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172620.html


<한겨레> 기자채용 작문시험 채점표를 공개합니다
작문 채점 어떻게 글을 써야 더 좋은 점수를 받나?
한겨레
한겨레신문사는 11월13일 새 식구들을 맞았습니다. 경영관리 부문과 편집 부문으로 나눠 진행한 <한겨레> 채용 절차는, 입사를 생각하는 준비생들에게 알려져 있듯이 ‘독특하게’ 진행됩니다. 한겨레가 어떻게 ‘미래의 기자’를 선발하는지를 전형 절차에 참여한 평가위원의 글을 통해, 소개합니다. 한겨레 등 언론사 입사만이 아니라, 논술이나 작문 등 목적이 뚜렷한 글쓰기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입니다. /편집자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가장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긴 했는데, 왜 떨어졌는지, 무엇이 부족한 건지, 또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합격할 수 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는 언론사뿐 아니라, 일반기업 입사시험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언론사는 2차 시험에서 대개 논문과 작문으로 일종의 ‘글쓰기 능력’을 테스트합니다. 지난 10월30~31일 1박2일 동안 <한겨레> 입사 2차 시험 중 ‘작문’ 채점위원들은 올해 <한겨레> 지망생들의 작문 답안지 점수를 매겼습니다. 1차 시험을 통과한 취재·편집 60명, 사진 20명 등 80명의 답안지였습니다.

채점을 하면서 ‘이런 부분은 고쳤으면 좋겠다’, ‘이번에 탈락하더라도 이 부분은 더욱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오갔습니다. 이에 수험생들이 쓴 작문 답안지 일부를 공개하고, 채점평을 간략히 공개합니다. 언론사 입사뿐 아니라, 글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더라도 남의 글을 허락없이 게재해도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 뒤늦게 양해를 구합니다. 혹 여기에 게재된 자신의 글이 삭제되기를 원한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본인 뜻에 따르겠습니다.(참고로 이 글은 작문 채점 직후 작성했으나 최종 합격자 발표로 올해 <한겨레> 입사전형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림을 알려드립니다)

<채점방식>




채점위원은 모두 경력 10년차 이상의 <한겨레> 기자들로, 논문 3명, 작문 3명 등 모두 6명이었습니다. 채점위원들은 수험생들의 이름, 수험번호 등 개인정보는 전혀 모른 채 오로지 답안지만 볼 수 있습니다.

채점과정을 소개하면, 먼저 글을 한 번씩 모두 읽으며 짧게 평을 적어넣습니다. 그 다음, 글을 하나씩 다시 읽으면서 채점지에 항목별(창의성, 시사와의 연관능력, 글의 짜임새, 완결성 등) 개별 점수를 적어넣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별 점수를 합산해 개인별 작문 점수를 합산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답안을 다시 훑어보며 점수를 수정하는 마지막 작업을 거치기도 합니다. 최종적으로 채점위원 3명이 각 수험생에게 준 점수를 합산합니다. 채점을 하는 중간중간 다른 채점위원과 개별답안을 놓고 토론을 벌여 의견을 조율하기도 했습니다. 3명 채점위원들의 점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신춘문예 당선자 뽑듯 글을 잘 쓴 순서대로 사람을 뽑는 게 합당한가’, 아니면 ‘글은 좀 못 쓰더라도 앞으로 기자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뽑는 게 합당한가’라는 갈등이 오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글의 순서’대로 점수를 매겼습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을 조금 더 배려하려 애쓰긴 했습니다만, 2차 시험이 최종이 아니기에, 객관적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고, 제가 갈등한 부분은 3차 위원들의 몫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채점위원들이 보기에 어떤 글이 잘 쓴 글이고, 어떤 글이 조금 아쉬운 글인지 보도록 합시다.

<이렇게 쓰면 안됩니다>

먼저, 아쉬운 글부터 봅시다. 여기선 작문만 체크하기 때문에 아래 언급된 수험생들 중 논문시험을 잘 치러 2차 시험에 합격한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1. 신변잡기 일변도는 피하자

올해 작문 주제는 ‘새벽’이었습니다. 상당수 수험생이 자신이 새벽에 공부한 이야기, 백수생활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한 수험생이 쓴 글을 봅시다.

