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추방된 예언자](그동안 아이작 도이처의 [무장한 예언자]의 책 본문에 의거해서 [추방당한 예언자]라고 써왔는데 이번에 번역된 책의 제목은 "된"이더군요. 이번 기회에 수정.)를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처음 [무장한 예언자]를 접하고 들었던 묘했던 감정의 흐름이 이제 흐느낌이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학교에 다니던 당시 선배며 후배 동기들이 사회주의의 역사(이론이 아닌)에 대한 별다른 고찰이 없이 당장의 행동에만 역점을 두었던 시절이라 그들과 술자리 합석이나 학술적인 댓거리 참석 외에는 거리를 두고 지내던 때 접했던 그 책에서 받은 느낌은 "이렇게 해서 되는 것일까?" 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왜 그는 그러한 엄청난 성취를 레닌과 함께 일궈내고도 사후 오랜 기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존재해야 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무장한 예언자]를 91년 하반기에 읽은 뒤 그의 저작을 찾아 헤매다가 [평가와 전망 and 연속혁명(당시는 영구혁명으로 불렸던)]을 군대가기 전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평가와 전망]은 1906년 경의 저작이니 그의 인생에서 전성기를 들어가기 전에 만든 것이고 [연속혁명]은 그가 중앙아시아의 오지 알마아타로 유형당하고 나서 만든 것으로 다분히 자신의 사상에 태클을 건 한때 동지의 "배신"에 대한 자기변호성 글이다 보니 그의 "현실"을 보는 데는 어려움이 적잖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연속혁명]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10여 년 가까이 지나 새로운 판본이 나오고서야 가능했죠.
  제대 후에도 기회가 날 때마다 그의 저작을 찾아다녔지만 서점에서 서서 읽은 [만화로 본 트로츠키]가 고작이었습니다. 어쩌다 서점에서 접한 두어 권의 책([반파시즘 투쟁]과 [배반당한 혁명]은 서문 및 본문에서 너무나도 심하게 뒤섞여 있는 혼란의 시대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던데다 생계 문제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기였기에 도저히 읽혀지지 않았고 그래서 구입하는 것도 상당 기간 포기했었다죠(지난 해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국 그 두 권은 구입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저작으로 [러시아 혁명사]를 접했고 당시 풀무질 출판사에서 나온 1권을 구입했지만 후속 권들이 나오지 않아 발을 구르다가 결국 상중하 3권으로 나오게 되면서 그 한을 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저작은 그가 터키로 추방당하여 프린키포 섬에서 망명생활의 초반기를 보내면서 만든 것으로 정작 그가 추방당한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었죠.

  그랬기에 아이작 도이처가 쓴 [예언자] 시리즈의 나머지 두 권이 절실했습니다. 오죽하면 제대 후 학교도서관에서 찾은 [비무장한 예언자]의 영역본을 제본까지 해 가면서 읽어 보려는 시도를 했을 정도니까요. 물론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집을 나오면서 그 책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죠.
  결국 지난 해 말에 [무장한 예언자]가 새로운 출판사에 의해 빛을 보게 되면서 다른 두 권도 곧 나오겠지 하는 심정이었는데 근 반 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무척 다행이었죠.

  그의 승리에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패배의 불길한 기운... 그리고 결국 레닌의 후광에 기대지 않고 진정한 민주적 대의를 통해 사회주의 러시아를 이끌고자 했으나 편견과 정치적 야합에 한번 좌절하고 상대의 기만을 눈치 못채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치고 만 트로츠키, 과연 그가 레닌 이후의 러시아를 장악하였다면 과연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궁금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나 그 작품을 모체로 영화화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와 같은 호사가의 뒷담화에 불과할 뿐이겠죠. 어쩌면 그의 패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아이작 도이처의 책을 보면서 마음 속에 이입된 트로츠키의 인성적 측면에서 그는 패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거기에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예언했고 또 노력했던 여러 가지 안건과 방향이 인류 역사에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한 회의도 드는 것이 사실이랍니다. 일부 분야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저에게 난해한 측면도 있어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점도 인정해야겠죠.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신을 러시아혁명의 대의와 일치시켜 일인독재의 방향으로 치달려 간 스탈린과 달리 러시아혁명의 일꾼으로 스스로를 낮춰 혁명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나간 것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추방당한 이후 어디에서도 자기 자신을 환영해 주지 않는 세계에 절망하면서도, 자신의 편이 줄어드는, 심지어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잃는 비극 속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대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모든 곤경 앞에 노출시켜 가면서 싸운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더군요. 또 그의 오류와 실수, 실책, 시행착오와 잘못을 가감없이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준 아이작 도이처의 문체에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보아 온 인물평전 내지 위인전 형태의 책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냉정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요. 아마 이 점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정치꾼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그리고 그들의 "죽은 채로 살아 있는 이"의 전기를 써 준 이들에게도 나름 반성의 기회가 되었으면 싶네요.

