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교사도 우울하다.
유영미 (고교 교사) / 녹색평론에 실린 글



25년 전 내가 첫 발령을 받을 때만 해도 남학생들은 교직을 탐탁해 하지 않아 다른 데로 진출할 만큼 교직은 보수도 짜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천직(賤職)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서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위태로워지고 고용불안이 일반화되면서 교직은 안정적이고 보수도 괜찮은 직업으로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더니 급기야 철밥통이라는 아주 조소어린 명예(?)까지 얻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산업 분류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선생님을 서비스산업 종사자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참 당혹스러운 때가 있었다(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되고 말았지만) 교육 인적 자원부라는 말처럼 모든 걸 경제적 시각으로 표현하는 자본주의적 발상의 천박함을 그 땐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긴 했었다

그러더니 이제 아이들 앞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보고 철밥통이라고 하고 아이들이 제 선생을 고발하는 걸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란다

물론 교사들이 그 권위를 이용하여 교활하게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 학부형과 아이들에게 저질러 온 비인간적 폭력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고 사라져야 하겠지만 그 방식이 기껏 아이들 앞에서 교사를 모멸적으로 짓밟아놓는 길이었다니......

무엇보다도 그렇게 될 경우 교사가 받는 상처보다 아이들의 영혼이 일그러지며 생기는 상처가 훨씬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 것일까.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과 다를 게 무엇이랴

그러나 사실 요즘 교사로서 나를 가장 우울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종철 선생님이 환경파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경제성장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라고 자주 걱정스럽게 얘기하시곤 하는데 실제로 학교에서 무섭게 변해가는 아이들을 두렵게 지켜보아온 나로서는 그것이 단지 노파심에 의한 걱정이 아님을 안다

해마다 2월이면 새로 상급학교를 배정받은 신입생들이 등록을 하러 학교에 온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는 그 아이들은 낯선 곳에 들어온 이가 가지는 수줍고 조심스러운 낯빛을 하고 화장실을 물어보거나 했다. 아이고 이놈들 또 나랑 한참 싸우고 정들 놈들이구만 이런 생각으로 그 귀여운 모습들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풍경은 접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예비소집으로 학교를 구경하는 건 똑같지만 그 놈들이 예비신입생인지 그냥 다니던 재학생인지 구별이 힘들어질 정도로 처음 와보는 학교를 마치 제집 안방인 것처럼 휘젓고 다니며 아무 경계심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학교 후졌다고 흉보고 하는 아이들만 발견될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면서 아이들의 변화가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사오년 전부터는 아이들을 볼 때면 외계인들 속에 내가 끼어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분명히 같은 한국 사람이고 같은 한국말 쓰고 그러는데 대화가 겉도는 것 같은 느낌, 내 얘기가 저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 앉지 않는다는 느낌, 도대체 언어의 공유는 되나 정서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 느낌의 원인이 무얼까 하고 혼자 당혹해 했다

복도를 지나쳐 갈 때 아이들의 인사를 받다보면 (물론 고개 숙이는 애들 거의 없지만) 간혹 아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을 때도 웬지 백화점에서 절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마네킹처럼 기계적으로 고객을 향해서 필요이상의 예의를 차려 인사하는 백화점 점원들의 인사처럼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몇 마디 말이 다이다

자신의 점수를 쥐고 있는 선생에 대한 계산된 예의 차원에서 나온 인사이기 때문이라 그럴까? 쾌활하게 큰 소리로 인사는 하지만 녹음된 것 잠시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뿐이다. 간혹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이 묻어나는 인사를 받으면 정말 고맙다(사실 이게 선생 하는 맛인데. 힘들어도 선생 하는 건 애들 예쁜 맛 그거 하난데 말이다)

더욱이 학년이 바뀌고 더 이상 수업에서 만나지 않게 되면 아이들은 요즘 말로 거의 완벽하게 생깐다(모른 척 하고 무시한다)는 것이 여러 교사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아는 아이를 발견하곤 반가움에 내 얼굴 표정이 웃음으로 바뀌려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애들 앞에서 느끼던 그 당혹스러움이란......

