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먹고사니즘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 처지(만약 20대 중반 취업의 고비 때 다른 일을 하고 마음껏 책을 읽으면서도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요)이다 보니 한편으로는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속상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강사 직을 기웃거려야 하는 입장... 그러면서도 간신히 자리를 구하게 되면 조직 내부에서의 심리적 갈등과 원론적인 부분에서의 심리적 갈등 등을 이겨내진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괴로워해야 할지 답이 잘 안 나오는군요.

  이곳저곳 웹서핑을 하다 한겨레 기사를 찾아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시 이 경로 저 경로를 타고 넘어다니면서 이 글을 찾았습니다. 제 과목하고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아니지만 학원가에 몇 년 몸담으면서 실감하고 있는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더라는...

  원저자 분의 요청이 있다면 비공개로 전환하도록 하겠습니다.

====================================================

[퍼온글] 어느 사교육 강사의 이야기 <하루 30분 투자하세요>


  회원의 이야기 : 2008/08/13 15:52

저는 사교육 강사입니다. 고3을 전문으로 하고, 돈은 꽤 법니다.

구체적 액수는 말 안하겠습니다.

한 달에 억대를 버는 스타급 강사는 아니지만, 예약한 학생이 몇 달씩 기다리는 정도 됩니다.


거두절미하고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사교육으로 성적 해결하려 들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초딩들 학원 뺑뺑이 돌리지 마세요. 아이 망치는, 인성 적성 이런 거 다 집어지우고

성적 망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초딩 때부터 기초를 잡아야 한다구요?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구요?

학원 뺑뺑이 돌려봐야 기초도 안 잡히고,공부하는 습관도 안 듭니다.

그저 시험 문제 푸는 요령, 답 외우기만 배워올 뿐입니다.



저한테 고3들 오는데요, 정말 가관입니다. 기본적으로 독해력이 안 됩니다.

영어 독해가 안 되느냐? 헐~, 한글 독해가 안 됩니다. 문제가 뭘 묻는지, 그거 이해를 못 합니다.

문제가 뭘 묻는지를 모르는데 뭔 정답을 맞히겠습니까? 공부 못 하는 학생들 아니냐구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내신 2등급 이하는 없습니다. 특목고라고 특별히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얘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뭐냐면, 문제 푸는 테크닉은 뛰어난데 사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 물음에 답하려면 제시문을 어느 관점에서 봐야하고,

틀린 선택지라면 어떤 근거에서 틀렸는지, 이거 판단하는 게 꽝입니다.

그리고 학생들, 교과서 안 봅니다. 별로 중요한 게 없어서 안 본다나요? 정말 어이가 상실입니다.

교과서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알찬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 기본 텍스트를 이해하지 않고

애들 들입다 문제집 풉니다. 그러니 어느 선에서는 절대 점수 올라가지 않습니다.

논술요? 교과서만 충분히 이해하면 다 쓸 수 있습니다.

대학 교수들, 교과 과정 내에서 냈다는 거 절대 거짓말 아닙니다.

제시문이 어려우니까 교과과정 벗어날 것 같지만 제시문의 주제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사회 문화 윤리 언어의 비문학 들춰보라고 하세요. 그 안에 다 있습니다. 근데 애들은 교과서 안 봅니다.

돼먹지 않은, 학원 강사가 여기저기서 베껴낸 참고서 보죠.

그 학원 강사들이 우리나라 교과서 집필진보다 실력이 더 낫겠습니까?

말이 길어지는데요. 학부모님들, 초딩 때 놀아도 중학교에서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중학교 때 못 해도 고딩 때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걱정 하지 마시고, 제 충고를 들어보세요.

초딩 때는 교과서를 반복해서 읽도록만 지도하십시오. 교과서를 읽고 기억나는 대로,

자기 생각대로 공책에 한 번씩 적어보라고 하세요. 이거면 공부 충분합니다. 수학이 걱정되세요?

교과서 풀고 다른 참고서 한 권 사서 혼자 풀어보게 하세요. 채점하게 하시구요,

틀린 거 다시 풀게 하세요.


이거 하루에 10분이면 어머니들께서 체크 가능합니다. 어머니들이 풀어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맞을 때까지 다시 풀고, 다시 푸고 반복하게 하세요. 창의력 수학 수업 시키고 싶으세요?

서점 가면 "문제 해결의 길잡이"라고 있습니다. 책 좋습니다. 그거 풀어보게 하세요.

중학교 때부터는 명품 수학 추천합니다.

제가 출판사 직원 아니지만, 동료 사교육 강사들로부터 들은 얘깁니다.

어렵지만 계속 혼자 풀게 하세요. 정 모르겠으면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여쭤보라고 하세요.

학생이 물어보는데 퇴짜 줄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영어 걱정되십니까? 원어민 학원 보내신다구요? 헛돈 버리고 계십니다.

서점에 가셔서 영어 동화책 두 권 사세요. 그거 외우게 하세요. 달달 외우는 겁니다.

CD나 테잎 듣고 받아쓰게 하세요. 이거면 영어는 끝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해보세요.

중딩이고, 내신 걱정 되시면 교과서 외우게 하세요. 영어 교과서 달달 외우는데 시험 왜 못 칩니까?

중2쯤 되면 문법 나옵니다. 서점에 가셔서 제일 쉬운 영어 문법책 사세요.

그걸 최소한 3번 반복해서 보게 하십시오. 어려운 문법책 절대 필요 없습니다.

요즘 문법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을 알아야 독해가 계속 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 시간표 정해주시고, 체크만 하게 하십시오. 아이들 잘 안하죠.

직장 다니는 어머니들은 시간도 없으실 거구요. 애들 숙제 안 해놓으면 싸우게 되니까 피곤하고,

그러니까 돈 주고 학원 보내시죠. 이거 아이들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공부는 과외, 학원 오래 다닌 애들, 고딩 되면 어느 강사의 말도 안 먹힙니다.

그거 시험 비법만 찾게 되죠. 비법 안 가르쳐주면 다른 선생으로 바꿉니다.

요령 가르쳐주면 선생 실력 있다고 하구요.

이렇게 요령만 배우려고 드니까 수능 망치고 징징 거립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가서 내신 잘 받아오는데, 우리 아이만 집에서 빈둥거리니까 너무 불안하시죠?

중학교 때부터는 EBS 있으니까 이것만 해도 웬만한 학원보다는 낫습니다. EBS 정말 좋습니다.

초딩 때부터 혼자 하는 습관 들이면, 힘들어도 자기가 책보며 푸는 습관 들이면 고등학교 때는

반드시 성적 나옵니다.

혼자 안 되는 아이는 학원 보내도 안 됩니다. 어떤 강사를 붙여도 안 됩니다.

모두가 다 공부 잘할 수는 없습니다.

내 아이, 공부에는 별 적성 없을 수 있습니다. 저의 아이도 마찬가지구요.

이 아이를 학원 보내서 뺑뺑이 돌리면 그저 요령만 늘고, 생각 줄어들고, 열의 없어지고 부작용만 늡니다.

차라리 놀게 하세요.


공부할 애들은 놀다가도 어느 순간에 공부 좀 해야 하는데.....하는 시간이 옵니다.

지들이, 엄마 나 공부 좀 해야 하는데 할 겁니다. 대부분은 그렇게 합니다. 과외는 그때 붙이세요.

자기가 하려고 할 때 그때 과외가 효과가 있는 겁니다. 대학 안 가려고 한다구요?

애랑 진지하게 대화해보세요.


요즘 애들 배짱 없습니다. 나 대학 안가고 고졸로 뭘 해볼래 하는 애들 있다면, 칭찬해주세요.

그 패기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애들 대학 가고 싶어 합니다.

공부 안하려고 하는 건,

엄마가 초딩 때부터 들볶지, 학원 매일 다니지만 성적 안 오르지, 나는 안 되는 것 같지,

그러니까 재미없지 이 모든 게 종합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 말씀드렸습니다. 초딩 때부터 교과서 읽고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는 것,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그걸 자기가 읽고 뭔가 이상하다, 말이 안 된다 싶으면 다시 책 찾아서

읽어보게 하세요.

이것만 되면 공부는 됩니다. 이 간단한 걸 안 해서, 그 엄청난 돈 들이며,

효과도 없는 학원 뺑뺑이 돌리며, 애 학대하고 부모 스트레스 받고.......

수능, 공부 엄청 해서 치르는 것 아닙니다. 공부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자기가 책상 앞에서 책을 보며 읽고, 이해하고, 이상하다 싶으면 찾아보고,

공부한 후에 자기가 공부한 걸 체크해보고, 이게 답니다. 이걸 안하고 학원에서 뭘 합니까?

우리 애는 머리가 안 된다구요? 고등학교에서 무슨 핵융합로 만듭니까?

고등학교 공부 머리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정확하게 쓰기만 하면 웬만한 대학은 다 갑니다. 엉터리로 하니까 시간 버리고

돈 버리는 겁니다.


이 엉터리 공부 습관 들이지 않으려면 제발, 제발 부탁인데 학원 보내지 마세요.

제 주변의 한다하는 사교육 강사들, 지 새끼 학원 안 보냅니다. 저도 아직 학원 안 보냈고요.

우리 애 중학생인데 반에서 10등 정도합니다. 그래도 영어는 자기 혼자서 하는데

지금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영어번역본을 혼자 외우고 있습니다, 해리 포터 혼자서 번역하구요.

엉터리 번역 많지만 내버려둡니다. 수학 오답노트만 체크해주고 그게 답니다.

성적 별로지만 저 상관 안합니다.

요즘 우리 애는 집에만 오면 지 방에서 혼자 만화 그리느라 정신없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전 내버려둡니다.


