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샤워하고 옷갈아입고 바로 방을 나오려다 뭐에 홀렸는지 30분 이상을 침대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오고 나니 바로 학원가기엔 너무 널럴하게 시간이 남고 그렇다고 다른 곳 갈 시간은 출근시간에 비춰 빠듯한 상황.
  결국 약국에 들러 모기에게 물렸을 때 붙이는 밴드 하나 사고 역 근처의 ** 은행과 ** 은행 지점에 들러 다음 달 방값을 낼 돈을 찾고 통장정리하고 속으로 "그래 이 빗속에 정처없이 찾아다니는 것이 더 이상한 거야" 하고서는 바로 학원으로 오는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슬슬 눈이 쳐지기 시작하네요. 아침에 잠을 더 잤을 걸 그랬나 보죠?

  어제 퇴근하고 나서 모처럼만에 새벽시간 노트작업을 하면서 한 달 쯤 전에 사 왔던 옛날 영화 [The Good, The Bad, The Ugly]를 디비디로 보았습니다. 최근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으로(사실 그 전부터 감독으로 명성이 자자해졌지만) 한 번 더 성가를 드높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로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떨치게 했던 바로 그 작품이었죠. 노트작업을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까닭에 이어폰을 낀 귀로 대사와 음악이 들어오는 한편으로 순간순간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는데 확실히 마지막에 투코가 묘지를 헤매는 장면의 음악과 세 사람이 묘지명이 씌어진 돌을 가운데 두고 벌인 결투의 직전 장면의 묘사와 음악은 기가 막히더라는... 제가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할 말은 아니지만 현대 영화에서 과거 이와 같은 극도로 절박함과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을 해 내는 이가 누구인지 알고 싶네요. 어두운 극장의 스크린으로 보면야 어느 정도 성취가 가능하겠지만 노트북 모니터로 보게 되도 그런 정도의 표현이 가능할지 말입니다.

  영화를 다 돌리고 난 뒤 자리에 누워 MP3P를 플러그를 연결해서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동안은 MP3P로 음악을 듣는 것은 출퇴근 및 밖에서 들었고 실내에서는 MP3P를 USB 커넥터를 이용해서 본체에 꽂고 충전하고 노트북 하드 안에 리핑했거나 어둠의 세계에서 얻었던 음악들을 플레이어 프로그램으로 들었던 편이죠.
  하지만 MP3P의 음장효과가 좋은 까닭인지 노트북의 사운드 카드 성능이 좀 떨어지는 편인지 MP3P로 듣는 것이 훨 낫더군요. 특히나 방 안에 누워서 감겨지는 눈을 추스리며 베토벤의 교향곡 5번, 9번 등을 푸르트벵글러 지휘의 녹음 소리로 듣는 것은 가히 제가 무슨 경지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방 안에서 MP3P를 직접 연결해서 들을 때에는 소리 높이를 "15" 안쪽에 놓습니다. 반면 바깥에서는 최소가 "26", 음악 자체의 소리가 저음대에 형성될 경우 이것을 자동차-기차 소음 등에 묻혀 놓치지 않으려면 최대 "40"까지 잡혀 있는 MP3P의 소리 높이를 제법 높여서 들어야 한다죠. 하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의 1악장을 밖에서 들으려면 소리 높이 "40"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더라는...

  가끔, 아주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바깥에서 만나게 되는 소리들, 자동차와 열차 소리, 사람들의 호객 소리, 싸우는 소리 등을 잠시 소리 높이 [0]로 만들고 자연 그 자체에서 우러나는 소리만으로 채워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음반상점(많이 줄어들었죠)이나 다양한 종류의 매장들 내부에서 시끄럽게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를 줄이고 사람들의 발자국을 멈추게 한 다음 "가사 없는" 음악을 틀어서 반응을 살피게 하는 것도 어떨런가 싶어요. 사실 어려서 "가사 있는 음악"을 기피하고 살아온 까닭에 가요는 물론 락-메탈이나 심지어는 오페라나 뮤지컬까지도 기피하고 살았던 배경 탓에 이런 생각이 나오는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가사 있는 음악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한 것이 군대를 제대하던 해였던 94년, 병장을 달고 지내기 시작했을 때였다면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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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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