 그래도 미래에 방어하면서 싸우는 것이 현재에 공격하거나 평화협정을 맺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방어의(방어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우월함은 대단히 크며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전쟁에서 일어나는 휴전은 대부분 방어의 우월함에서 비롯된다. 휴전이 생긴다고 해서 전쟁에 내적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행동에 나서려는 동기가 약하면 약할수록 공격과 방어의 차이는 행동에 나서려는 동기를 그만큼 더 많이 흡수하고 중화시켜 휴전은 그만큼 더 자주 생길 것이다. 이는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18. 두 번째 이유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전쟁행위를 멈추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모든 최고지휘관은 자기 군대의 상황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적의 상황은 불확실한 정보에 따라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상황을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이런 오류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이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적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불충분한 상황 파악은 종종 적절하지 않은 때에 행동의 개시와 중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래서 전쟁행위를 지연시키거나 앞당기는 데도 이바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언제나 전쟁행위를 내적 모순 없이 중지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이유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적의 힘을 과소평가하기보다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불완전한 상황 파악이 전쟁행위를 억제하며 완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휴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쟁행위를 완화시켜 준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휴전의 가능성이 전쟁행위를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 전쟁의 위험스러운 진행을 막으며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긴장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전쟁의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휴전기간은 그만큼 더 짧아질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는 동기가 약하면 약할수록 휴전기간은 그만큼 더 길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동기가 강하면 의지력도 커지며, 잘 알다시피 의지력은 언제나 전투력의 구성요소이면서 동시에 전투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9. 전쟁에서 휴전이 자주 일어나면 전쟁은 절대성에서 더 멀어지며 개연성의 계산이 된다.
전쟁행위가 느리게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리고 휴전이 자주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또한 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오류를 그만큼 더 일찍 바로잡을 수 있고 최고지휘관은 그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는 데 그만큼 더 자신만만해지며 그래서 그만큼 더 일찍 극단성의 뒤로 물러나서 모든 것을 개연성과 추측에 기댈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의 특성이 요구하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따른 개연성의 계산이다. 대체로 전쟁이 느리게 진행되면 개연성을 계산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20. 여기에 우연만 더해지면 전쟁은 도박이 되는데 전쟁에는 대개 우연이 따른다.
이상으로 알 수 있듯이, 전쟁의 객관적 성격이 전쟁을 개연성의 계산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쟁을 도박(Spiel, gamble)으로 만드는 데는 이제 단 하나의 요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전쟁에는 확실히 이 요소가 없지 않은데 그것은 우연이다. 인간의 활동 중에서 전쟁만큼 그렇게 끊임없이 그리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우연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전쟁에는 우연과 함께 운명과 행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1. 전쟁은 그 성격상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도 도박이다.
전쟁의 주관적 특성, 즉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력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쟁이 단순한 도박 이상으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전쟁활동이 일어나는 영역은 위험한 영역이다. 위험할 때 최고의 정신력은 무엇일까? 용기다. 물론 용기는 영리한 계산 능력과 조화를 이룰 수도 있지만, 이 둘은 종류가 다르며 서로 다른 정신능력에 속한다. 이와 반대로 모험과 행운에 대한 믿음, 대담성이나 무모함은 용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 모든 정신적 경향은 우연에 기댄다. 왜냐하면 우연도 그런 경향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절대적인 것, 이른바 수학적인 것은 전쟁술의 계산 어디에도 확고한 근거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에는 처음부터 가능성과 개연성, 행운과 불운이라는 도박성이 끼어든다. 이런 것들은 전쟁이라는 천의 크고 작은 모든 실(絲)에 얽혀 있으며 전쟁을 인간행위의 모든 영역 중에서 카드놀이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만든다.
22. 카드놀이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정신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이성은 언제나 명확성과 확실성을 추구한다고 느끼지만 정신은 때때로 불확실성에 이끌린다고 느낀다. 정신은 친숙한 대상이 모두 자신을 떠난 것 같은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들어서야 할 때가 있다. 이 경우에 정신은 이성과 함께 철학적 탐구와 논리적 추론이라는 좁은 길을 헤치고 나가는 대신에 차라리 상상력을 품은 채 우연과 행운의 영역에 머문다. 정신은 철학적 탐구와 논리적 추론의 초라한 필연성 대신에 풍부한 가능성에 빠져든다. 여기서 감격을 받으며 용기는 고무되며, 그래서 용감한 수영선수가 급류에 뛰어드는 것처럼 정신은 모험과 위험에 뛰어든다.