수행, 만점 받으려고 밤새는 그런 거 저 안 시킵니다. 요즘은 수행 전문 강사도 있더군요.

정말 어이없어서...... 지 혼자 해서 10점을 받든, 20점을 받든 그걸로 만족입니다.

줄넘기 좀 못하면 어때서 그거 땜에 애 밤새우게 합니까? 우리 애는 특목고는 못 가겠죠.

상관 안합니다.근데 외고 같은 경우, 영어 시험 영작과 듣기만 친다는 거 아세요?


지금 자제분 다니는 학원, 영작 시킵니까? 이거 학원 다닌다고 테크닉 배운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영어책 외우고 자꾸 혼자 번역해봐야 나중에 영작이 됩니다.

수학요? 특목고 전문 학원 그거에 속지 마세요.

자기 혼자 수학 붙들고 끙끙거리지 않으면 특목고 문제 못 풉니다. 대학요?

연고대 나와도 지가 사고하는 능력 없으면 취직 안 되고, 취직 해봤자 입니다.

과외로 칠갑을 해서 연고대 가서 1학년 때 성적미달 받아오는 애들 많습니다.

과외 선생 없으면 리포트도 못 쓰는 애들. 이런 애들, 좋은 대학 나와 봤자 아무 것도 못 합니다.

제발 혼자 하게 좀 내버려 두세요.


재작년에 저에게 온 학생 있었습니다. 내신이 반에서 16%쯤 되니까 2등급도 안되죠.

제가 얘를 받은 건 중학교 때부터 과외를 한 번도 안 하고(초딩 때 윤선생 영어 했다고 합니다.

그게 답니다) 혼자 했다는 말을 듣고 제가 받았죠. 인강만 가지고 공부하더군요.

얘, 고려대 수시1 걸려서 지금 고려대 다닙니다.

논술을 잘 썼거든요. 늘 혼자 하다 보니 사고력이 있는 겁니다.


또 한 아이. 얘는 집이 어려워서 학원도 제대로 못 다닌 애였습니다.

성적은 내신 1등급이지만 수능이 안 나왔어요.아는 사람이 부탁해서 그저 가르쳐줬습니다.

돈 많이 벌고 세금도 적게 내는데 이런 애는 그냥 가르쳐주는 게 도리다 싶어서요.

해마다 이런 애 몇몇이 있습니다. 언어와 논술 딱 석 달 시켰습니다.

이런 애들은 정말 가르치기 좋습니다.

가르치면 쏙쏙 들어갑니다. 학원과 과외에 닳은 애들은, 나쁜 습관 고치느라 진을 다 뺍니다.

얘, 자기 엄마가 가사 도우미인데요, 서울대 수시 입학했습니다.

학부모님들,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공부 잘 하는 애들은 혼자 하는 습관에 더해서 과외가 붙는 겁니다.

과외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제대로 된 과외강사는 혼자 하도록 지도해주는 강사입니다.

기본을 가르쳐주는 강사, 이게 정말 제대로 된 강사입니다. 강사의 화려한 언변과

당장 수능 점수 올려주는 그 테크닉에 속지 마세요. 그런 강사들은 딱 3달 장사하고 그만하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학생들 돌립니다.

주변을 보고 마음 흔들리지 마시고 어릴 때부터 공부는 혼자 하는 거다,

알 수 있도록 학원 제발 보내지 마세요.

지금 고3인데 성적 안 나옵니까? 재수 1년 시킨다 생각하시고 혼자 하게 하세요.

그럼 재수 1년 해서 대학 갈 수 있지만 마음 조급해서 과외선생 들입다 붙이면 대학도 안 되고

내년에도 똑같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부탁입니다. 학원 보내지 마세요. 하루에 30분만 투자해서 체크만 하세요.

가르치려 들지 마시고 체크만 하시고 칭찬 많이 해주세요. 넌 천재다, 고등되면 넌 팍팍 오른다,

칭찬 하시면서 혼자 하게 지도하세요. 공부 안 해놨을 때 절대 야단치지 마시고 안 한 것 다시 시키세요.

이것만 하세요. 6개월만 해보세요. 부탁입니다.

하루에 30분 체크 그거 귀찮아서 안하면서 입시가 어떠니,

일류 강사가 어떠니 강남 대치동 엄마들이 어떠니......에효.

  알라딘에서 음반 체크해 놓고 새벽 시간동안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알라딘을 통해 제일 저명한 북 리뷰어 블로거라고 할 수 있는 "로쟈" 님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인문학 계통에 종사하고 계신 그분은 요즘의 전개상황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여타의 인터넷 언론이나 몇몇 아는 블로거 분들의 블로그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측면도 있었고.

  아래의 부분은 그분의 블로그에서 미국 쇠고기의 수입 협상과 관련해 프레시안에서 칼럼을 옮겨온 것을 불펌해 온 것이다. 프레시안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뭔가 한 번 더 재확인하는 기분이랄까... 어쩌면 이 글들을 파일화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잠시 읽어보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사를 옮겨온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04095610). 이번 '광우병' 사단을 불러일으킨 한미간의 합의문 내역에 대한 법학자의 해석인데, 그에 따르면 이번 협상 결과를 정부는 은폐했다. 그리고 그 핵심이란 건 '굴욕'이다. 이 해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확한 해명이 듣고 싶다.

프레시안(08. 05. 04) [송기호 칼럼] 국민이 몰랐던 네 가지 진실 

나폴레옹의 진짜 업적은 전쟁 승리보다는,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법전은 최초의 근대적 민법으로, 사유 재산제와 계약 자유를 담았다. 그리고 그의 법은 나폴레옹 자신의 말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민법을 만들 때, 조문의 해석에 다툼의 소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법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완성된 법전에 만족하면서, 이 정도면 장차 어떤 프랑스인이 읽더라도 그 의미가 명확할 것이라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에, 파리에서는 그의 법률 조항의 의미를 놓고 해석론의 대립이 발생했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라도 그 해석에서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서로 언어와 가치가 다른 나라 대 나라 사이의 합의문을 놓고 그 해석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아예 1969년에, 유엔 회원국은 비엔나에 모여,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안에 국가 간의 합의문을 어떻게 해석할 지 그 원칙을 정해두기까지 했다. 여기서 합의된 일반 원칙은, "합의문의 문맥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ordinary meaning to be given to the terms of the treaty)"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이다.
 
나라 간 합의문의 해석의 출발은 그 문항의 문언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률가라도 조문 없이 해석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운천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18일 미국과의 쇠고기 광우병 검역 협상을 타결하면서도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보도 자료만을 냈다. 법률가가 합의문 문항을 보지 못하고, 보도 자료를 보고 그 의미를 새겨야 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법률가에게 필요한 것은 조문이지 보도 자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즉시, 미국과의 합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고자, 농림부 장관에게 합의문 영문본과 한글본 공개를 청구했다.


 
은폐 1 : 국제수역사무국 결정 없이 검역 주권 행사 못한다
나는 농림부 장관의 공개를 기다리면서, 보도 자료라도 읽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도 자료였다.  

미국 내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미국 측은 즉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한국 정부에 통보하고 상호 협의키로 하였으며, 동 역학조사 결과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일 경우 수입을 전면 중단키로 하였음.


가슴이 꽉 막혔다.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 회원국이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SPS 협정)이 보장하는 검역 주권을 누리고 있다. 특히 국제 검역법은 조류독감, 광우병 등과 같이 확실한 과학적 설명을 하기 어려운 전염병에 대하여,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라도 회원국이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국제법적 권한을 주고 있다. 해당 조문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관련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회원국은 이용가능한 적절한 정보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 (In cases where relevant scientific evidence is insufficient, a Member may provisionally adopt sanitary or phytosanitary measures on the basis of available pertinent information…) : 위생검역협정 5조 7항


만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이는 일단 미국의 광우병 통제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왜 광우병이 추가 발생했고,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판명하여 거기에 맞는 수준의 검역 조치를 취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바로 위 조문은 이와 같이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라도, 그 시점에서 여러 이용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권한을 한국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서의 광우병 추가 발생을 급히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해 놓고 나서, 광우병 추가 발생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한 후, 심각하지 않은 사건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다시 수입을 하면 된다. 이는 국제법이 보장한 한국의 검역 주권이다. 그리고 이는 농림부 장관의 고시인 '지정 검역물의 수입 금지 지역'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 고시는 악성 가축 전염병인 광우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에도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5조(수입 금지 등) 농림부장관은 제3조 제1항의 수입 금지 지역으로 지정되지 아니한 지역에서 악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법 제32조의 규정에 의하여 당해 지정 검역물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법 제52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검역 중단·출고 중지 등 당해 병원체의 국내 유입 방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 농림부 보도 자료는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누리고 있는 잠정 조치 권한과 농림부 고시 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오늘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미국의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이다. 그 결과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일 경우"가 아니면,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위와 같은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의 합의문 영문본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22일, 미국과의 합의 내용을 입법 예고를 했다. 이제 위 보도 자료는 이렇게 5항으로 조문화되어 있었다.
  

5.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다.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법률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는 앞의 보도 자료와 다르다. 앞에서는 마치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한국이 마치 어떤 독자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위 입법 예고안에서는 미국의 조사 결과는 조사 결과일 뿐이다. 닫혀 있다. 그리고 한국의 자주적 권한은 점점 사라진다. 아예 문장의 주어가 "추가 발생 사례"라고 하는 과거의 사건, 곧 한국이 개입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그리고 국제 기구의 지위 분류라는 사건에 한국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써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위 조항을 다시 읽었다. 한국의 실낱같은 희망처럼 보이는 단어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를 새겼다. "영향"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는 "어떤 사물의 효과나 작용이 다른 것에 미치는 일"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은 본질상 미국의 광우병 등급 지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부정적 영향 여부를 결정할 것인가? 결국 내겐 합의문 영문본이 필요했다.
 
