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결국 시작도입 부분을 쓰는 것을 완료하게 되었군요. 뭐 많이 한다고 해도 1편 정도가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원체 난해해서 완역하신 분의 해설을 봐가면서 다시 되새기는 중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원수같이 쳐다보게 되는군요. 이미 버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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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론』


저자 서문


학문이라는 개념이 오로지 또는 주로 완성된 체계와 학설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 논쟁할 필요가 없다. 얼핏 보면 이 책에서는 체계를 전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완성된 학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의 학문적 형식은 전쟁 현상의 본질을 연구하고 전쟁 현상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의 성격과 전쟁 현상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데 있다. 이론적 일관성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너무 가느다란 실이 되어 희미해질 때에는 나는 그 실을 끊어 버리고 이에 상응하는 경험적 현상에 연결시키는 방법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줄기가 너무 높이 자라면 식물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전쟁기술에서도 이론의 잎과 꽃들은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는 안 되며 본래의 토양인 경험 가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밀알의 화학적 성분으로부터 열매를 맺는 이삭의 모양을 밝혀내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왜냐하면 다 자란 이삭을 보려면 밀밭으로 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구와 관찰, 이론과 경험은 서로 경멸해서도 안 되고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서로를 보증해 주는 관계다. 따라서 이 책에 있는 명제들은 외적 논점보다는 경험이나 전쟁 자체의 개념에 그 내적 필연성의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논박의 여지가 없지 않다.

수준 높은 내용을 담은 체계적인 전쟁이론을 쓰는 것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쟁이론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이론의 비과학적인 정신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이론은 일체의 일상적인 것, 상식적인 것, 횡설수설로 이루어진 체계를 유기적이며 완벽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이에 관한 적절한 예를 만나려면 리히텐베르크의 소방규정에서 일부만 읽어보면 될 것이다.


“어느 집에 불이 나면 먼저 그 왼쪽 집의 오른쪽 벽과 오른쪽 집의 왼쪽 벽을 덮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왼쪽 집의 왼쪽 벽을 덮으려고 하면 그 집의 오른쪽 벽은 오른쪽 집의 왼쪽 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이 이 벽과 오른쪽 집의 오른쪽 벽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그 집은 불난 집 왼쪽에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오른쪽 벽은 왼쪽 벽보다 불에 더 가깝다. 그 집의 오른쪽 벽을 덮지 않으면 불이 왼쪽 벽으로 오기 전에 오른쪽 벽에 불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덮어두지 않은 벽에 불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곳을 덮지 않으면 다른 곳에 불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을 놔두고 다른 곳을 덮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어느 집에 불이 나면 그 오른쪽 집의 왼쪽 벽을 막아야 하고 왼쪽 집의 오른쪽 벽을 막아야 한다.”


이런 헛소리로 독자의 정신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별로 좋지 않은 것에 물을 부어 더욱 맛이 없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전쟁에 관한 다년간의 사색, 전쟁을 겪은 뛰어난 사람들과의 사귐, 나 자신의 많은 경험으로 알게 된 분명한 것들을 순수한 금속의 알갱이로 내놓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각 장은 얼핏 보기에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 연관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마 곧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서 몇 개의 열매들 대신에 전체의 내용을 찌꺼기 없는 순수한 금속으로 주조할 것이다.





알리는 말


“제 1편부터 제 6편까지는 깨끗이 옮겨 썼지만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원고의 모음에 지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다시 고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칠 때는 두 가지 종류의 전쟁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개념이 좀 더 엄밀한 의미와 분명한 방향성을 갖게 되어 자세히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종류의 전쟁에는 첫째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인 전쟁이 있다. 이 경우에는 적을 정치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든 아니면 단지 적을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이쪽의 어떠한 평화협정에도 따르게 만드는 것이든 상관없다. 둘째로 단지 적의 국경 지역에 있는 몇 개의 지역을 정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 있다. 이 경우에는 그 지역을 계속 점령하든 평화협정을 맺을 때 유용한 교환수단으로 삼든 상관없다. 물론 이 두 전쟁의 목적이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히 밝혀야 하며 양립하기 어려운 것은 여하튼 서로 구별해야 한다.

두 가지의 전쟁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 외에 역시 실제로 필요한 관점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확립해 두어야 한다. 그 관점이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국가정책의 계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확고히 해 두면 전쟁을 관찰할 때 통일성을 갖게 되며 모든 것이 좀 더 쉽게 풀릴 것이다. 이 관점은 주로 제 8편에 가서야 비로소 효과를 내지만 [2판: 비로소 적용되지만], 이미 제 1편에서 완전히 전개되어야 하며 1~6편을 고칠 때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고치면 1~6편에서 많은 찌꺼기를 털어 낼 수 있고 많은 틈을 메울 수 있으며 막연한 것들이 좀 더 분명한 생각과 형태로 넘어갈 수 있다.

공격에 관한 제 7편의 초고는 이미 만들어져 있으며 이는 제 6편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분명한 관점에 따르면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 7편은 새로 고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1~6편을 고치는 데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 8편은 전쟁계획, 즉 일반적으로 전쟁 전반의 준비에 관한 여러 개의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제대로 된 자료로 간주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며 다만 대강의 거친 작업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더 연구를 하게 된다면 무엇이 중요한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장들은 이 목적을 달성했으며, 제 7편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제 8편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제 8편에서는 주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유형의 전쟁에 관한 관점을 확고하게 하고 모든 것이 단순화됨과 동시에 정신적 측면이 강조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 8편이 전략가와 정치가의 머릿속에 있는 많은 고민거리를 덜어 주기를 바란다. 적어도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그리고 전쟁에서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지 제시하기를 바란다.

제 8편을 완성하면서 나의 생각이 분명해지고 전쟁의 중요한 특징들이 명확하게 확립되면 이러한 정신을 1~6편에 적용하고 그러한 특징들을 1~6편의 어디에나 그만큼 더 쉽게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1~6편을 고쳐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일찍 죽어 이 일을 중단하게 된다면 여기 있는 것은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잡다한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끊임없는 오해에 방치되어 수많은 설익은 비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문제에서는 누구나 자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글로 옮기면 그것이 출판할 만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2*2=4’와 같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처럼 몇 년 동안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 문제를 언제나 전쟁사와 비교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그는 비판을 하는 데 좀 더 신중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편견 없이 진실과 확신을 갈망하는 독자라면 1~6편에서 전쟁에 관한 다년간의 생각과 진지한 연구의 결실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며 아마 여기에서 전쟁이론의 혁명을 일으킬 만한 중요한 생각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827년 7월 10일,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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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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