이론이 정신세계를 벗어나도 되는가? 그리고 절대적 결론과 법칙에 자만하면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다면 그런 이론은 인간의 삶에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론은 인간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며 용기와 대담성, 심지어 무모함도 고려해야 한다. 전쟁술은 살아 있는 전투력이나 정신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성과 확실성에 결코 이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어디에나 우연이 들어설 여지는 남아 있다. 가장 큰 전쟁에도 가장 작은 전쟁에도 마찬가지다. 한쪽에 우연이 들어서면 다른 쪽에 용기와 자신감이 들어와서 틈을 메운다. 후자가 크면 그만큼 전자를 위한 여지가 커도 된다. 용기와 자신감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따라서 전쟁이론은 필수불가결하며 가장 고귀한 무덕(武德, kriegerische Tugend, military virtue) 이 모든 단계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법칙만을 세워야 한다. 모험에도 영리함과 신중함이 똑같이 들어 있지만 이것들은 단지 서로 다른 비율로 계산될 뿐이다.
23. 전쟁은 중대한 목적을 위한 진지한 수단이다. 목적에 대한 자세한 규정.
지금까지 전쟁,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지휘관, 전쟁을 규정하는 이론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전쟁은 심심풀이도 아니고 모험과 성공을 쫓는 단순한 쾌락도 아니며 자유로운 열정의 산물도 아니다. 전쟁은 중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수단이다. 전쟁이 지니는 무지개 빛 행운, 전쟁에 들어 있는 변화무쌍한 열정과 용기, 환상과 감격, 이 모든 것들은 다만 전쟁의 수단이 갖는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민족 전체)의 전쟁, 특히 문명민족의 전쟁은 언제나 정치적인 상황에서 비롯되고 오로지 정치적인 동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전쟁은 정치적인 행위다. 위에서 전쟁을 순수 개념으로부터 추론한 것처럼 전쟁이 방해를 받지 않는 완전한 행동이며 폭력을 절대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라면, 전쟁은 정치 때문에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정치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정치의 자리를 대신하고 정치를 몰아내며 오로지 전쟁 자체의 법칙에만 따르게 될 것이다. 이는 지뢰를 준비해서 묻어 놓으면 그 지뢰는 더 이상 다른 방향으로 폭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와 전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둘 사이에 일종의 이론적 구별이 생길 때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며 그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현실세계의 전쟁은 긴장 상태를 단 한 번의 폭발로 해결하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의 전쟁에서는 전투력이 활동하는데, 그 전투력은 완전히 똑같은 부류도 아니며 능력을 똑같이 발휘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타성과 알력이 빚어내는 저항을 이겨낼 만큼 충분히 팽창하기도 하지만 다른 때에는 너무나 약해서 효과를 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폭력이 맥박을 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는 얼마쯤 격렬하고 신속하게 긴장을 풀어 힘을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얼마쯤 신속하게 목표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진행되는 중에 전쟁에 영향을 미치고 전쟁에 이런저런 방향을 제시하며 전쟁이 지혜로운 최고지휘관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일 걸리기도 한다. 전쟁이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쟁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동기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도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목적이 전제군주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목적은 전쟁수단의 성격과 맞아야 하고 이따금 그 수단 때문에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은 언제나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정치는 전쟁행위 전체를 꿰뚫고 지나가며 전쟁의 파괴력이 허락하는 한 전쟁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24.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접촉의 연속이며 정치적 접촉을 다른 수단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제 전쟁에 고유한 특성이라고는 전쟁수단의 특성과 관련된 것뿐이다. 정치의 방향이나 의도가 전쟁수단과 모순에 빠지면 안 된다는 점은 일반적 차원에서는 전쟁술이, 그리고 개별적 차원에서는 최고지휘관이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이 요구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개별적인 경우에 정치적 의도에 아무리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이것은 언제나 정치적 의도를 제한할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의도가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기 때문이며, 수단은 목적을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 원문 : Der Krieg ist eine bloße Fortsetzung der Politik mit andern Mitteln)
( 영어 : War is merely continuation of policy by other means.)