그런데 농림부 장관은 지난 28일에, 내게 통지를 했다. 아직 자구 수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문본 공개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난 22일에 그 한글본을 입법 예고를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영문본을 보기 위해 농림부 장관을 제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통상법을 한다는 법률가가 통상법 조문을 보려면 장관을 제소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게는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합의문 영문본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영문본을 보고 해석하지만, 나는 소송에서 장관으로부터 당당히 영문본을 건네받을 것이다. 앞으로 통상법과 식품법을 하려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마침내 영문 합의문의 문항을 보면서 해석의 궁금증은 모두 풀렸지만, 결론은 비참했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5. In the event (an) additional case(s) of BSE occur(s) in the Untietd States, the US government shall immediately conduct a thorough epidemiological investigation and inform the Korean government of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The U.S. government will consult with the Korean government about the findings of the investigation. The Korean government will suspend the importation of beef and beef products if the additional case(s) results in the OIE recognizing an adverse change in the classification of the U.S. BSE status.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사례(들)이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다. 미국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들)이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 '하향 변경(adverse change)' '공인(recognizing)'으로 귀결되는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명확했다. 마치 나폴레옹이 만들려고 했던 민법처럼, 위 조항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아무리 많이 발생하더라도 자주적으로 검역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농림부 장관이 그토록 사랑하는 국제수역사무국에 달려 있다.
 
영문본과 한글본을 대조하면서, 나는 농림부 장관의 능력을 재발견했다. 그는 영문 합의문에는 있는 "case(s)"의 복수 명사를 한글 보도 자료와 입법 예고안에서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합의문의 "adverse change"를 한글에서는 "반하는 상황" 혹은 "부정적인 영향"으로 옮겼다. 아마도 농림부의 영어 사전에서는 "change"란 "상황" 혹은 "영향"이라고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농림부 장관의 유능한 대가로, 한국은 WTO 회원국으로서 가지고 있는 잠정 조치 권한, 그러니까 국제법에 의하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한 법적 권한을 포기했다. 이것은 헌법 위반 행위이다. 그 어떠한 장관도 국회의 동의 없이 주권의 제약을 가져오는 합의를 외국과 할 수는 없다.



 
은폐 2 : 미국 쇠고기의 월령 표시는 어떻게 되는가?
농림부 장관의 능력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그의 능력은 빠짐없이 발휘되었다. 쇠고기 월령 구분제를 보자. 30개월령이 넘은 쇠고기를 포장 상자에 표시하도록 하는 문제(Marking requirements for OTM meat)는 한국으로서는 검역의 실효성을 좌우하는 본질적 문제이다. 눈앞의 쇠고기나 등뼈만을 달랑 보고 그 나이를 판별할 수 있는 검역 공무원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검역 기준에는 미국 정부의 검역 공무원은 쇠고기 수출 검역 증명서에 반드시 소의 월령이 30개월 미만임을 확인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19조 1항). 그런데 농림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예의 그 보도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협상에서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수출 검역 증명서상의 도축 소 월령 표시 여부와 관련해서는 개정된 수입 위생 조건 발효 후 180일간 등뼈가 정상적으로 포함되어 가공되는 티-본 스테이크 수출품 등에 한해 해당 쇠고기가 30개월령 이하임을 표기하고 180일 이후 계속 표시 여부에 대해 추가 협의키로 하였음….


이 보도 자료가 우리에게 정말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 검역 공무원이 발행하는 수출 검역 증명서에, 도축소의 월령 표시를 하지 않기로 한국이 합의해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공무원이 수출 검역 증명서에 기재해야 할 사항에서 소 월령 표시는 삭제되었다(합의문 22조 1항). 이로써 미국 정부는 개개의 쇠고기 제품에 대한 월령 보장 책임에서 벗어났다. 미국 도축장의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선적되는 제품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쇠고기 월령 확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사라졌다.
 
나의 해석이 맞는다면, 앞으로 한국의 검역 공무원은 초능력자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그는 쇠고기 상자에서 뼈와 살을 구별하면 되었다. 소의 나이는 미국 공무원이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보이지 않는 미국 도축업자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눈앞의 등뼈가 실은 30개월령이 넘는 소의 광우병 위험 부위인데도 미국 도축업자가 그만 나이를 잘못 감별하는 바람에 한국으로 불법 수출된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보고? 나의 해석대로라면 단지 그 등뼈만을 보고.
 
그래서 미국 도축장을 직접 철저 현지 점검하시겠다고? 불가능하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기준에서는 한국이 개별 승인해 준 도축장만이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농무부의 검사를 받는 모든 도축장이 자격이 있다. 둘째, 노무현 정부 시절의 기준에서는 한국 검역관은 모든 미국 도축장에 대해 현지 점검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중대한 위반을 적발해서 해당 작업장에서 한국으로의 수출 작업이 중단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표성 있는 표본에 대해서만 현지 점검을 할 수 있다. 한국이 도축장에서 중대한 위반을 적발하더라도 그 결과를 미국정부에 통보할 수 있을 뿐이다(8항). 이 표본에 포함되지 않으면, 미국의 도축장은 한 차례 정도의 심각한 위반을 저질러도 한국의 현지 점검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는다(24항).


 
은폐 3 :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전수 검사를 할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전수 검역 검사를 할 권한을 정면으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물론 연간 약 2억3000만㎏ 의 미국산 쇠고기 선적 물량을 전수 검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특별 점검 대상이 되는 도축장의 제품이라든지, 혹은 특정 상황에서는 전수 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합의문 영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3. If an SRM is found, FSIS will conduct an investigation to determine the cause of the problem. Product produced by the pertinent meat establishment shall continue to be eligible for import quarantine inspection. However, the Korean government will increase the rate of inspection of subsequent beef and beef products from the meat establishment. After the Korean government inspects five lots of equal or greater quantity of the same product without finding a food-safety hazard, the Korean government shall apply its standard inspection procedures and rates.(광우병 특정 위험 부위가 발견될 경우, 미국 식품안전검사국은 그 원인을 판정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해당 도축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한국의 수입 검역 검사를 받을 자격을 계속 가져야 한다. 단, 한국 정부는 해당 도축장의 향후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 대한 검사 비율을 높일 것이다.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수량인 동일 제품 5개 수입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검사를 한 후, 식품 안전 위해 요인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한국 정부는 표준 검사 절차와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검사에서는 표준 검사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즉 전수 검사는 안 된다. 이렇게 새기지 않는다면, 이 조항은 존재 의의를 잃는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다시피 광우병 위험 특정 부위가 발견된 경우라 해도, 한국은 그저 검사 비율을 높일 수 있을 뿐이고, 그것도 5회 검사 합격이면 그 비율을 다시 내려야만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전수 검사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의 조약 해석 원칙에 어긋난다. 조약을 해석하는 데에서, 어느 조약 문구를 무의미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는다(effective interpretation principle).
 
농림부 장관의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합의문 시행 후 180일이 지나면, 한국의 소비자는 눈앞의 갈비 스테이크(티본 스테이크)만 보고, 그 월령을 구별할 능력을 지녀야 한다. 앞에서 보았던 보도 자료는 마치 180일 이후 계속 표시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80일이 지나면 갈비 스테이크 월령 표시 제도는 폐지된다. 대신 한국과 미국의 협의가 시작될 뿐이다. 이 협의에서 미국은 자신에게 불리할 경우, 결코 갈비 스테이크 월령 표시 제도 부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합의문 부칙 3항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U.S. government agree to have consultations upon the completion of the 180 day period with a view to addressing concerns after reviewing the notation's effect on beef trade and its inspection.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180일 기간이 다하면, 쇠고기 교역과 검사에 미치는 표시의 영향을 검토한 다음, 관심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 부칙 3항


은폐 4 :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 등의 뇌, 척수를 동물 사료로 사용한다
 
글이 길어지지만, 마지막으로 농림부의 노력이 얼마나 핵심적 주제를 대상으로 일관되게 진행되는 지를 확인하자. 농림부는 지난 2일, 그러니까 기자들과의 이른바 끝장 토론에서 미국의 이른바 강화된 사료 조치를 놓고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 자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광우병 감염 소,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광우병 위험 물질이 있을 수 있는 뇌나 척수를 제거하도록 하였고,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2면).


그러나 나는 미국의 사료 조치에 대해 달리 해석한다. 미국의 사료 조치는 '주저앉는 소'와 같이, 사람의 식용을 위한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라도 30개월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뇌와 척수마저도 동물 사료로 급여하도록 하는, 그런 것이다. 그 원문은 이렇다(73FR22720).
  

The FDA is amending the agency's regulations to prohibit the use of certain cattle origin materials in the food or feed of all animals. These materials include the following: The entire carcass of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y(BSE)-positive cattle; the brains and spinal cords from cattle 30 months of age and older; the entire carcass of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that are 30 months of age or older from which brains and spinal cords were not removed; tallow that is derived from BSE-positive cattle; tallow that is derived from other materials prohibited by this rule that contains more than 0.15 percent insoluble impurities; and mechanically separated beef that is derived from the materials prohibited by this rule. These measures will further strengthen existing safeguards against BSE. (미국 식약청은 소에서 나온 특정의 물질을 모든 동물 사료로 급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규정을 개정한다. 이 사료 급여 금지 물질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광우병 감염 소의 전체 부위, 30개월령이 넘은 소의 뇌와 척수, 30개월령이 넘는 소로서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에서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은 경우 그 소의 전체 부위, 광우병 감염 소에서 나온 우지, 이 규정에서 금지 물질로 정한 것에서 나온 우지로서 불용성 불순물 함유가 0.15% 이상인 것, 그리고 이 규정에서 금지 물질로 정한 것에서 나온 기계적 분리육. 이러한 조치는 현행 광우병 안전 조치를 더 강화시켜 줄 것이다.)


