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내부고발자, 분명 조직 내에서는 "배신자"로 치부될지언정 사회 공익을 위한 그들의 행동에 우리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진대 여전히 우리 모두 과거의 인습에 젖어 그러한 긍정적인 기능을 저버리려 하는 느낌에 괜한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물론 이상호 기자의 경우 그런 자료를 입수, 유통(프로그램 방송)시킨 인물이니 100% 내부고발자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람의 행동마저 싸잡아 사회적 매장을 시키려 하는군요.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라온 글을 불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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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민주헌정 파괴 쿠데타'
'X파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이상호 MBC 기자의 'X파일' 상고 이유서
텍스트만보기   이상호(GOBALNEWS) 기자   
2005년 여름, 'X파일' 사건을 보도해 큰 파장을 일으킨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06년 8월 11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3일 열린 2심에선 유죄가 인정돼,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과 형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29일 이 기자가 X파일 보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상고이유서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 이상호 MBC 기자가 2005년 8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조사에 응하는 입장을 밝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법원 최고의 경륜가들이신 대법관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MBC 기자 이상호라고 합니다. X파일 사건 관련 피고인입니다.

그럼 상고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재판 결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기소 자체를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심 판결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우리 법원이?' 그랬다가 2심 판결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특히 판결내용 중 기소되지도 않은 다른 언론 보도까지 싸잡아 유죄라고 '선언'해 버리는 대목이 아주 박력 있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유죄라도 괜찮습니다. 보도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각오했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고맙지요.

주제넘게도 저는 법원이 걱정입니다. 이따금 상식에 반하는 판결로 법원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법원을 다음 세대는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요. 저야 제가 보도한 X파일 내용을 상기시키고자 상고하게 되었지만, 대법관님들께서는 법원 신뢰 회복을 위한 천재일우의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X파일'이 시민이 알 필요 없는 사안인가요?

재판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관계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대신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특히 2심 재판부와는 달라도 보통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국민들도 큰 시각차에 깜짝 놀랐고요.

이른바 X파일은 '삼성그룹이 수백 억 원대의 뇌물을 정치권과 검찰 등에 살포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한 모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 모의는 상당 부분 실제 이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 모의를 '민주공화제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쿠데타적 범죄행각'으로 보고 '시민들이 알 필요가 있다' 싶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X파일의 모의 내용이 '국가질서에 직접 영향을 미칠 만한 일도 아니고, 그저 부끄럽고 추잡한 수준의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알 필요가 없는 사안'으로 봤습니다.

사실을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사소한 부분까지 견해가 엇갈립니다. 이를테면 저는 X파일 내용을 현재진행형으로 본 반면, 2심 재판부에겐 이미 지난 '과거의 일'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일견 법리 공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의식의 경합입니다. 공동체의식의 경합입니다. 대법관님들의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바쁘신 대법관님들께서는 이제 그만 읽으셔도 됩니다. 여기까지가 제 법률적 상고 이유거든요.

고발기자질의 대가로 법원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절감하게 됐습니다. 소송과잉, 판결만사! 세상 모든 진실을 법원이 재단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재판관들의 어깨가 너무도 무거워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자신들의 모든 책임을 법원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석궁 테러' 사건도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진실 회복의 일차적 책임을 대학 스스로 다하지 못하고 법원에 떠넘겨 생긴 일 아닙니까. 화살은 법원이 맞았지만 대학이나 언론, 어느 누구도 그 화살촉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법복을 입은 재판관들을 보며 문득 방탄복을 입은 우주인 모습의 폭발물 처리반원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얼까요. 모두 대화 박스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법원 담벼락 너머로 투척하고 있습니다.

다 우리 사회 윤리 자산이 부족한 탓입니다. 공동체 내 합의를 통해 이견이 통합되고 잘잘못이 가려지는 것이 옳습니다. 사회에 어른도 없고 축적된 가치가 없으니 저마다 제 관점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툽니다. 신문은 한 줌 사주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인터넷엔 저주의 주문들이 종양처럼 증식되고 있습니다.