대개 사람들은 새벽에는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나기 직전의 새벽잠은 그 어느 것보다 더 꿀맛이다. 나는 대개 새벽에 깨어있다. 아니, 새벽까지 깨어 있다. 2년간의 백수생활은 자연스럽게 내 생활리듬을 ‘늦은 잠, 늦은 기상’으로 맞춰 놓았다. 실상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다해서 큰일 날 것은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 백수라서 행복해요”가 절로 나온다.

처음 백수생활에 입문했을 때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빈둥거리는 게 한심했다. 바른생활 사이클로 돌아가기 위해 이것 저것 해보았다. 올해 안에 꼭 취직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교회의 새벽기도도 나가봤다. 운동을 한답시고 온 동네 스모그는 다 마셔가며 새벽안개 가로 지르며 뛰어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활은 원점으로.

사실 나는 게으르지 않다. 그런데도 새벽 3시30분, 현관 앞에 ‘탁’하니 신문 놓여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무척 한심해지는 것이다. 북한에서처럼 국가가 ‘새벽별 보기 운동’을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사실이 부끄럽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죄책감도 느낀다.

새벽은 나에게 규칙적으로 살 것을 강요한다. 새벽은 어서 잠을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기를 기대한다. 아침형 인간의 부지런한 생활만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새벽의 강요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의 사이클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데도 새벽은 나에게 죄책감과 열등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새벽의 강요에 쉽게 굴복한다. 백수생활을 빨리 청산하고 바람직한 생활에 합류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새벽의 강요에 쉽게 부응하지 않는다.

아마 오늘 시험에서 또 떨어지면 한동안 새벽별 보고 잠들기 운동을 계속 해야할 듯하다. 서글프다. 백수의 새벽은 서글프다.

글 하나를 더 볼까요. 다음 글은 사진기자직에 응모한 또 다른 수험생의 글입니다.

자욱한 담배연기, 눈에선 모래알이 구르는 듯 얼얼하다. 두어시간 전부터 내 눈은 충혈되었을 터이다. 우유배달 아저씨의 리어커 소리가 들린다. 창밖을 보니 오늘도 녀석은 푸른 빛을 머금고 나를 바라본다. 어머니의 방에 불이 켜졌다. 오늘은 추우신 지 너덜너덜한 붉은색 털모자를 쓰시고는 나를 힐긋 보시곤 현관문을 나가신다. 아마도 교회로 향하시는 듯하다. 어머니의 새벽외출을 눈으로 배웅한 것이 여름부터였던 것 같다.

남들처럼 아침을 준비할 이유가 없으니, 새벽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 아닌, 나만의 하루의 마침표인 것이다. 다시 녀석을 바라보니 아까보다 옅은 색으로 방안에 찬공기를 넣어준다.

“그래! 알았다” 놈과 작별인사를 하고, 텁텁한 이불 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조금 늦은 기상후 할 일을 생각해본다. 60넘은 노모의 온기가 있는 도시락이 나를 반길 것이고, 내 배처럼 볼록나온 가방을 메고, 책냄새 가득한 도서관으로 갈 것이다.

새벽에 마주치는 어머니의 눈은 왜 그리 슬퍼보이는지! 서늘해진 날씨만큼이나 내 가슴에 시린 바람이 분다. 당신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 지 잘 안다. 갈 곳이 없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닌 더 많은 눈물을 교회에 쏟고 오시리라! 오늘은 계획보다 좀 많은 서적들을 보리라 다짐한다. 미명이 주는 한가함이 아닌 분주함을 갖고 싶기에, 어머니의 눈에 슬픔을 몰아내기 위해!

새벽은 무거움으로 나를 누른다. 침묵의 방안 구석구석 몰려오는 두려움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진다.