이를 두고, 농림부는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미 식약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73FR22733).
  

Further, the regulations were revised to exclude from the definition of CMPAF certain cattle that have not been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Under the proposed rule, cattle that wer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were excluded from the definition of CMPAF if their brains and spinal cords were removed. The final rule was revised to indicate such cattle are not considered CMPAF if the animals were shown to be less than 30 months of age, regardless of whether the brain and spinal cord have been removed. (또 당해 규정은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특정 소를 사료 급여 금지 물질의 정의에서 제외하도록 개정되었다. 종래의 입법 예고에서는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는 그 뇌와 척수가 제거되어야 사료 급여 금지 물질의 정의에서 제외했었다. 본 최종 규정에서는 그런 소라도 뇌와 척수의 제거를 불문하고 30개월령 미만인 경우에는 사료 금지 물질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를 개정한다.)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조항에 항상 유일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실패한다. 나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학자적 소신으로 문언적으로 살펴보았을 땐, 이건 굴욕의 합의문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굴욕은 은폐되었다.(송기호/변호사·조선대법대 겸임교수)

08. 05. 04.

P.S. 프레시안의 후속기사로는 진중권의 '대중은 무엇에 분노하는가?'(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505124327) 참조.

  결국 지난 일요일의 배정은 비로 취소되고 일요일 하루는 방안에서 보낼 수 있었다(뭐 도시락 사러 나갔다 오기는 했지만 그 정도 가지고 외출이라고 하기엔 이제 너무 심드렁해져서). 그러면서 사진출력(야동 관련이라면 믿으려나...)을 우여곡절 끝에 몇 장 하고 교과서에 있는 사진자료를 스캔해서 저장하는 등의 일을 정리하니 어느 사이에 월요일 새벽...

  지난 주 학원 영업 시간 단속에 걸리는 통에 (학원에서 먹은 것이지만) 벌점을 먹고 그 영향으로 이번 주부터는 무조건 23시까지는 모든 수업을 마쳐야 한다. 22시까지 아닌가도 싶지만 최대허용치까지 치면 23시인가도 싶은가 해서 심드렁하게 지나쳤다. 안 그래도 수업시간도 단축되고 쉬는 시간도 줄어드는 통에 아래위층으로 부지런히 이동하느라 몇 계단이나마 뛰었더니 무릎이며 발목이 쉬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란 참...
  퇴근 후 작업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찌감치 씻고 노트북을 켰지만 정작 꼭 필요한 작업은 뒷전이고 웹 서핑하며 유료 사이트 문제자료만 찾아 다운 중이다. 오늘이 1년 유료가입 만료일인데 연장을 해야 하나, 다른 문제 사이트로 갈아탈까 고민 중인데 참 답이 없다.

========================================
  심판부의 카페에 들어가서 지난 금요일에 있었다는 정기모임의 후기를 확인했는데, 동대문구장 철거와 목동구장의 개-보수, 구의-신월구장 공사 진행과정에서 우리가 소속된 측의 의견이나 안배는 철저히 배제된 느낌을 받았다. 뭐 당장 연합회 대회를 진행하는데 있어 서울시내에 위치한 번듯한 구장을 사용할 수나 있을까 의심될 정도니까.
  전국규모 사회인 대회가 지방에서 열리게 될 경우 현지에 내려가서 경기를 진행하는 요원(8에서 9명 남짓 선정)으로 지난 해 선정되었다가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고사하겠음'이라는 언질을 했었는데 - 정작 지난 해 지방 내려갈 때는 전원 서울에서 내려갔다는 - , 올해에도 그런 성격의 요원을 선발하면서 내 이름은 빠졌다. 그래서 '홀가분하면서도 시원섭섭하다'고 댓글을 남기니 내가 삐진 것으로 느꼈는지 이유를 달아준 친절한 고참 심판원(회계담당 총무형)님... 이미 학원에서 중등부 레벨의 강사 노릇을 직업이라고 시작한 이래로 주 6일 근무에 시험기간이 되면 일요일이고 뭐고 없는 처지니 - 지금 하고 있는 쪽은 아예 여름 이후는 주 7일 꼼짝 마라 모드가 될 가능성이 큰 쪽이니만큼 - 지방행은 꿈도 못 꿀 상황은 내가 초래한 것이니 상관할 바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곳의 또다른 고참 심판원에게 돈 문제로 심한 배신감을 맛본 처지라 안 그래도 지금의 심판부 조직의 움직임이나 비전, 고여버린 듯한 느낌의 집행부에 잔뜩 실망하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 직접 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 하나도 싶지만 몇 년 째 정기모임은 커녕 술자리를 같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내 자신의 생각이 객관화될 수 있을지나 의심스럽다는 -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떠나고픈 마음뿐이다. 그런데 정작 심판부에서는 언제 어떤 모양새로 떠나야 할까를 고민 중인데 학원 안에서 심판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하며(바람막이 옷이나 트레이닝 재킷 정도지만) 심판경기 경력을 이야기하는데 잔뜩 호기심을 내며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 세계의 에피소드를 말해주는 일이 더 잦아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참 이상스러울 지경이다.

=========================================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 내일 모레 설문조사가 있다고 한다. 신입 선생님들에 대한 평가를 학생(만이 될지 동료 강사까지 포함될지)가 이루어진다는데, 그 평가에 따라 올해의 계약 유지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최악의 경우라면 근무기간이 3월 초에서 불과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일 수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전체회의에서 받았다고나 할까. 그런 것에 신경은 쓰고 싶지 않지만 요전 학원에서도 수업은 수업대로 자료는 자료대로 힘들게 만들고 남 좋은 일들은 다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학생 설문조사 결과의 부진으로 - 그리고 학년최상위레벨 팀장(수학과목)의 질시도 있었다는데 알 도리는 없다는 - 1년을 채우고 떠나야 했던 기억때문에 즐겁진 않다.
  그래도 지금 일하게 된 곳에서는 바쁜 와중에 업무(문제출제라던가 잔무에 해당하는 부분)적인 부분에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큰 탈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지만 - 을 제외하면 자신 스스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나 할까. 수업 진행 도중 아이들이 힘에 부쳐 하는 모습을 보여도 내 불찰이나 내 단점 - 혀가 짧은 영향인지 말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다 보면 중간중간 새는 경향이 있음을 최근에 알기 시작했다. 교재연구도 한답시고는 하지만 뭔가 매너리즘에 빠져 실수가 잦아진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고 -  때문이 아닐까 하는 성찰이 생기기 시작한다. 목소리 크다고 일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
  문제를 만들고 어쩌고 해야 하는데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읽은 책(읽지 못한 것이 더 많지만)들을 그런 부분에 소모(?)해야 하는가 싶은 자조가 드는데 달리 대안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신문기사 퍼오는 것은 너무 뻔한 짓으로도 느껴지기에... 지난 번 반편성고사 문제를 만든답시고 사회 쪽 몇 문제를 만들어 옆자리 선생님께 드렸는데 나중에 나온 것을 보니 한 문제도 포함이 안 되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것이었으려나. 아니면 중학생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에 틀이 안 맞은 것이었으려나... 일회성 소비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듯한 신문기사를 쓰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도 싶은데... 천상 [시사 IN]과 같이 소중한 기사들을 이런 곳에 써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긴 내가 읽어낸 책들의 내용을 문제에 써먹기엔 텍스트의 길이가 너무나 길거나 세칭 "주류"의 세계에는 무리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시원 책상에 3단으로 쌓아올린 책들의 면면을 보면 누가 봐도 "주류"로 인정받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겠다도 싶다.

=======================================
  지승호 님이 신해철 씨를 인터뷰한 [신해철의 쾌변독설],  마지막 날의 인터뷰는 설렁설렁 넘어간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다 읽었다. 중간의 몇 대목은 현 사회의 문제의식과도 닿아 있어 문제화하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과연 써먹을 수가 있을진 고민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책에서 얻어낸 귀중한 생각의 파편조각들을 아이들의 시험대비용 문제로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가책이 느껴지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지젝의 책을 읽던 중에 순서를 바꿔 최대한 빠른 시간에 독파를 한 것이니 자조 정도는 해도 될 듯 싶다. 오늘, 아니면 내일 중에 서점에 가서 지름신이 명하실 또 다른 책이 없는지 찾아볼까도 싶다. 보통 오프라인에서 선호도를 체크하고 온라인(포인트 등을 고려해서 보통 [알라딘]에서) 으로 지르는데 [신해철...]은 오프라인에서 지를 정도로 급하게 샀던 것으로 또 그런 느낌이 드는 넘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미 한 번 읽었던 책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읽는 것도 나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만 읽어가지고 그 책 안에 들어있는 생각의 정수들의 날줄과 씨줄을 나의 생각과 완벽하게 엮어내는 것은 힘들 테니까. 그건 그렇고 베껴쓰기에 착수한 책이 두엇 있는데 확실히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을 올리고 나면 새벽 5시. 교과서의 그림이며 사진을 몇 장 스캔하고 정리하면 어느 새 6시가 될 테고 출근시간을 고려하면 그 때쯤에는 잠에 들어야 할 테니까.