25. 전쟁의 다양성
전쟁의 동기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강하면 강할수록 또한 민족의 생존 전체를 더 많이 포괄하면 할수록 그리고 전쟁에 앞서 나타나는 긴장이 폭력적으로 나타나면 날수록, 전쟁은 그만큼 더 추상적 형태에 가까워지고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해지며 전쟁의 목표와 정치적 목적은 그만큼 더 일치하게 되고 전쟁은 그만큼 더 군사적으로 보이고 그만큼 덜 정치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동기와 긴장이 약하면 약할수록, 전쟁요소인 폭력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방향은 정치가 제시한 노선으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고 전쟁은 본래의 방향으로부터 그만큼 더 벗어나게 될 것이며 정치적 목적은 이상적인 전쟁목표와 그만큼 더 많이 달라지고 전쟁은 그만큼 더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독자가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게끔 여기에서 말해 둘 것이 있다. 전쟁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란 단지 철학적인 경향, 즉 엄밀한 논리적 경향만을 뜻하는 것이며 실제로 분쟁에 휘말려 있는 전투력의 경향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병사들의 모든 감정과 열정을 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많은 경우에는 병사들의 감정과 열정이 정치적인 방법으로는 억누르기 힘들 만큼 자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모순은 생기지 않는데, 왜냐하면 병사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 노력에 상응하는 대규모의 전쟁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작은 것만 지향하고 있을 때는 대중의 감정을 일으키려는 노력도 매우 작아질 것이며 그래서 대중은 억제보다는 오히려 언제나 자극을 필요로 할 것이다.
26. 모든 전쟁은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요점으로 돌아가자. 정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전쟁이 있는 반면에 정치가 매우 분명하게 전면에 나타나는 전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가지 종류의 전쟁은 똑같이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를 인격화한 국가의 이성이라고 간주하면 그 이성으로 파악해야 하는 상황 중에는 국제관계의 성격상 첫 번째 종류의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일반적 통찰이 아니라 폭력을 피하고 신중하며 교활하고 부정직하기까지 한 영리함이라는 관습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만 두 번째 종류의 전쟁이 첫 번째 종류의 전쟁보다 더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7. 이런 견해가 전쟁사를 이해하며 전쟁이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서 생기는 결과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전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도구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때만 모든 전쟁사와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전쟁사에 관한 방대한 책에 대한 이해가 열리게 된다. 둘째, 바로 이 견해는 전쟁의 동기와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전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와 최고지휘관이 맨 처음으로 내려야 하는 가장 중요하며 결정적인 판단은 자신이 수행하는 전쟁을 이런 관점에서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며 상황의 성격으로 보아 실현될 수 없는 것은 전쟁으로 실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모든 전략 문제 중에서 가장 먼저 포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문제다. 아래에서 전쟁계획을 다룰 때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는 전쟁문제를 이 점까지 논의하여 앞으로 전쟁과 전쟁이론을 살펴보게 될 중요한 관점을 확립한 것으로 만족한다.
28. 이론을 위한 결론
전쟁은 정말 카멜레온 같다. 왜냐하면 전쟁은 각각의 구체적인 경우마다 자신의 특성을 조금씩 바꾸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은 전쟁의 전체 형상에 따라 그리고 전쟁에 널리 퍼져 있는 경향과 관련해서 볼 때 기묘한 삼중성(三重性)을 띠기도 한다. 삼중성은 다음의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전쟁의 요소인 증오와 적대감의 원초적 폭력성인데 이는 맹목적 본능과 같다. 둘째, 개연성과 우연의 도박인데 이것은 전쟁을 자유로운 정신활동으로 만든다. 셋째, 정치적 도구라는 종속성인데 이로 말미암아 전쟁은 순수한 이성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는 주로 민족과 관련되고 두 번째는 주로 최고지휘관이나 군대와 관련되며 세 번째는 주로 정부와 관련되어 있다. 전쟁 중에 타오르는 열정은 이미 그 민족의 마음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우연이 따르는 개연성의 세계에서 용기와 재능이 발휘되는 범위는 최고지휘관과 군대의 특성에 달려 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은 오로지 정부에 속하는 문제다.
이 세 가지 경향은 각각 매우 다른 법칙처럼 보이지만 모두 전쟁이라는 주제의 본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무시하거나 그들 사이에 임의의 관계를 세우려는 이론이 있다면, 그 이론은 즉시 현실과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며 그래서 그런 이론은 이 모순만으로도 이미 폐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무게중심과도 같은 이 세 가지 경향 사이에서 전쟁이론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제 2편의 전쟁이론에서 살펴볼 것이다. 어쨌든 여기에서 확립한 전쟁의 개념은 그 첫 번째 빛이 될 것이다. 그 빛은 우리에게 전쟁이론의 근본 구조를 밝혀 주고 전쟁이라는 큰 덩어리를 나누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