  작년에 재구입해서 다시 읽을까 하는 심정으로 [무장한 예언자]를 책꽂이에서 꺼내들었는데 생각을 바꿔 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수 년 전에 읽다가, 또 베끼기 작업을 하다 포기했던 그의 저작인 [러시아혁명사]의 나머지 부분(상권은 다 읽었고 베끼기는 초반과 막판 일부 장, 하권은 다 베끼면서 읽었지만 중권은 거의 손을 안 댔다는)을 읽을까 합니다. 물론 전철 출퇴근길에 읽기엔 버거운 감이 들기는 하지만요. 정 안되면 새벽에 베끼기라도 하면 되겠거니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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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 내의 서술형문제 자료집의 답지 작업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한 상황, 거기에 교재연구 작업도 거의 중단된 상황(노트 열장이나 썼나도 싶고)에서 새벽 시간을, 물론 피로에 마음이 지쳐 뻗어버리면 안 되겠지만, 쪼개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의 전기였습니다. 그가 일생 내내 보였던 활력과 헌신, 희생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면서 자본과 물신에 굴복해서 살아야 하는 저같은 소인배에게는 너무나 큰 산이네요.
  (평서문 모드) 
  몸이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새벽 다섯 시 언저리까지 작업에 빈둥빈둥을 섞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지쳐 하면서도 새벽 시간에 잠을 자면 괜히 낭비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학교별 기출문제 답안지 작업. 새벽 1:10분 언저리에 방에 들어온 다음 노트북 놓고 샤워하고 들어와서 모니터와 키보드, 작업거리를 고개를 돌려 작업할 정도의 각을 맞추고 어언 두 시간 40여 분... 일곱 개 학교를 마쳤다. 아직 열 다섯 개 학교가 더 남아 있는데...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이 시간에 [작업]이라는 것이 내가 현실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을 위한 부대낌 속에 필요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일테다. 무언가 나보다는 남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그런 만족감은 결국 쓸데없는 사치가 되는 것일까?

  간만에 내 자신의 피곤을 무릅쓰고 논쟁을 불사하고 있는(또는 나름의 평을 하고 있는) 몇몇 분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솔직이 부러울 뿐이다.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 "읽어라, 그리고 생각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그 다음으로 해야 할 "행동해라"고는 못하고 있는 부족함이 여기서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모니터 저편의 가상공간에서나마 자신들의 생각을 근거와 주장을 담아 펼치는 이들이.

  어쩌면 나 자신이 아직도 약한 존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야구심판 일을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 10년 이상을 부대끼면서 얻어낸 경험적인 지식(그나마도 일 때문에 모임에 가서 내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다. 일년에 한 번 가서 이야기해 봤자 시의성도 맞지 않고), 당장 저녁 먹을 돈이 없어 카드로 저녁을 사 먹고 다음 달 월급으로 간신히 채울 정도로 처절한 삶을 지탱해야 했던(지금도 그런 삶을 이겨냈다고 자신있게 말은 못하겠지만) 시절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책읽기에만 매달리면서 지식을 얻어내고 그에 대한 감정과 사고를 이입해 가면서 괜시리 치기어린 자존심을 만족시키면서 지내면서도 정작 삶 속의 실전에 나서는 것은 글쎄올시다 하면서 물러서 호사스러운 열람만 하는 꼴같다.