  (평서문 모드) 
  몸이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새벽 다섯 시 언저리까지 작업에 빈둥빈둥을 섞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지쳐 하면서도 새벽 시간에 잠을 자면 괜히 낭비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학교별 기출문제 답안지 작업. 새벽 1:10분 언저리에 방에 들어온 다음 노트북 놓고 샤워하고 들어와서 모니터와 키보드, 작업거리를 고개를 돌려 작업할 정도의 각을 맞추고 어언 두 시간 40여 분... 일곱 개 학교를 마쳤다. 아직 열 다섯 개 학교가 더 남아 있는데...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이 시간에 [작업]이라는 것이 내가 현실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을 위한 부대낌 속에 필요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일테다. 무언가 나보다는 남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그런 만족감은 결국 쓸데없는 사치가 되는 것일까?

  간만에 내 자신의 피곤을 무릅쓰고 논쟁을 불사하고 있는(또는 나름의 평을 하고 있는) 몇몇 분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솔직이 부러울 뿐이다.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 "읽어라, 그리고 생각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그 다음으로 해야 할 "행동해라"고는 못하고 있는 부족함이 여기서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모니터 저편의 가상공간에서나마 자신들의 생각을 근거와 주장을 담아 펼치는 이들이.

  어쩌면 나 자신이 아직도 약한 존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야구심판 일을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 10년 이상을 부대끼면서 얻어낸 경험적인 지식(그나마도 일 때문에 모임에 가서 내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다. 일년에 한 번 가서 이야기해 봤자 시의성도 맞지 않고), 당장 저녁 먹을 돈이 없어 카드로 저녁을 사 먹고 다음 달 월급으로 간신히 채울 정도로 처절한 삶을 지탱해야 했던(지금도 그런 삶을 이겨냈다고 자신있게 말은 못하겠지만) 시절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책읽기에만 매달리면서 지식을 얻어내고 그에 대한 감정과 사고를 이입해 가면서 괜시리 치기어린 자존심을 만족시키면서 지내면서도 정작 삶 속의 실전에 나서는 것은 글쎄올시다 하면서 물러서 호사스러운 열람만 하는 꼴같다.

  가끔, 아주 가끔 생각하는 것이 저 처절한 논쟁의 현장에 들어가서 한번 치열하게 싸워가며 얻고 잃고 하면서 지내보고 싶은 욕망이 들 때가 많다. 진정으로 바쁘게, 가열차게 사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
  [추방당한 예언자]의 1장을 마쳤다. 사실 분위기는 [비무장의 예언자]의 연장선상이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마지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의 통찰력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내가 91년 [무장한 예언자]를 읽으면서 나 자신의 삶 중의 한 단면 - 물론 사상가나 혁명가스러운 면은 택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그저 개인적인 부분이랄까 - 을 그에게 투영하여 지내온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찰하면서 혁명의 역사와 일반 사회 영역에 대한 통찰을 같이 살려 주는 아이작 도이처의 글에서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무장한 예언자]를 읽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외로운 늑대"는 연애사냥꾼의 닉네임이 아니라 레프 다비도비치의 닉네임이어야 한다. 다만 내 삶 중의 하나가 야구심판이라 운좋게도 "녹색 그라운드 위의 회색 늑대(들)"이 될 수 있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일까?

  ... 전에 베끼기 작업을 했던 파일들을 다시 뒤적여 보니 [무장한 예언자]의 머리말과 3장이 적힌 것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트로츠키가 저술한 [러시아 혁명사] 상중하 3권 중 하권만 전 내용을 워드로 쳐서 저장해 놓았고 상권은 일부 장만 해놓았던 것이 기억난다. 상권의 나머지와 중권을 작업을 할까? 솔직이 일반론적인 요소는 [무장한 예언자], [비무장한 예언자],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추방당한 예언자]를 작업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데, 역시 문제는 한 권 당 600~700페이지 되는 책을 작업한다는 것이 지금의 상태로는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교재연구랍시고 교과서 읽기며 노트작업도 소홀해 하면서 베끼기라... 그렇기는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사회 속의 개인과 계급이나 기본적인 인성에 기반한 사고 방식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실감하고 있는 터라 베끼기 작업을 통해 '한번 더, 아니 여러 번 읽는 효과'를 끌어내는 것도 가능할 법도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늦은 새벽에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생각만 많아졌다. 확실히 나라는 녀석은 못됐다.

  새벽에 두 챕터 베끼기를 마치고 난 후 이부자리에 누운 시간이 대략 새벽 다섯 시... 항상 늦군요. 밤에 일 끝내고 귀가하면 뭐 먹어야 공복감이 덜하고, 먹고 들어와(또는 들어와서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면 몸에 이상하리만치 부작용이 심해 몸을 움직여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죠. 그나마 요즘 며칠 동안은 새벽에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나 애니, [무한도전] 재방 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지루함을 덜었다는 점에서는 괜찮았다는... 그러다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베끼기 작업을 하고 나면 피로도가 찾아온다죠. 차라리 방에 들어오자마자 뻗어버리는(밥 안 먹고) 것이 더 낫지 않을까도 싶은데 그렇게 되면 하루를 너무 허무하게 보내버린 듯한 아까운 심정이 드는 감도 있어요.
  뭐 [원숭이는 왜~~]에서 베껴쓰기를 마음먹고 있는 챕터는 이제 서너 개 정도(좀 줄었다는)니까 다른 책을 읽거나 베껴쓰기를 할 수 있는 여가도 생길 수 있겠죠.

  지난 봄에 누님의 컴에 아래아 한글을 설치해 놓고 시디를 놔두고 나온 것이 기억나서 오늘 시간을 대충 정해 누님을 만나서 돌려받았습니다. 이제는 노트북에 남아 있는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더 확인하고 백업할 것 한 다음에 갈아엎을 일만 남았네요. 안 그래도 윈도우 비스타가 내장된 신형 노트북들이 지름의 유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아직 비스타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기엔 부담스럽다는)에서 드라이브 영역 재설정하고 싹 포맷하고 필수 프로그램을 설치해 놓게 되면 또다시 자잘한 프로그램이나 데이터가 쌓여 가면서 속도의 저하나 다른 위험할 만한 일들의 발발 가능성이 다소나마 낮아지겠죠. 적어도 이렇게 하면 내년 하반기까지는 버틸 듯(비스타로 인터넷 쇼핑 등이 안정적으로 가능해지는 시점에서야 신형-하드 대용량, cpu 속도 코어2듀오 급, 메모리 2기가에 경량화된- 노트북 구입을 적극 고려하게 될 듯).
  사실 학원일을 하면서 자료저장과 활용을 위한 용도에서 구입했던 노트북이 어언 두 개 째를 넘어서고 있는데 정작 저 자신의 발전은 미흡한 듯 해서 꺼림칙한 무엇도 있네요. 더구나 공간의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고... 누님도 10평 남짓 옵션을 갖춘 오피스텔 전세에는 액수만 맞으면이라는 입장인데 월세에는 반대하네요. 관리비 부담이 더 갈거라나... 그러면서 현재 CMA 계좌를 개설하고 운용하는 데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을 하더라는.

==========================================

  이번 주 일요일에는 동대문구장, 다음 주 화요일 (제헌절)에는 대방동의 모 고등학교 구장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서울시 연합회장배 대회(국민생활체육협의회 서울시 야구연합회 주관 대회가 둘이 있는데 그 중 두 번째, 첫 번째는 서울특별시장배 대회)로의 배정이라는. 동대문구장의 경우 4명이서 4경기를 치르니 두 경기씩만 하면 되는데 인조잔디구장이라는 특성 상 비가 오건 땡볕더위건 고전을 하는 것은 같겠네요. 더구나 그날 끝나고 돌아와 개인정비를 간신히 마칠 즈음이 되면 다시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여섯 경기를 4명이서 진행해야 하는 괴로운 일정이라는(월요일 오후 수업에 23시에 퇴근하고 나서 방에 돌아가고 나면 자정 남짓, 그리고 바로 새벽에 배정장소로 향해야 한다는...)...;;;
  한여름에 이런 식의 배정을 받아 움직이다간 제 건강보장은 전혀 안 되겠네요. 가뜩이나 선수들의 눈높이는 높아져만 가는데(기량이 그 정도는 아닌데 눈만 높아져서 쓸데없는 어필과 항의가 많다는), 정작 몸은 천근만근에 처져만 가고 있는 현실이고 말이죠. 더구나 지난 김포G리그 구장에서 보낸 5월 말에도 더워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태풍 소식으로 어수선한 속에 더위라는...;;; 거기에 시험대비로 쉰 것은 쉰 것으로 쳐주지도 않는 분위기는 어떻고 말이죠.

  다가오는 학원 휴가 때는 필히 휴식을 보장해 달라고 떼를 좀 써야겠습니다. 뭐 토요일 배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지고도 괜한 소리를 듣는 처지에 받아들여질진 미지수지만.

  일요일 밤에 돌아온 뒤 어제(화요일) 학원의 같은 과목 선생님들끼리 식사를 하러 나설 때까지 머리 곳곳을 옮겨다니며 쑤셔대던 두통(체한 기운의 여파로 믿고 있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냉면 한 그릇을 먹고서 스윽 하고 가라앉았다죠.

  하지만 수업은 여전히 쳐짐 모드... 아이들 중 교재를 챙겨오지 않은 이들도 제법 된데다 막상 챙겨와도 시험이 끝난 여파로 모두 의욕을 잃고 지쳐 있는 터라 딱히 뭐를 제시해 주기가 어렵더군요. 그나마 "수에즈 운하 건설비용을 너무 많이 지출, 외국으로부터 빌린 돈 때문에 결국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만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순간적인 기지로 [대부업체]들 이야기를 끄집어 냄으로써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 다소나마 성공. 더해서 멘사 논리 퍼즐 문제를 몇 개 내면서 학원 내의 반배치고사 전까지 시간을 겨우 때웠다죠. 그렇지만 그것도 오늘부터는 정상적인 수업일정으로 끌어내야 할 터인데 하는 고심 모드 돌입...
  확실히 아이들이 한계인 것이, 하다 못해 1년 전에 배웠던 지리 파트의 내용 일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범위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조차 기억을, 아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니 사고의 흐름을 일깨워주기가 너무 힘드네요. 매번 시험 때마다 고생을 하면서도 새로이 변해 가는, 진실하게 성장해 가는(현 교육체제 아래서나마) 모습을 보고 싶은데 오로지 단발적인 시험대비 체제 때만 바짝 올라와 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한숨만 나올 뿐이라는...