이제 녀석과 이별하기 위해 노렭해야겠다. 그리고 새롭게 너를 맞이할 것이다. 그럼 우리 어머니의 눈을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겠지? 어머니의 눈물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그래, 끝이 아닌 시작으로 널 꼭 만나리라! 주먹에 힘이 불끈 솟는다. 올 겨울, 다시 새롭게 만날 너와 우리엄마께 선물을 사 드리자! 따뜻한 털모자를!

위 두 글은 자신의 삶과 고민을 그대로 적었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글은 ‘일기’라고 봐야합니다. 아무런 메시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선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듭니다.

그런데 꽤 많은 수의 수험생들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아마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힘든 삶이 세상의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보이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더라도, 거기에서 공적인 메시지를 끌어내야 합니다. 그저 단순히 ‘아, 백수생활 너무 힘들어요’라는 푸념으로 그쳐선 안 되는 것입니다.

2. 신문 짜깁기도 피하자

신변잡기에 이어 또하나의 유형이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듯한 글이었습니다. 아마도 2차 시험을 앞두고 예상문제로 연습을 해봤을 터이고, 이를 ‘새벽’에 연결시키려 한 듯합니다.

예상문제로 연습을 해보는 건 괜찮습니다만, 너무 거기에 얽매여선 곤란합니다. 준비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면, 여기에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듭니다. 또 신문 사설을 이리저리 엮다보면, 대개 양비·양시론의 공자님 모범답안 쓰기 마련이라, 아무런 개성도 감동도 주지 못하는 글이 되고 맙니다. 아래 수험생의 글을 한 번 봅시다.

닭모가지

정치의 과잉이다. 참 치열하게 다툰다. 신문이고 인터넷이고 매 한가지다. 말하려고만 하지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견의 충돌이 접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라지만 것도 정도의 문제다. 으르렁 말이 넘치고, 상대방을 일컬어 ‘수구꼴통’, ‘친북좌파’라 매도한다.

현재 이 혼란을 주도하고 있는 쪽은 보수세력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겠다는 일념하에 내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외부 세력을 조직화하고 보수언론이 이를 홍보한다. 이들의 노력은 미증유의 우파 노동조합까지 탄생시켰다. ‘우파’와 ‘노동’이라는 어휘의 기묘한 결합은 동그란 네모만큼이나 형용모순이다. 모순은 이게 다가 아니다. 보수세력이 외치는 구호 하나하나에 결결이 묻어난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다른 한편에선 국가보안법 유지를 외친다. 북한 인민의 생존권과 인권을 부르짖으며 인도적 경제 지원의 전면 중단을 요구한다. 이들이 자유를 외치나 자유의 위협에 저항하는 피묻은 함성이 아니다. 그들이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일제부역행위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들에게 자유란 처세의 논리, 생존을 위한 복음이었던 것이다.

민족반역자에서 반공주의자로 옷을 갈아입은 이들은 최근에 또 한번 새로운 패션을 선보였다. 산업화 세대다. 민주화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재료삼아 새옷을 마련한 것이다.

이들은 최근의 사회적 혼란을 초저녁의 어둠이라 말한다. 민주화 정권이 계속 집권할 경우 깊은 밤이 찾아오고 한국은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 경고한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과오를 보지 못한다. 우리 사회를 파시즘과 암흑의 시대로 몰고간 장본인은 외려 자신들이다. 당시 사회는 온 국민의 사회문화정치적 참여 욕구를 틀어막고 사회적 삶에 사형선고를 내린 시대였다. 이때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시대의 새벽을 위해 뛴 이들이 민주화 세대이다. 이 개념은 단순히 정치권 내부로 진출한 이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대의 고통을 감내한 모든 이들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이 말을 한 전직 민주화 투사의 행적과 상관없이 이 말은 옳다. 독재세력이 압박하고 틀어막는다 해도 새벽은 온다. 그리고 왔다. 시간이 좀 걸릴 지언정 찾아온다. 그게 역사의 순리자 진보이다.

마지막으로 분명 보수세력은 필요하다. 진보와 대결하며 진보가 무책임한 혁신으로 치닫을 때 제어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보수에게 이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국가의 위기라 하지만 자신들의 위기일 뿐이다. 스스로 자초했다. 지금은 시청앞 광장에서 목소리 높일 때가 아니다. 자신들을 되돌아 볼 때이다.