물론 이런 현상이 이 학교의 지역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으나 곧 다른 지역으로도 서서히 퍼져 갈 것이 분명해 보이니 걱정이다

한편으론 어쩌면 이 아이들이 엄마들의 영향을 받아 교사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래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좋겠다. 단지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집단을 향해서만 그러는 거라면 기분은 더럽지만 그래도 안도의 숨을 내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현재의 학교에서는 일단 학생들에게 신뢰 얻으려면 수능 점수 잘 나오도록 수업을 해야 하고 담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시정보의 전달과 자율학습 감독을 확실히 해주는 것이 최고다 아이들은 교사한테 예전처럼 인간적인 이해, 친밀함 같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걸 요구한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한테 담임하면서 통제보다는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개인면담에 더 중점을 두고 아이들을 지도해 왔고 여전히 그 소신은 변함이 없다

지나간 고등학교시절 아침에 등교하여 엷은 아침햇살이 비쳐드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자유롭게 얘기하던 시간이 나는 참 좋았으므로 교사가 된 다음에도 아침부터 담임이 인상 쓰고 교실 앞에 딱 버티고 앉아 스트레스주기보다는 나처럼 자유롭게 아침을 시작하게 하고 싶었다

교장, 교감으로부턴 늘 싫은 소리 들었으나 사실 별 거 아닌 내 소신은 변함없이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지켜져 왔었고 아이들과 잘 지내왔었다

그러나 재작년에 나는 담임 일을 중도하차하는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감독하지 않는다는 교장과 학부형들의 비난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일부이긴 해도 아이들마저 아침시간의 느긋한 자유를 맛보게 해주려는 나의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효과적인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담임 사직 인사를 몇 마디 하고 교실을 나오는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는 안심했다. 아이들이 아직 살아있구나

슬픔이란 걸 못 느낄 것 같은 애들이었는데 그래도 예전처럼 이런 일로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게 그나마 고맙고 위안을 주었다 물론 담임을 그만둔 실제의 가장 큰 이유는 건강상 담임 일을 계속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내 편이 아니라는 충격은 이제 더 이상 나 같은 교육철학 가지고는 아이들 맡는 게 곤란해지게 되었다는 우울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침이면 잠이 부족해 충혈된 눈으로 등교하는 애들이 너무 안스러워 학원과 독서실을 강요하며 잠도 못 자게 매섭게 몰아대는 엄마가 밉지 않냐고 농담처럼 물어보니 아이들은 무슨 말씀이냐며 엄마가 너무 고맙단다 오히려 엄마가 자기를 통제해 주지 않을 경우 비난이 나오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정서이다 방학에도 학원에 붙잡혀 있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천만의 말씀.

요즘 애들한텐 학원 안 보낸다고 하는 것이 꽤 효과적인 협박용 멘트가 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근원적으로는 불행한 아이들인 거 맞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억압당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얘들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니 억압을 억압이라고 느끼지조차 못하는 그 정서가 진짜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지난 해에 내가 맡았던 지리과 교생은 지금 아이들의 10년 선배여서 더욱 더 아이들과의 대화를 기대하며 그들과 가까워지려 애썼는데 기대대로 되지 않아 당혹스러워했다 예전 같으면 학교 안에서 교생선생님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아이들은 교생한테조차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달라진 점이 많아졌다는 고백도 내게는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자신의 고교시절에는 부모와 진로문제로 마찰을 빚어 갈등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는데 지금 애들에겐 그런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부모가 지목하는 길로 (현실지향적인 출세 성공의 길) 아주 순순히 부모 자식 사이에 의견일치가 이루어져 그 험난한 입시지옥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 때란 이제 유아기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 들어가게 되고 이상을 더 추구하는 시기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감각은 부족해서 냉정한 현실적 기준을 가진 기성세대와 충돌하는 게 한 인간의 성장에서 필요불가결한 과정 아닌가? 그러나 그런 사춘기의 반항은 이제 사라져버리고 있다

지금 아이들에겐 인생에 대한 고민 같은 건 할 시간도 여건도 안되거니와 현실적으로 원하는 건 풍요로운 소비가 최고이고 이를 위해서는 좋은 직장 가지는 게 필수적이니 돈 많이 버는 직업 원하는 부모의 바램에 아이들이 반항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생이나 되는 아이들이 날이 갈수록 마마보이, 마마걸들로 자라 학교에서도 교사가 옆에서 지켜봐줘야만 안심하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출세에 눈이 어두워 진짜 행복이 뭔지 생각도 못하고 남들한테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물불가리지 않는 엄마들까지는 그 욕심으로 보아 이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저 자식세대가 남보다 많이 가진 자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단순무식한 욕심일 것이고 그런 욕심이야 언제나 있어오지 않았는가