  퇴근 후 간만에 [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 의 두 개 챕터 남짓 베끼기를 마쳤습니다. 책의 전체로 치면 절반 정도를 넘어온 셈이죠(베껴쓰기를 마친 챕터는 한 장 당 두 챕터 정도). 이제 베끼기로 마음먹은 남은 챕터는 약 6~8개 장 정도로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사흘 걸이 새벽작업이면 끝낼 수 있게 되겠죠. 차후 2학기 시험이 끝난 뒤의 대체수업 때 활용하면 좋겠다는(퍼즐 문제 등으로 사고력 훈련이랍시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물과 우리 주위를 규정하는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능력은 영 부족하죠.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이 어렵게 내시는 서술형 문제에 대해 해결 능력이 극히 떨어지는 이들이 많다는)...

  다음 주에 방학 체제 수업이, 그 뒤에 오전 수업으로 들어서게 되면 좀 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고등부 교재연구 내지 서술형 문제 작업을 해 두어야겠죠. 역시 공염불로 그칠 확률도 만만찮지만. 그래야 구입해서 쌓아두고 읽지도 않은 책들을 미안하게 하지 않고 다른 책들도 구입하려는 욕구를 실천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알라딘]에서 눈독들인 것들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고 있다는).
  어제 퇴근 후 오늘 새벽에 다 읽은 책([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라는, 프랑스 바칼로레아 논술시험을 위한 입문서 개념의 책이라고 생각)의 들어가는 말 챕터를 베껴쓴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요 며칠 겪고 있는 학원에서의 속앓이와 대비되는 내용이죠. 당분간은 퇴근 후 한 챕터 한 챕터 씩 베끼기 작업을 통해 파일로 만들어 놓으려 합니다. 한 챕터씩 하노라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만 투자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모르게 타이핑 속도가 적잖이 늘어나 있더라는... 교재연구작업을 하는 것이 나으려나 이것이 나으려나 하면서 며칠을 고심하며 다른 일로 새벽을 보내왔는데 결국 베껴쓰기로 시작했다는...
  책에 있는 내용들은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겪어야 하는 수많은 굴레들에 대해 다소나마 그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의 노력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은 것으로 비록 학원에서나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 자신도 느끼는 모순적인 부분인데 저 한 사람만의 힘으로 아이들을 한 명의 인격체로 성장시킨다는 것은 확실히 무리는 무리에요. 당장 성적기계 내지 수업에 대한 부분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그리고 이제부터 출퇴근길에 읽을 책으로 집어든 것은 홍세화 님의 [빨간 신호등]. 첫 칼럼이 공교롭게도 어제 100분토론의 주제였던 [파업]권에 관련된 내용이더군요. 이 책의 경우 정기 칼럼글의 모음이다 보니 (1999년부터 2004년까지의 시기 동안의 글이라고 함) 지금 시점에서 맞아떨어지는 내용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생각하는 영역과 고민이 확대되어 간다는 공감이 늘어나기에 기대에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전에 치과에 들렀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충치로 썩은 부분을 제거하고 일시적으로 막아놓은 부분을 금으로 때워넣기 위한 치료가 있었기 때문이죠. 선약이 된 환자분들이 제법 되었는지 예정시간에 맞춰 갔지만 약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는...
  치료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어금니 두 개 사이로 금을 두 개를 해서 넣어야 한데다 치아의 모양도 끼워넣기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면서 요모조모 맞춰가면서 작업을 진행하시더라는... 더구나 끼우고 나서 접착제로 고정을 시킨 다음 남아 있는 접착제 잔여물을 제거하는데 더 힘들더군요. 지금도 왼쪽 목이 땡기는 듯한 통증이...(잇몸과 금으로 해 넣은 부분 사이를 세게 긁어내고 치실로 밀고 당기고 하는 데만 20분이 넘게 소요...)
  어찌 되었거나 겨우 금으로 때워 넣기 마무리. 이제는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가서 접착 부위 확인하고 충치가 표면에 드러나 있는 이빨들에 대한 치료만 마무리되면 일단락될 모양입니다. 간호사 분의 말씀이 충치가 예상보다 깊고 넓게 퍼져 있어서 두 개 중의 하나는 신경치료까지도 고려할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금으로 해 넣은 부분이 깨지거나 해서 유지가 안 되면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할지 모르겠네요(한창 나중의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간만에 전철을 이용한 출근 루트를 버스로 바꿔 보았습니다. 소요시간에서야 전철이 훨씬 적게 소요(전철 20분, 도보 합계까지 해서 40분 미만, 버스는 탑승시간만 최소 40분)되지만 계속되는 지하의 쳇바퀴 속 생활에 지쳐 있기도 해서죠. 거기에 오전 일찍 일어난 데 따른 피로도 적잖이... 결국 바깥 풍경을 보겠다는 목표는 성사가 안 되었다는(졸다 고개 들다를 반복하느라).

[전쟁론] 1편 1장 - (後)

베낀글들... 2006. 9. 21. 14:52 by trotzky

베끼기 작업을 진행한 [전쟁론]의 1편 1장의 두번째 업로드입니다... 마음에 드는 장이 두엇 더 있지만 당분간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군요. 교재일독 후 노트정리 작업에 시험직전에 따른 작업 등도 해야겠다 싶으니 말이죠...

=====================================

15. 여기에서 양극성의 원칙이 요구된다.


 한쪽 최고지휘관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다른 쪽 최고지휘관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반대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참된 의미의 양극성이다. 아래에 이 원칙에 따로 하나의 장을 마련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은 여기에서 말해야겠다.(그 장은 없습니다-옮긴이의 해설)

 양극성의 원칙은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서 양(陽)의 크기와 그 반대인 음(陰)의 크기가 정확히 상쇄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 전투에서는 양쪽 모두 승리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참된 의미의 양극성이다. 왜냐하면 한쪽의 승리는 다른 쪽의 승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에 공통적인 관계를 갖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사물이 있다면, 두 사물이 아니라 두 사물의 관계가 양극성을 갖는다.



16. 공격과 방어는 그 종류와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양극성을 적용할 수 없다.


 한 가지 형태의 전쟁만 있다면, 즉 공격만 있고 방어가 없다면 또는 공격과 방어가 단지 적극적인 동기를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데 따라서만 구분된다면, 싸움은 언제나 똑같을 것이다. 이런 싸움에서는 한쪽의 유리함은 언제나 똑같은 크기만큼 다른 쪽의 불리함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양극성이 존재할 것이다.

 전쟁은 공격과 방어라는 두 가지 형태의 활동으로 나뉜다. 아래에서 객관적으로 밝히겠지만 그것은 종류도 매우 다르고 강도도 같지 않다. 따라서 양극성은 양쪽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결전에 존재하는 것이며 공격과 방어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쪽 최고지휘관이 결전의 시기를 늦추려고 하면 다른 쪽 최고지휘관은 그것을 앞당기려고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싸움의 형태는 똑같다고 가정한다. A가 지금이 아니라 4주 후에 적을 공격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면, B는 4주 후보다는 지금 공격을 받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직접적인 모순관계다. 하지만 이 모순으로부터 B가 A를 바로 지금 공격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히 전혀 다른 문제다.



17. 방어가 공격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양극성의 효과는 없어지며 이로써 휴전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방어 형태가 공격 형태보다 유리하다면 나중에 결전을 치르는 데서 얻게 되는 한쪽의 장점이 방어를 하는 데서 얻게 되는 다른 쪽의 장점과 똑같을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모순관계로도 전자의 장점은 후자의 장점에 필적할 수 없으며 전쟁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따라서 장점의 양극성이 갖는 추진력은 방어가 공격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효력을 잃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에 유리한 쪽이 방어의 장점을 버리기에 너무 약하다면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불리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불리하겠지만 그래도 미래에 방어하면서 싸우는 것이 현재에 공격하거나 평화협정을 맺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방어의(방어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우월함은 대단히 크며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전쟁에서 일어나는 휴전은 대부분 방어의 우월함에서 비롯된다. 휴전이 생긴다고 해서 전쟁에 내적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행동에 나서려는 동기가 약하면 약할수록 공격과 방어의 차이는 행동에 나서려는 동기를 그만큼 더 많이 흡수하고 중화시켜 휴전은 그만큼 더 자주 생길 것이다. 이는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18. 두 번째 이유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전쟁행위를 멈추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모든 최고지휘관은 자기 군대의 상황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적의 상황은 불확실한 정보에 따라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상황을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이런 오류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이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적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불충분한 상황 파악은 종종 적절하지 않은 때에 행동의 개시와 중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래서 전쟁행위를 지연시키거나 앞당기는 데도 이바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언제나 전쟁행위를 내적 모순 없이 중지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이유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적의 힘을 과소평가하기보다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불완전한 상황 파악이 전쟁행위를 억제하며 완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휴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쟁행위를 완화시켜 준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휴전의 가능성이 전쟁행위를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 전쟁의 위험스러운 진행을 막으며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긴장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전쟁의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휴전기간은 그만큼 더 짧아질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는 동기가 약하면 약할수록 휴전기간은 그만큼 더 길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동기가 강하면 의지력도 커지며, 잘 알다시피 의지력은 언제나 전투력의 구성요소이면서 동시에 전투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9. 전쟁에서 휴전이 자주 일어나면 전쟁은 절대성에서 더 멀어지며 개연성의 계산이 된다.