어딘가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어본 듯한 단어나 문장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더욱이 한 주제에 대해 조금씩 다른 주장이나 내용들을 섞어 하나의 글로 만들면, 애초의 개별적인 글들에 비해 밋밋하고 무덤덤해지게 마련입니다. 이 글도 남의 말을 빌어 모범답안을 전하는 듯하는 느낌을 줘 수험생 개인의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수험생들 가운데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참고로 취재·편집 지원자 60명 중 14명이 2차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신변잡기나 신문 짜깁기로는 아무리 글을 잘 쓰고 모범답안을 늘어놓더라도 14명 안에 들기는 무척 힘이 들 것 같습니다.

3. 감정의 과잉표출도 피해야

아래 글은 한 수험생이 제출한 글입니다.

“니들이 에어컨 펑펑 쐬며 펜대 굴리고 있을 때, 내 남편은 새벽부터 일어나 10시간씩 일했다”

포스코 건설노조 파업때, 건물내 음식 공급이 막혀 굶고 있을 남편에게 주겠다고 새벽같이 음식을 싸온 부인의 절규란다. 그녀는 경찰들에 의해 건물 진입이 금지되자 끝내 눈물을 쏟았다. 그 시간에도 포스코 임원들과 정부 관료들은 에어컨 바람 속에 펜을 쥐고 있었을 터다.

노동자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일터에 나선다. 허나 그들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현대 정몽헌 사장은 새벽 4시에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안보리의 마지막 ‘유엔 총장’ 예비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양복을 차려 입고 소식을 기다렸다. 노동자들이 새벽에 일어나 기계를 잡듯, 정책가, 자본가, 지식인들도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펜을 잡는다. 그들은 펜을 쥔 손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투자안에 결재하고, 칼럼과 논문을 쓴다.

그런데 무리하게 일찍 일어나서일까. 졸린 눈을 비벼가며 행해진 그들의 펜놀림은 너무 쉽게 오타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아’를 써야할 때, ‘어’를 쓴다. 또 가끔은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 네모를 그리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들이 범한 오타가 그들의 결재 서류 위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오타가 한 사람의 새벽을, 삶을 짓밟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새벽, 잠이 채 덜 깬 레바논의 소녀는 자신의 집 지붕을 덮친 폭탄으로 팔이 잘려 나갔다. 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레바논 공격을 지시했던, 과도하게 부지런한 이스라엘 지도자의 ‘의도된’ 오타 때문이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3일째 성인오락실에서 새벽을 맞는 40대 가장은 쾡한 눈으로 주머니 속 빚문서와 화면 속 보석들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다. 이는 부지런한 문화관광부와 영등위 직원들 덕분이다.

‘욕심의 잉크’로 가득찬 펜들의 과도한 활약이, 그 검은 잉크를 서민들의 삶 속에 번지게 했다.

이 세상에는 손의 수만큼 펜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는 펜 대신 버스 운전대를 잡고, 어떤 이는 거리에서 빗자루를 잡아야 한다. 또 어떤 이는 잡을 게 없어 허공만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삶이 이 ‘펜’을 쥔 사람들의 손놀림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펜의 한 획에 수만명의 목숨이 매달려 있고, 다른 한 획에 다시 찾아오지 못할 어떤 이의 새벽이 걸려 있다.

펜을 쥔 사람들은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졸음 속에 서명하는 종이, 그 종이만큼이나 허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포스코 노조원 부인이, 레바논에 사는 한 소녀가, 그리고 성인오락실의 40대 가장이 맞는 그 퍼렇고 시린 새벽을.

이것이 부지런한 그들이 졸음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펜뚜껑을 열어선 안될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펜대를 쥔 그들이 함부로 새벽을 맞아서는 안될 이유이다.

전형적으로 ‘주장’만 있고, ‘내용’이 없는 글입니다. ‘새벽에 펜뚜껑을 함부로 열지 말라’는 강한 경고를 하고 있는데, 철저히 한쪽 편 시각에 섰습니다. 한쪽 편에 서더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선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럴려면 한쪽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밝혀줘야 합니다.