이태백 얘기가 큰 과장이 아닌 현실에서 절박함을 느낀 부모세대가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악다구니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볶아치는 건 그래도 납득이 가는 정서다 그런데 그럴 경우 아이들은 거기에 절망하고 반항하고 몸부림쳐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나 한참 꿈을 갖고 자유를 열망할 나이에 부모와 짝짜꿍이 되어 현실적인 목표에 얄미우리만치 자신을 갈고 닦는 이 아이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진짜 무서운 일 아닐까? 이런 일들은 인간의 품성이 가지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 각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적이며 그것은 모든 이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하는 개인주의가 바람직한 덕목으로 되어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원자화된 개인이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개인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며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속의 개인 또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훨씬 더 현실에 부합되는 말일 것이다 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교감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과연 그 속의 개인이 혼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좀비 같은 인간들, 영혼이 없는, 계산만 할 줄 아는 인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일은 끔찍하다

근대의 개인주의와 기술의 진보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지적처럼 수공예의 퇴보를 불러오고 그에 따라 생활의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것에서만 그친 게 아니라, 더 무서운 파괴,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파괴를 불러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장주의 원리가 모든 삶의 부분에 침투하여 인간관계마저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거래되는 상업적 성격을 띠어가고 있고 기술 진보에 의해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는 인간관계도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디지털 카메라나 컴퓨터가 그동안의 흔적을 순식간에 삭제해버리는 것처럼 잠시 존재했던 인간관계도 금방 냉혹하게 폐기처분되는 무서운 현상이 실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점점 사람들의 도덕성 자체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악한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도덕성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 이동하게 될 것 같다 부모나 지인을 죽인다는(거의 돈 때문에), 예전엔 경악의 대상으로나 여겨졌을 범죄행위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로 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신경쓰며 예전에는 비난받을 짓이었던 타인에 대한 무관심, 외면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비교적 도덕적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적극적으로 남을 해치거나 하지 않을 정도의 단계에 머무를 뿐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는 다른 생물체와 따뜻한 교감을 나누면 행복을 느끼는 감성이 있을진대 이런 원초적인 감수성을 사회적 조건화에 의해 억압당하는 인간들이 과연 자기의 껍질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할까 의문이다

얼마 전에 본 황석영 원작의 7,80년대 운동권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사회운동으로 오랜 세월을 감옥생활을 하고 나온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삶을 회한에 잠겨 이렇게 얘기한다

'그땐 나 혼자 행복하면 나쁜 놈인 줄 알았어, 바보같이.'

나는 이 ‘바보같이’라는 마지막 말에서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감독 입장에선 지나간 시대의 그들의 그런 삶은 확실히 삶의 낭비였고 바보같은 짓이었지만 그들의 그런 삶에 애정을 갖고 껴안아야 한다고 말하려 한 건 알겠는데 내겐 오히려 감독의 한계가 엿보여 씁쓸했다 하긴 감독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대사에는 요즘 우리사회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들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익은 소홀히 하고 상관없는 다른 이들의 일에 힘을 바치는 그 바보같음이야말로 단순한 생존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는, 오직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 아닌가 나 혼자 행복하면 나쁜 놈인 것 같은, 이런 마음으로 평생 살아간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알고 산 사람이 아닐까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삶의 태도로 서로를 걱정해가며 기대고 살아가는 게, 각자의 오만함으로 이루어진 사회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회 아닌가 나하나 행복한 게 최고라는 인간들 틈에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면 그건 거의 지옥 수준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랫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늘 수수께끼같이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이 죽은 교육을 왜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교과서와 밀폐된 교실과 교사의 주입식 수업에 의한 완벽한 죽은 교육을 아무 흥미없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죽어라고 집어넣으려 애쓰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정말 이해가 안갔다 누군들 이게 말도 안 되는 죽은 교육이란 걸 느끼지 못하겠는가?