  가끔, 아주 가끔 생각하는 것이 저 처절한 논쟁의 현장에 들어가서 한번 치열하게 싸워가며 얻고 잃고 하면서 지내보고 싶은 욕망이 들 때가 많다. 진정으로 바쁘게, 가열차게 사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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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방당한 예언자]의 1장을 마쳤다. 사실 분위기는 [비무장의 예언자]의 연장선상이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마지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의 통찰력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내가 91년 [무장한 예언자]를 읽으면서 나 자신의 삶 중의 한 단면 - 물론 사상가나 혁명가스러운 면은 택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그저 개인적인 부분이랄까 - 을 그에게 투영하여 지내온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찰하면서 혁명의 역사와 일반 사회 영역에 대한 통찰을 같이 살려 주는 아이작 도이처의 글에서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무장한 예언자]를 읽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외로운 늑대"는 연애사냥꾼의 닉네임이 아니라 레프 다비도비치의 닉네임이어야 한다. 다만 내 삶 중의 하나가 야구심판이라 운좋게도 "녹색 그라운드 위의 회색 늑대(들)"이 될 수 있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일까?

  ... 전에 베끼기 작업을 했던 파일들을 다시 뒤적여 보니 [무장한 예언자]의 머리말과 3장이 적힌 것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트로츠키가 저술한 [러시아 혁명사] 상중하 3권 중 하권만 전 내용을 워드로 쳐서 저장해 놓았고 상권은 일부 장만 해놓았던 것이 기억난다. 상권의 나머지와 중권을 작업을 할까? 솔직이 일반론적인 요소는 [무장한 예언자], [비무장한 예언자],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추방당한 예언자]를 작업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데, 역시 문제는 한 권 당 600~700페이지 되는 책을 작업한다는 것이 지금의 상태로는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교재연구랍시고 교과서 읽기며 노트작업도 소홀해 하면서 베끼기라... 그렇기는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사회 속의 개인과 계급이나 기본적인 인성에 기반한 사고 방식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실감하고 있는 터라 베끼기 작업을 통해 '한번 더, 아니 여러 번 읽는 효과'를 끌어내는 것도 가능할 법도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늦은 새벽에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생각만 많아졌다. 확실히 나라는 녀석은 못됐다.
  새벽에 잠시 접속해서 근접했는가 싶었는데 그냥 쓰러져 잠을 청하고 아침 나절에 일어나 확인해 보니 20,000 카운터를 기록했군요. 뭐 넓은 소통보다는 조용히 즐기는 것을 선택한 길이기에 이 정도도 어디냐 싶지만 은근히 카운터에 민감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무장의 예언자 Trotsky, 1921~1929]를 다 읽었습니다. 출퇴근길을 주로 식당에 밥먹으러 들어갔을 때도 책갈피를 집어 들어 가면서 읽어나간 보람이 있네요. 전에는 책 하나 읽는데 엄청 오래 걸렸는데 이번에는 어려운 사상적인 대목은 흘려 읽고 전체적인 과정에 주목해서 내려가니까 훌훌 지나간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보다도 "한 사람의 살아서의 행적과 그 속에서 서로 벌어지는 살아 있는 충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진 자기모순적인 상황들의 흐름"이 더 절실하게 제 뇌리에 박혀 들어와 빨리 읽혀진 것인지도 모르죠.
  이제 [추방당한 예언자]를 집어들어야겠죠. 아직 작업할 것 천지이지만 이 시리즈만큼은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추방당한 예언자]를 읽고 나면 다시 [무장한 예언자]를 집어들어 읽는 것이 어떨까도 싶습니다. 공간과 시간이 허락하면 주요 대목을 찾아 베껴서 파일로 옮겨놓는 작업도 해 놓고 싶고요. 전에 [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 라는 책의 절반 가량 되는 챕터를 베끼기 완료했는데 언제 올려야 할까도 싶습니다(그보다 생각하는 훈련이 거의 안 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복사해 나눠 주고 한 시간 정도 정규수업을 다 때려치우고 같이 이야기했으면 싶기도 한데, 결국 아이들에게 의욕이 없으면 별 효용이 없겠죠. 현재 학원을 다니는 중학생 아이들의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자기목표 상실은 의외로 심각하다는). 그리고 읽어야 할 것은 [88만원 세대]로 시작하는, 그리고 추가로 나오게 될 책들의 시리즈들...
 