 전쟁행위가 느리게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리고 휴전이 자주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또한 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오류를 그만큼 더 일찍 바로잡을 수 있고 최고지휘관은 그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는 데 그만큼 더 자신만만해지며 그래서 그만큼 더 일찍 극단성의 뒤로 물러나서 모든 것을 개연성과 추측에 기댈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의 특성이 요구하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따른 개연성의 계산이다. 대체로 전쟁이 느리게 진행되면 개연성을 계산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20. 여기에 우연만 더해지면 전쟁은 도박이 되는데 전쟁에는 대개 우연이 따른다.


 이상으로 알 수 있듯이, 전쟁의 객관적 성격이 전쟁을 개연성의 계산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쟁을 도박(Spiel, gamble)으로 만드는 데는 이제 단 하나의 요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전쟁에는 확실히 이 요소가 없지 않은데 그것은 우연이다. 인간의 활동 중에서 전쟁만큼 그렇게 끊임없이 그리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우연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전쟁에는 우연과 함께 운명과 행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1. 전쟁은 그 성격상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도 도박이다.


 전쟁의 주관적 특성, 즉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력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쟁이 단순한 도박 이상으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전쟁활동이 일어나는 영역은 위험한 영역이다. 위험할 때 최고의 정신력은 무엇일까? 용기다. 물론 용기는 영리한 계산 능력과 조화를 이룰 수도 있지만, 이 둘은 종류가 다르며 서로 다른 정신능력에 속한다. 이와 반대로 모험과 행운에 대한 믿음, 대담성이나 무모함은 용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 모든 정신적 경향은 우연에 기댄다. 왜냐하면 우연도 그런 경향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절대적인 것, 이른바 수학적인 것은 전쟁술의 계산 어디에도 확고한 근거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에는 처음부터 가능성과 개연성, 행운과 불운이라는 도박성이 끼어든다. 이런 것들은 전쟁이라는 천의 크고 작은 모든 실(絲)에 얽혀 있으며 전쟁을 인간행위의 모든 영역 중에서 카드놀이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만든다.



22. 카드놀이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정신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이성은 언제나 명확성과 확실성을 추구한다고 느끼지만 정신은 때때로 불확실성에 이끌린다고 느낀다. 정신은 친숙한 대상이 모두 자신을 떠난 것 같은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들어서야 할 때가 있다. 이 경우에 정신은 이성과 함께 철학적 탐구와 논리적 추론이라는 좁은 길을 헤치고 나가는 대신에 차라리 상상력을 품은 채 우연과 행운의 영역에 머문다. 정신은 철학적 탐구와 논리적 추론의 초라한 필연성 대신에 풍부한 가능성에 빠져든다. 여기서 감격을 받으며 용기는 고무되며, 그래서 용감한 수영선수가 급류에 뛰어드는 것처럼 정신은 모험과 위험에 뛰어든다.

 이론이 정신세계를 벗어나도 되는가? 그리고 절대적 결론과 법칙에 자만하면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다면 그런 이론은 인간의 삶에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론은 인간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며 용기와 대담성, 심지어 무모함도 고려해야 한다. 전쟁술은 살아 있는 전투력이나 정신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성과 확실성에 결코 이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어디에나 우연이 들어설 여지는 남아 있다. 가장 큰 전쟁에도 가장 작은 전쟁에도 마찬가지다. 한쪽에 우연이 들어서면 다른 쪽에 용기와 자신감이 들어와서 틈을 메운다. 후자가 크면 그만큼 전자를 위한 여지가 커도 된다. 용기와 자신감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따라서 전쟁이론은 필수불가결하며 가장 고귀한 무덕(武德, kriegerische Tugend, military virtue) 이 모든 단계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법칙만을 세워야 한다. 모험에도 영리함과 신중함이 똑같이 들어 있지만 이것들은 단지 서로 다른 비율로 계산될 뿐이다.



23. 전쟁은 중대한 목적을 위한 진지한 수단이다. 목적에 대한 자세한 규정.


 지금까지 전쟁,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지휘관, 전쟁을 규정하는 이론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전쟁은 심심풀이도 아니고 모험과 성공을 쫓는 단순한 쾌락도 아니며 자유로운 열정의 산물도 아니다. 전쟁은 중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수단이다. 전쟁이 지니는 무지개 빛 행운, 전쟁에 들어 있는 변화무쌍한 열정과 용기, 환상과 감격, 이 모든 것들은 다만 전쟁의 수단이 갖는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민족 전체)의 전쟁, 특히 문명민족의 전쟁은 언제나 정치적인 상황에서 비롯되고 오로지 정치적인 동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전쟁은 정치적인 행위다. 위에서 전쟁을 순수 개념으로부터 추론한 것처럼 전쟁이 방해를 받지 않는 완전한 행동이며 폭력을 절대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라면, 전쟁은 정치 때문에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정치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정치의 자리를 대신하고 정치를 몰아내며 오로지 전쟁 자체의 법칙에만 따르게 될 것이다. 이는 지뢰를 준비해서 묻어 놓으면 그 지뢰는 더 이상 다른 방향으로 폭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와 전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둘 사이에 일종의 이론적 구별이 생길 때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며 그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현실세계의 전쟁은 긴장 상태를 단 한 번의 폭발로 해결하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의 전쟁에서는 전투력이 활동하는데, 그 전투력은 완전히 똑같은 부류도 아니며 능력을 똑같이 발휘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타성과 알력이 빚어내는 저항을 이겨낼 만큼 충분히 팽창하기도 하지만 다른 때에는 너무나 약해서 효과를 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폭력이 맥박을 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는 얼마쯤 격렬하고 신속하게 긴장을 풀어 힘을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얼마쯤 신속하게 목표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진행되는 중에 전쟁에 영향을 미치고 전쟁에 이런저런 방향을 제시하며 전쟁이 지혜로운 최고지휘관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일 걸리기도 한다. 전쟁이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쟁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동기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도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목적이 전제군주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목적은 전쟁수단의 성격과 맞아야 하고 이따금 그 수단 때문에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은 언제나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정치는 전쟁행위 전체를 꿰뚫고 지나가며 전쟁의 파괴력이 허락하는 한 전쟁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24.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접촉의 연속이며 정치적 접촉을 다른 수단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제 전쟁에 고유한 특성이라고는 전쟁수단의 특성과 관련된 것뿐이다. 정치의 방향이나 의도가 전쟁수단과 모순에 빠지면 안 된다는 점은 일반적 차원에서는 전쟁술이, 그리고 개별적 차원에서는 최고지휘관이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이 요구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개별적인 경우에 정치적 의도에 아무리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이것은 언제나 정치적 의도를 제한할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의도가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기 때문이며, 수단은 목적을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 원문 : Der Krieg ist eine bloße Fortsetzung der Politik mit andern Mitteln)

( 영어 : War is merely continuation of policy by other means.)



25. 전쟁의 다양성


 전쟁의 동기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강하면 강할수록 또한 민족의 생존 전체를 더 많이 포괄하면 할수록 그리고 전쟁에 앞서 나타나는 긴장이 폭력적으로 나타나면 날수록, 전쟁은 그만큼 더 추상적 형태에 가까워지고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해지며 전쟁의 목표와 정치적 목적은 그만큼 더 일치하게 되고 전쟁은 그만큼 더 군사적으로 보이고 그만큼 덜 정치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동기와 긴장이 약하면 약할수록, 전쟁요소인 폭력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방향은 정치가 제시한 노선으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고 전쟁은 본래의 방향으로부터 그만큼 더 벗어나게 될 것이며 정치적 목적은 이상적인 전쟁목표와 그만큼 더 많이 달라지고 전쟁은 그만큼 더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독자가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게끔 여기에서 말해 둘 것이 있다. 전쟁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란 단지 철학적인 경향, 즉 엄밀한 논리적 경향만을 뜻하는 것이며 실제로 분쟁에 휘말려 있는 전투력의 경향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병사들의 모든 감정과 열정을 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많은 경우에는 병사들의 감정과 열정이 정치적인 방법으로는 억누르기 힘들 만큼 자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모순은 생기지 않는데, 왜냐하면 병사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 노력에 상응하는 대규모의 전쟁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작은 것만 지향하고 있을 때는 대중의 감정을 일으키려는 노력도 매우 작아질 것이며 그래서 대중은 억제보다는 오히려 언제나 자극을 필요로 할 것이다.



26. 모든 전쟁은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요점으로 돌아가자. 정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전쟁이 있는 반면에 정치가 매우 분명하게 전면에 나타나는 전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가지 종류의 전쟁은 똑같이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를 인격화한 국가의 이성이라고 간주하면 그 이성으로 파악해야 하는 상황 중에는 국제관계의 성격상 첫 번째 종류의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일반적 통찰이 아니라 폭력을 피하고 신중하며 교활하고 부정직하기까지 한 영리함이라는 관습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만 두 번째 종류의 전쟁이 첫 번째 종류의 전쟁보다 더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7. 이런 견해가 전쟁사를 이해하며 전쟁이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서 생기는 결과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전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도구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때만 모든 전쟁사와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전쟁사에 관한 방대한 책에 대한 이해가 열리게 된다. 둘째, 바로 이 견해는 전쟁의 동기와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전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와 최고지휘관이 맨 처음으로 내려야 하는 가장 중요하며 결정적인 판단은 자신이 수행하는 전쟁을 이런 관점에서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며 상황의 성격으로 보아 실현될 수 없는 것은 전쟁으로 실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모든 전략 문제 중에서 가장 먼저 포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문제다. 아래에서 전쟁계획을 다룰 때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는 전쟁문제를 이 점까지 논의하여 앞으로 전쟁과 전쟁이론을 살펴보게 될 중요한 관점을 확립한 것으로 만족한다.