이 글은 펜뚜껑을 잘못 연 것에 대한 논리적 해명 없이 오로지 세상을 ‘우리편’과 ‘나쁜놈’으로 인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이런 세계관으로는 지금 기자가 되면, 자칫 개별 사안을 보면서 객관성을 너무 쉽게 잃진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또 감정표출이 너무 지나친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4. 하나만 제대로 이야기하자

아래 수험생의 글을 봅시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월, 수, 금요일 이른 아침이면 우리 동네에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일주일에 세 번 오는 쓰레기 수거차가 이 노래를 틀어 자신이 왔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동틀 무렵 이 노랫소리에 벌떡벌떡 깨고는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새마을운동할 때에 널리 불렸다는 이 노래를 어릴 적 나는 ‘쓰레기 수거 노래로 확신했다. 단순히 ‘새벽종, 새 아침’이라는 노랫말 때문에 이른 아침에 오던 쓰레기 수거차가 이 노래를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마을운동과 이 노래는 참으로 잘 어울린다. 아침을 알리는 새벽처럼 새마을 운동 역시 우리나라의 새로운 아침을 열었다. 새벽부터 우는 새들과 같이 일어나 아침부터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 ‘조국 근대화’란 목표 아래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짚과 기와로 이루어진 전통 한옥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고, 신식 양옥을 지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만큼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바꾸었다. 그 결과 보릿고개도 점점 사라졌다. 정부에선 대외수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연일 발표했다. 분명 우리 국민들은 그 전과는 다른 새 아침을 맞았다.

그렇지만 새 아침이 언제나 행복한 아침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굶지않고 돈 많이 벌기 위한 새벽의 노력들은 헐벗고 파괴된 아침의 모습도 남겼다. 무조건 개발이 우선이었던 당시의 새마을운동은 많은 것을 없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뒷산의 토성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백사장에 나가 물놀이하며 고기잡이를 하던 한강도 그 모습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제1의 철새 도래지라는 주남저수지에는 언제부턴가 떠났던 많은 철새가 돌아오지 않았다. 경제성장이 최우선과제이던 그 시기에 압축적이고 집약적으로 행해진 난개발은 자연파괴와 문화유적의 상실을 수반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 당시, 새 아침을 맞이하겠다던 새마을운동은 반쪽의 성공만을 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또다른 새로운 아침을 열자며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경부운하’가 그것이다. 내년 대선까지는 아직 꽤 남았지만, 경부운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전답사 등으로 분주하다. 경부운하는 우리나라 물류비의 감소,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의 상승 등 경제적 가치가 크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새로운 국토시대가 열린다고 하는 것이 새 아침을 알리던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경부운하는 그 지역의 문화적, 자연적 가치를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다. 또다시 개발로 전국적인 수질오염과 환경파괴가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리 여러 시민단체와 정부 등이 경부운하와 관련한 검증을 하고 이 일을 막아야 한다. 새벽에 무슨 일을 하느냐가 어떠한 이 아침을 맞을 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신중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경부운하 반대 논거로 과거 새마을운동을 들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자연파괴와 문화유적 상실을 수반했고, 경부운하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경부운하는 안된다’는,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3단 논법을 차용했습니다. 그런데 두 군데가 잘 연결이 안 됩니다. 새마을운동이 자연파괴와 문화유적 상실을 얼마나 수반했는 지로 든 사례 3가지(뒷산 토성, 한강, 주남저수지) 모두 새마을운동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뒷산’이라는 게 어느 도시의 어느 뒷산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새마을운동으로 토성을 없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 농촌 중심의 새마을운동이 서울의 한강과 무슨 관련이 있는 지, 주남저수지는 아마도 저수지 준설을 놓고 환경단체와 개발론자들의 부딪힘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는 새마을운동 끝난 한참 뒤인 지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인 듯 합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이 자연파괴와 문화유적 상실을 수반했다는 게 이 글만으로는 전혀 납득이 안 됩니다.