  우연히 [키노의 여행]이 10권 째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온 지 근 보름이 넘었는데 NT 노블이 유행이라는 포탈기사에서 접하게 되다니 어째 난감이네요. 지난 번에 책들을 지를 때 같이 질렀으면 좋았잖아~~! 하는 절규를 날리는 중입니다.
  NT 노블 중에 [부기팝] 시리즈를 먼저 접했는데 어째 "새벽의 부기팝"인가를 넘어가면서 시리즈의 활력을 많이 잃은 듯한 느낌이 와서 더 이상의 구매는 자제하고 [키노] 시리즈를 계속 들이고 있었는데, 근래 들어 동인지 개념의 [학원 키노] 등이 나와서 자제 중이었죠. 특히 [키노의 여행] 시리즈의 경우 인간군상의 심리적인 측면과 사회가 가지는 자기모순적인 측면을 두루두루 돌아보게 해 주는 요소가 있어 애독 중인데 신간이 꽤 안 나오다 보니 답답해 했던 중이었다는... 이제 10권이 나왔다고 하니 다음 달 중에 계좌잔액 점검하고 질러야겠네요. 늦어도 추석 연휴 전에는 질러서 연휴 동안 다른 책들과 느긋이 즐기는 느낌을 맞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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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월초에 회의를 통해 이번 학기에 사용될 서술형 문제를 한꺼번에 만들어 제출하였고 검수를 통해 이번에 학기용으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검수작업본이 나오지 않아 머뭇머뭇입니다. 다음 주에 시험대비체제에 들어간다는데 연구용 교재는 지급되지 않은 상태이고요.(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나서야 하는가...)
  아직 고등부 교재연구는 지지부진입니다. 역시 시간보다도 몸이 부대끼는 것이 제일 심하네요. 사놓은 교과서가 몇 권이고 그것을 정리할 노트로 사놓은 것이 몇 권인데 피곤하다는 이유(실제로 피곤하지만)로 아까운 새벽 시간을 흘려 보내는 날이 며칠이던가... 거기에 곧 2학기의 학교별 시험지를 검토해서 정답지 작업도 해야겠네요. 그간은 시험지 사본 밑에 답을 직접 표기했는데 그것도 힘들어서 아예 파일로 표 스타일을 만들어서 입력하는 방식을 취할까도 싶어요.

  이래저래 출퇴근길 책을 읽으며, 또 학원 안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그리고 간간이 방안에서 인터넷에서 뉴스를 읽거나 케이블 TV에서 뉴스를 보면서 "치환과 대입, 자기모순을 함유하고 있는 대리주의의 위험" 등을 느끼고 있는데 막상 그것을 무어라고 표현할까 생각하노라면 어느 사이에 지쳐 쓰러져 잠에 빠졌다가 해가 한참 떠오르고 나서 부시시하게 일어나 있는 자신을 발건하게 됩니다. 살아남기 위한 생업의 무게감에 눌린 꼴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을 제 인생(결혼이나 자녀를 두어 나를 기억하게 하겠다는, 또는 이 세계에 무언가 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기에 오래 살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에서 무엇보다 '모순 속의 삶'이라는 가장 큰 주제의식이 제 머리 속에 잡혀 있는 만큼 그것을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 과제일까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만들어 내는 것. 제 스스로 깊이 빠져 있는 이 질문에 대한 고찰이 제가 이 생을 마치기 전에 어떠한 답을 끄집어 낼 것인가(앞 문단과 뜻이 같아 보이는...) 하는 것이 계속적인 화두가 되겠죠 아마?

[늦잠 & 책] 이제 2/3일까...

낙서(일기) 2007.08.25 13:40 by Trotzky trotzky
  어제 퇴근 뒤 오늘 후배들의 경기가 있어 아침 일찍 나서야지 하는 생각으로 밤을 샜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깊어가면서 노트북 하드에 있는 쓸데없는 넘들을 디비디로 백업하고 사진 떠놓고 수목금 입은 의복들을 세탁기에 돌려야지 싶어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새벽의 후반부 시간을 보냈다죠.
  그러면서 어느 사이에 새벽하늘빛이... 그런데 거기서 밤샘을 끝내고 씻으러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엎어져서 깜박잠을 자 버리고 말았다는... 결국 눈을 뜨니 출근 준비를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되어 버렸더군요. 결국 오전에 무언가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은 이번 주 내내 실패한 셈이라는 것이죠.