사회 전체적인 구조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아이들에게 산 교육을 시킬 수 있을 텐데도 왜 이렇게 아까운 예산과 시간을 어리석게도 낭비하며 이런 쓰레기같은 교육을 고집하는가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시스템 속에서 죽은 교육을 날마다 하고 있지만 나라 전체가 바보짓을 열심히 하고 있다니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다

그러나 이젠 그게 사실은 계산된 바보짓임을 느낀다 이 사회의 지배계층들에겐 지금의 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바로 이죽은 교육이었던 것이다 사고가 자유로워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볼 줄 알며, 자신보다 공동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으며, 자신의 이익추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소비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인간형이 사회에 많이 배출된다면 현재의 이 체제는 영락없이 붕괴해 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현사회의 지배적 통념에 저항하며 참교육을 내세우는 전교조를 현재의 5적이라고 꼽은 것은 아주 정확한 지적이었다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적당히 멍청한 생각없는 좀비형의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완전히 죽어있으면 일을 부려먹을 수가 없고, 완전히 깨어 있으면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들을 눈뜨고 볼 수 없으니 그것들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날 게 뻔한 것이다 그러니 이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인간형, 즉 적당히 일은 시킬 수 있을 만큼 기능을 갖춘, 그러나 사회의식이나 타자들을 볼 수 있는 시각 같은 건 갖추지 않은 그런 인간을 충실히 키워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제도교육인 것이다

요즘은 거기서 더 나아가 소비를 통한 자신의 과시를 제일 과제로 삼는 인간형이 만들어져 기업의 요구를 충실히 채워주고 있는 지경이다 이렇게 아주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잘 수행해온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왜들 이럴까 하면서 혼자 끙끙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뿐이다

이 사회는 내 걱정과는 달리 원래의 의도대로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던 거다 그나마 그동안은 제도교육이 아무리 인간을 완벽하게 개조하려 애써도 인간을 죄는 지배이념의 작동방식이 그런대로 느슨했고 그동안의 사회가 지닌 문화의 힘에 의해 나름대로 그 벽을 허물고 제도교육이 의도하지 않은 인간형이 여기저기서 사회운동세력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서 지나간 시대의 모든 문화전통들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예전처럼 감옥에 가두고 협박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압살할 수 없었지만 물질의 풍요 앞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품성들은 그만 맥을 못추고 허물어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소비주의가 극에 달한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이제 정신을 잠들게 하는 데에 이보다 더 특효약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약발이 좋은 방법인 물질적 풍요 속에 파묻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제도의 측면에서는 아이들을 사회문제에 눈 돌리지 않고 잘 순응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한참 인생의 방향을 모색할 나이에 입시와 취업으로 꼼짝 못하게 묶어놓는 좋은 방법이 있다

거기다 소비생활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남들과의 권력구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영혼이 빈 아이들을 길러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런 사회를 원하는 쪽에서는 춤이라도 추고 싶어 할 것 같다 제도적 공교육이 결국은 지배층의 이익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면 이제 진정한 교육은 공교육에선 기대할 수 없음이 내겐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막강한 공교육체제,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는 대중매체들, 이기주의에 빠진 학부모들의 파워, 이런 것들로 끊임없이 포화를 맞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른 길을 보여준단 말인가 다만 그동안은 이 틀 내에서도 즉 교육부, 교과서, 학교단위의 교장의 지시, 그리고 학부모들의 성화 속에서도 아직 기존 체제의 세례를 확실히 받지 않은 아이들이 나의 편이 되어 주었기에 그런 대로 교사 개인의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이 지배적 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전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아군이었던 아이들마저도 이제는 기존 체제의 입장을 제 것으로 하고 오히려 더욱 무서워진 소비문화의 첨병으로 자라고 냉혹한 이기주의의 화신으로 변하여 교사에게 입시서비스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교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만 있는 것이다

인클로져 운동 당시의 사람들이 토지를 개인 소유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듯이,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땅을 팔라는 백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듯이, 어쩌면 이제 새로운 인간형이 바야흐로 탄생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같은 구시대의 인간들은 그들을 어이없어하며 바라보고 그들 또한 우리의 당혹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변화가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어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감 잡을 수가 없지만 어쩌면 인류역사는 이미 한 곳으로 방향을 틀고 나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안타까운 시대에 학교현장에 서서 달라지고 있는 아이들을 한해한해 지켜보며 그들의 무서운 변화를 이 사회의 누구보다도 앞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교사에겐 요즘 우울한 때가 자주 찾아온다 지난 해 어느 땐가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로 인해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바깥의 나무라도 좀 보기 위해 창가 쪽으로 다가가니, 창틀엔 아이들이 뱉어놓은 가래침이 질펀하니 고여 있었다

그날 나는 정말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다




출처 :
http://cafe255.daum.net/_c21_/bbs_read?grpid=17Lyi&mgrpid=&fldid=D5FC&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N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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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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