세계 11위의 부국이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공동체의 가치가 너무도 결핍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제 역할을 못하고 젊음은 쉬 시들어갑니다. 상식의 회복이야말로 마지막 보루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상식에 입각한 제 상고 이유를 잠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언론개혁국민행동이 2005년 8월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이 옛 안기부 불법도청테이프를 공개한 MBC 이상호 기자를 출두하도록 한 것을 규탄하고, 이건희 삼성 회장 및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판사님들은 테러계획 담긴 도청테이프, 못 본 척 하실 건가요

X파일의 진실은 법원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멍에였습니다. 사회적 규탄이 책임 있는 자의 무릎을 꿇리고 잘못을 고백하게 하면 의외로 손쉬운 용서도 가능했습니다.

2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법원의 보수적인 판결,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청이 나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길을 가다 도청 테이프를 주웠습니다. 들어보니 납치범들이 옆집 딸아이를 납치할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나쁜 테이프니까 테이프를 그대로 길바닥에 버리고 와야 합니까?

대법관님들께 묻습니다. 그게 상식적으로 옳은 일입니까? 만일 제가 도청을 한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납치가 인륜에 반하는 일이라면, 길에서 주운 테이프라 '찝찝'하기는 하지만 옆집 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상식에 맞는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한 재벌그룹이 수백 억 원대의 뇌물을 정치권과 검찰 등에 살포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했고 또 실제 그렇게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면, 그것은 납치와 같은 중대한 범죄혐의입니까 아니면 보호받아야할 사적인 대화입니까?

프라이버시 보호는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입니다. 누군가 민주공화제를 뒤엎는 모의를 실행한다면 우리 모두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민주공화제의 납치범은 처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원한다면 이것이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2심 재판부는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만일 김명호 교수가 '석궁 테러'를 기획하는 내용을 누군가 녹음해서 법원행정처에 제보했다면 법원행정처는 그때도 한가하게 독수독과(毒樹毒果)를 주장만하고 계실 겁니까. 의당 박홍우 부장판사에 대한 경호조치를 강화하는 게 상식 아닙니까.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부랴부랴 테러방지 대책에 나선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 검찰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구조본부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05년 12월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과거지사라니요, 아픈 가시는 어서 뽑아야 합니다

2심 재판부는 또 X파일의 내용이 '과거'의 일이라서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도 판시했습니다. 순간 문민정부 시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의 몰상식이 생각나더군요. 유감스럽게도 한번 덧칠된 몰상식의 때는 쉽게 벗겨지지 않습니다.

환자의 발바닥에 가시가 깊이 박혀있는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과거'에 박힌 가시니 빼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 X파일 속 범행이 실제 실현되는 바람에 민주공화제가 흔들리고 있고 여기저기서 '이젠 삼성공화제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가 유린되면 서민들이 먼저 다칩니다. 국민들 가슴에 박힌 가시는 점점 더 깊이 파고듭니다. 정작 가시를 박도록 지시한 사람은 한국 경제를 더욱 굳건히 장악해나가고 있고, 가시의 운반책은 언론계 수장으로 복귀했으며, 가시를 박은 사람들은 정치권과 관계의 중진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일이라니요. 아픈 가시는 빨리 뽑아내야 합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3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었지만 인혁당 사건은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던 우리 모두 마음속의 가시였습니다. 하나하나 가시들이 뽑혀나갈 때 우리 사회는 그만큼 상식에 접근합니다.

꼭 상식대로 법이 가는 것은 아니라고요? 당장은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상식이 몰상식의 법리를 몰아낼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도 아니겠지요.

저 역시 제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렇게 제 위치에서 이렇듯 주장할 따름입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저 역시 큰 기대 않겠습니다. 다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한번쯤 찾아봐주십시오. 상식의 손수건을 말입니다. 구겨진 채로 지금 어느 두꺼운 법전 밑에 깔려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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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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