  출근길 전철 내에서 [비무장의 예언자, Trotsky, 1921~1929]의 4장까지 읽었습니다. 페이지는 370페이지 소화. 남은 것이 아직 300페이지 가까이 남았는데 2개 장이더군요. 얼마나 처절하고 장엄했기에 그럴까 하는 생각입니다.
  읽으면서 내내 왜 그리도 그 사람은 "가까운 길,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멀고 어려운 길만을 선택했는지, 그 정도의 역사적 통찰력(책 제목이 딱이다 싶군요.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도이처의 글의 흐름을 좇노라면 거의 7,80% 정도의 적중력을 보인달까나)을 가지고, 거기에 혁명의 지휘자 및 수호자로서 보인 그 역량을 좀더 내부로 돌렸더라면 멕시코에서의 그 말년은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스탈린에게 패해서 권력의 중심에서, 자신의 고향인 소련에게서 쫓겨나 그에 대항하는 생애의 말년을 보냈기에 지금 제게 그의 행적이나 글들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시당초 저의 대학시절 제가 [무장한 예언자]를 읽는 모습을 본, 그리고 트로츠키의 저작이 없나 서점을 헤매이던 저를 보는 일부 운동권의 과 동기나 선배들이 허헛하면서 미소(무슨 의미의 웃음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를 짓거나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켜 보던 것이 떠오르네요. 그러나 꿀리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90년대 초의 그 분위기는, 앞뒤가 안 맞는 공허함을 유발하는 이들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으니까요.

  ...일찍 출근했으면 점심을 미리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빠듯하게 나오는 통에 있다가 공강시간을 이용해야겠네요. 그나마 공강시간이 있는 날이었으니 망정이지 싶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생각만큼 수업에 열심히 따라와 주지 않아서 배로 힘들거던요(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초기에도 그랬지만 그나마 열정이라던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를 증폭시킬 수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뻔해 보이는 '도덕교과서의 반복-실은 도덕교과서에 실릴 것도 아닌데-'이다 보니 딱히 이해시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죠).
  [비무장한 예언자 Trotsky, 1921~1929]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무장한 예언자]는 지난 91년에 두레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구입해서 학교를 오가면서, 수업 중간중간 쉬는 공강 시간 등을 이용해서 빠릿빠릿하게 읽었는데 집을 나오면서 놔두고 나온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죠. 간신히 지난 해 연말께던가 필맥에서 나온 것을 다시 구입할 수 있어서 한숨돌리기는 했지만 당시의 책이 없었던 것은 아쉬움 중에 아쉬움었죠.
  사실 [비무장한 예언자]는 학교 도서관에서 영역본을 발견하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전책을 제본하면서 제 스스로 번역해 보자면서 의욕을 일시적으로 일으켰기까지 했는데 역시 집을 나오면서 이제는 어디의 폐지가 되어 있겠죠. 경위야 어찌 되었건 이제 방 한 구석 좁은 공간이나마 자리잡고 출퇴근길에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뿌듯해야 하는지 담담해야 하는지...

  트로츠키가 1905년의 혁명, 그리고 1917년 10월(구력)의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하면서, 그리고 적군을 조직하는 등 혁명의 수호자가 되어 [빛]이 되었던 전권의 말미에 그를 그 빛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요소들이 끌어내리기 시작하는 이야기까지가 전권의 내용이었는데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은 그가 이루었던 성과에서 서서히 침몰되어 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과거 그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인지 이렇게 한 발 한 발 정점에서 끌려내려오고 있는 그의 실패과정을 보는 것이 즐겁지는 않군요.
  워낙 책의 두께가 엄청나다 보니 베껴쓰기는 무리겠어요.([비무장한 예언자]의 본문 페이지 수는 660쪽) 그래도 그 전의 그의 저작들에 대한 베껴쓰기 작업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었죠. 더구나 요즘처럼 퇴근시간이 늦어짐에 더해 처리해야 할 업무들에 치여 자리에서 축 늘어져버리고 있는 요즘은 특히 그렇다는... (전에도 겨울에 베끼기 작업이 좀 더 편했던 기억이 난다는...)