28. 이론을 위한 결론


 전쟁은 정말 카멜레온 같다. 왜냐하면 전쟁은 각각의 구체적인 경우마다 자신의 특성을 조금씩 바꾸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은 전쟁의 전체 형상에 따라 그리고 전쟁에 널리 퍼져 있는 경향과 관련해서 볼 때 기묘한 삼중성(三重性)을 띠기도 한다. 삼중성은 다음의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전쟁의 요소인 증오와 적대감의 원초적 폭력성인데 이는 맹목적 본능과 같다. 둘째, 개연성과 우연의 도박인데 이것은 전쟁을 자유로운 정신활동으로 만든다. 셋째, 정치적 도구라는 종속성인데 이로 말미암아 전쟁은 순수한 이성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는 주로 민족과 관련되고 두 번째는 주로 최고지휘관이나 군대와 관련되며 세 번째는 주로 정부와 관련되어 있다. 전쟁 중에 타오르는 열정은 이미 그 민족의 마음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우연이 따르는 개연성의 세계에서 용기와 재능이 발휘되는 범위는 최고지휘관과 군대의 특성에 달려 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은 오로지 정부에 속하는 문제다.

 이 세 가지 경향은 각각 매우 다른 법칙처럼 보이지만 모두 전쟁이라는 주제의 본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무시하거나 그들 사이에 임의의 관계를 세우려는 이론이 있다면, 그 이론은 즉시 현실과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며 그래서 그런 이론은 이 모순만으로도 이미 폐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무게중심과도 같은 이 세 가지 경향 사이에서 전쟁이론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제 2편의 전쟁이론에서 살펴볼 것이다. 어쨌든 여기에서 확립한 전쟁의 개념은 그 첫 번째 빛이 될 것이다. 그 빛은 우리에게 전쟁이론의 근본 구조를 밝혀 주고 전쟁이라는 큰 덩어리를 나누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결국 시작도입 부분을 쓰는 것을 완료하게 되었군요. 뭐 많이 한다고 해도 1편 정도가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원체 난해해서 완역하신 분의 해설을 봐가면서 다시 되새기는 중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원수같이 쳐다보게 되는군요. 이미 버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

『전 쟁 론』


저자 서문


학문이라는 개념이 오로지 또는 주로 완성된 체계와 학설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 논쟁할 필요가 없다. 얼핏 보면 이 책에서는 체계를 전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완성된 학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의 학문적 형식은 전쟁 현상의 본질을 연구하고 전쟁 현상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의 성격과 전쟁 현상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데 있다. 이론적 일관성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너무 가느다란 실이 되어 희미해질 때에는 나는 그 실을 끊어 버리고 이에 상응하는 경험적 현상에 연결시키는 방법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줄기가 너무 높이 자라면 식물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전쟁기술에서도 이론의 잎과 꽃들은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는 안 되며 본래의 토양인 경험 가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밀알의 화학적 성분으로부터 열매를 맺는 이삭의 모양을 밝혀내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왜냐하면 다 자란 이삭을 보려면 밀밭으로 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구와 관찰, 이론과 경험은 서로 경멸해서도 안 되고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서로를 보증해 주는 관계다. 따라서 이 책에 있는 명제들은 외적 논점보다는 경험이나 전쟁 자체의 개념에 그 내적 필연성의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논박의 여지가 없지 않다.

수준 높은 내용을 담은 체계적인 전쟁이론을 쓰는 것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쟁이론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이론의 비과학적인 정신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이론은 일체의 일상적인 것, 상식적인 것, 횡설수설로 이루어진 체계를 유기적이며 완벽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이에 관한 적절한 예를 만나려면 리히텐베르크의 소방규정에서 일부만 읽어보면 될 것이다.


“어느 집에 불이 나면 먼저 그 왼쪽 집의 오른쪽 벽과 오른쪽 집의 왼쪽 벽을 덮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왼쪽 집의 왼쪽 벽을 덮으려고 하면 그 집의 오른쪽 벽은 오른쪽 집의 왼쪽 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이 이 벽과 오른쪽 집의 오른쪽 벽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그 집은 불난 집 왼쪽에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오른쪽 벽은 왼쪽 벽보다 불에 더 가깝다. 그 집의 오른쪽 벽을 덮지 않으면 불이 왼쪽 벽으로 오기 전에 오른쪽 벽에 불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덮어두지 않은 벽에 불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곳을 덮지 않으면 다른 곳에 불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을 놔두고 다른 곳을 덮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어느 집에 불이 나면 그 오른쪽 집의 왼쪽 벽을 막아야 하고 왼쪽 집의 오른쪽 벽을 막아야 한다.”


이런 헛소리로 독자의 정신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별로 좋지 않은 것에 물을 부어 더욱 맛이 없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전쟁에 관한 다년간의 사색, 전쟁을 겪은 뛰어난 사람들과의 사귐, 나 자신의 많은 경험으로 알게 된 분명한 것들을 순수한 금속의 알갱이로 내놓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각 장은 얼핏 보기에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 연관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마 곧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서 몇 개의 열매들 대신에 전체의 내용을 찌꺼기 없는 순수한 금속으로 주조할 것이다.





알리는 말


“제 1편부터 제 6편까지는 깨끗이 옮겨 썼지만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원고의 모음에 지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다시 고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칠 때는 두 가지 종류의 전쟁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개념이 좀 더 엄밀한 의미와 분명한 방향성을 갖게 되어 자세히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종류의 전쟁에는 첫째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인 전쟁이 있다. 이 경우에는 적을 정치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든 아니면 단지 적을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이쪽의 어떠한 평화협정에도 따르게 만드는 것이든 상관없다. 둘째로 단지 적의 국경 지역에 있는 몇 개의 지역을 정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 있다. 이 경우에는 그 지역을 계속 점령하든 평화협정을 맺을 때 유용한 교환수단으로 삼든 상관없다. 물론 이 두 전쟁의 목적이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히 밝혀야 하며 양립하기 어려운 것은 여하튼 서로 구별해야 한다.

두 가지의 전쟁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 외에 역시 실제로 필요한 관점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확립해 두어야 한다. 그 관점이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국가정책의 계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확고히 해 두면 전쟁을 관찰할 때 통일성을 갖게 되며 모든 것이 좀 더 쉽게 풀릴 것이다. 이 관점은 주로 제 8편에 가서야 비로소 효과를 내지만 [2판: 비로소 적용되지만], 이미 제 1편에서 완전히 전개되어야 하며 1~6편을 고칠 때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고치면 1~6편에서 많은 찌꺼기를 털어 낼 수 있고 많은 틈을 메울 수 있으며 막연한 것들이 좀 더 분명한 생각과 형태로 넘어갈 수 있다.

공격에 관한 제 7편의 초고는 이미 만들어져 있으며 이는 제 6편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분명한 관점에 따르면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 7편은 새로 고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1~6편을 고치는 데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 8편은 전쟁계획, 즉 일반적으로 전쟁 전반의 준비에 관한 여러 개의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제대로 된 자료로 간주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며 다만 대강의 거친 작업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더 연구를 하게 된다면 무엇이 중요한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장들은 이 목적을 달성했으며, 제 7편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제 8편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제 8편에서는 주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유형의 전쟁에 관한 관점을 확고하게 하고 모든 것이 단순화됨과 동시에 정신적 측면이 강조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 8편이 전략가와 정치가의 머릿속에 있는 많은 고민거리를 덜어 주기를 바란다. 적어도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그리고 전쟁에서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지 제시하기를 바란다.

제 8편을 완성하면서 나의 생각이 분명해지고 전쟁의 중요한 특징들이 명확하게 확립되면 이러한 정신을 1~6편에 적용하고 그러한 특징들을 1~6편의 어디에나 그만큼 더 쉽게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1~6편을 고쳐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일찍 죽어 이 일을 중단하게 된다면 여기 있는 것은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잡다한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끊임없는 오해에 방치되어 수많은 설익은 비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문제에서는 누구나 자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글로 옮기면 그것이 출판할 만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2*2=4’와 같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처럼 몇 년 동안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 문제를 언제나 전쟁사와 비교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그는 비판을 하는 데 좀 더 신중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편견 없이 진실과 확신을 갈망하는 독자라면 1~6편에서 전쟁에 관한 다년간의 생각과 진지한 연구의 결실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며 아마 여기에서 전쟁이론의 혁명을 일으킬 만한 중요한 생각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827년 7월 10일,

베를린


포스트에 추가될 정도는 아니겠지만, 여가가 날 때 베껴쓰기를 해야겠다는 책은 정했습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예전에 한 번 시도했다가 그 번역의 조악함에 질려 쓰면서 오히려 이해가 더 안 되는 현상이 벌어져 한 페이지 하고서 포기해 버렸는데, 지난 번에 구입한 김만수 씨의 [완역본]을 읽게 되면서 나름 그가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시각과 의식이 혹자들에게 폄하를 당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새삼 그가 가지고 있는 철학, 세계관, 가치관 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주의만 기울인다면 "건전하다고 부를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보여지는군요.

그건 그렇고 어느 사이에 읽어놓은 페이지가 250여, 절반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쓰기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도대체 어느 세월에 다 읽겠다는 만용인지 도저히 자기인식이 안 되는 것인지 헷갈려지는군요...
1 
BLOG main image
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카테고리

모순을 인정하자 (551)
낙서(일기) (446)
베낀글들... (5)
스크랩 보관글들... (42)
심판(야구)일지 (13)
야구 이야기 (7)
감상-소감 목록 (7)

달력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03-29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