  문장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전문용어들이 섞여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아 출퇴근 시간에 한정된 독서량 치고는 진도가 빠른 편입니다. 운좋으면 9월이 지나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추방당한 예언자]가 그 뒤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 책들에 대한 읽기가 완료될 수 있다...면 전에 사놓은 것에 더해 우석훈 님이 쓰신 시리즈 책을 구입할까 하는 생각 중입니다. 그 시점이 되면 제 방의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제고가 들어가야 할 듯 싶군요. 버릴 것은 점점 줄어들어 가는데 새로운 것들은 쌓여 가고... 참 힘드네요. 
  어제 퇴근 전에 기사검색을 하다가 "KIA 김진우 임의탈퇴 위기" 운운하는 기사를 보고서 전후사정을 좀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름검색을 들어갔는데 관련기사 중에 뜻밖의 꼭지 하나를 확인, 클릭을 했다는...

링크 :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7271545041&code=900308

  대학교 2학년일 때 우연히 "무장한 예언자 : 트로츠키, 1878(?)~1921"를 구입한 뒤로 트로츠키는 내 인생에 참으로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해 온 인물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른바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등으로 이어져 오는 그넘의 계보에 이 사람의 역할과 행동 등을 현재와 대비할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 비록 동기생이 그에 대해 자신이 아는 한도에서의 비난(비판이라고 할 정도의 지식은 서로 가지고 있지를 못했으니)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정도이기도 했고.

  2001년 거처를 옮기면서 당연히 그 책을 가지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막상 두 번째 고시원으로 자리를 잡은 지 몇 해에 그 책이 없는 상황, 그런데 그에 대한 내 감정의 소요는 멈추질 않았고, 결국 그의 저작물들이 눈에 띄는 대로 구입을 하기 시작했다. "해당 시대에 변화(혁명)를 위해 살았던, 하지만 그 성과물이 변질되어 가는 것과 자신이 그 무대에서 밀려난 아이러니한 인생 속에 오로지 믿을 것은 자신의 글과 자신의 성찰 뿐"인 인물에 대한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혁명사 상-중-하]를 전부 구입했고 그 중 상권의 2/3와 하권 전체를 베끼기 작업을 끝냈으며, [연속혁명, 평가와 전망] 합본된 책도 구입해서 전 내용을 베꼈다. 그 파일은 노트북을 바꾼다던지 백업을 한다던지 할 때도 항상 확인을 거쳐 백업 일순위에 놓는다. 그 외에 "실천은 커녕 읽는 것도 버거워하는 주제에" 두어 권의 다른 저작을 구입했지만 역시 아이작 도이처의 [~~예언자]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제일 컸는데 어찌해서 [무장한 예언자]는 재발간이 되어 구입을 바로 했는데 [비무장한 예언자]와 [추방당한 예언자]는 번역작업이 늦어지는지 나오지 않아 서점 사이트를 들어갔을 때마다 넌지시 확인하는 습관이 들은 지도 어언 몇해였는지... [비무장한 예언자]의 경우 대학다닐 때 불법인 줄 알면서도 학교 도서관에서 영역본을 대출해서 제본해서 어리버리 직접 번역이라도 하면서 읽을까 했는데 이루지도 못하고 거처를 옮기면서 남겨두고 나와야 했던 아픔이 남아 있었다.

  어제 결국 배송시간이 학원휴가 때까지 늦춰질지 모른다는, 카드대금이 심하게 늘어난다는 압박 때문이라는 별별 마음 속의 핑계 속에 삼성동 [** * ***] 서점에 가서 그 두 권을 모두 현금으로 질러 버렸다. 아직 다 읽지도 못한 책들이 쌓여 가면서 공간을 차지하는데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는 그 두 권이 합세하면서 귀가 후 책정리를 위해 한 차례 법석을 떨어야 했고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 지금 읽고 있는, 그리고 서둘러 읽어야겠다 마음먹고 구입한 책들을 서둘러서 읽고 나서 다가오는 휴가기간에 계획을 잡고 부지런히 읽고자 한다는.

  베껴쓰기나 독서감상평을 남기고 싶은 책이 늘어가는 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속의 모순을 인지하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데 있어서는, 비록 내 자신이 그것을 현실에서 개선하는데 부족함 투성이지만 그래도 나은 것이 아닐까 자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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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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