또 이를 그냥 인정한다 하더라도 두번째, 왜 ‘경부운하=새마을운동’이라는 전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꽤 긴 이 글에서 경부운하가 안된다는 이유는 딱 한 문장입니다. ‘또다시 개발로 전국적인 수질오염과 환경파괴가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주장이 너무 강한데 반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설명이 너무 빈약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일, 잘 모르는 일에 대해 그 배경과 설명을 시시콜콜하게 다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장도 그에 비례해야 하는 법인데, 가끔 ‘논증’은 빈약한데, 갑자기 결론 부분에서 ‘주장’이 엄청나게 커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는 보수언론들이 가끔 의도적으로 쓰는 수법이기도 하고, 때론 정반대에 서있는 운동단체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가끔 보게 됩니다. 바람직한 글쓰기나 토론 방법이 아닙니다.

이 수험생의 경우 또하나, 앞부분 ‘쓰레기차’ 이야기를 좀 장황하게 했습니다. 또 결론은 ‘반대’인데 반대에 대한 논거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내용이 더 깁니다. ‘반대’를 이야기하려면, 긍정적인 부분은 압축적으로 한 문장으로 줄이고, 나머지 대부분을 ‘왜 내가 반대하는가’에 대해 촘촘하게 써내려 가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인상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5. 입사시험은 학교시험이 아니다

아래 수험생의 글을 한 번 봅시다.

<새벽의 ‘불편한 진실’>

새벽녘, 출근시간 전철 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하나. 허름한 옷차림에 허리가 굽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변변한 도구도 없이 당신의 몸짓만한 신문더미를 이 칸 저 칸 옮기신다. 처음 그 광경을 보았을 때, 그냥 자리에 앉아있으려니 그분들의 거친 숨소리와 땀냄새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일어나 돕자니 당최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 불편함도 잠시. 반복된 경험이 도덕적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 탓일까. 아님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탓일까. 이제는 그분들을 앞에 두고도 모자란 잠을 채우기 위해 눈을 감거나 책을 읽는다. 얼마전 몸이 불편한 노인분들이 술기운을 빌려 신문을 모으고, 또 그렇게 모은 신문을 재활용처리장에 가져가면 10KG당 800원 남짓한 돈을 받는다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알았을 때도 아주 잠시 맘이 불편했을 뿐이었다.

나는 ‘늙음’과 ‘젊음’에 대해 생각한다. 젊음이야 잃어버리기 싫은 좋은 것이겠지만 늙음 또한 받아들여야 할 인생의 한 과정일게다. 한 사람의 인생은 ‘배우는 시간’을 지나 ‘배운대로 사는 시간’을 보내고 ‘전해주고 떠나는 시간’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젊음에는 방황이 허락되었고, 나이듦에는 지혜와 연륜이 받들어졌다. 그러나 참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이 헝클어져 버렸다. 이 시대에 젊음은 일탈과 방황으로 분출되지 못한다. 이 시대의 늙음은 고단하고 외로우며 때론 비참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온통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과 ‘밀려났을 때의 공포’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딘가에 갇혀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후지타 쇼조는 현대사회의 사람들이 보육기(保育器/유치원, 학교, 직장과 아파트를 지나 병원과 실버타운까지)를 갖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어딘가에 갇히기 위한 비용을 대기 위해서인 셈이다.

젊은이들은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사회는 답한다. “정신 바짝 차려라. 까딱하면 실버타운에도 못들어 가고 저들처럼 새벽부터 폐휴지나 주우면서 살게 된다” 젊은이들은 열심히, 치열하게, 무조건, 경쟁한다. 일탈도 방황도 고민도 없이. 새벽에 토익학원에 가기 위해,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 탄 전철 안에서 펼쳐지는 폐휴지 줍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은 젊은이들에게 ‘사회의 엄혹함’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손바닥만한 미니홈피에 웅크린 채, 그러면서도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젊음으로 가득찬 사회, 노인들이 술기운으로 폐휴지를 모아야만 하는 사회에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근대의 악몽’에 편입되기 위해 우리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깨고 그토록 치열하게 질주해온 것일까.

또다른 글을 한 번 봅시다.

“나는 ‘늙음’과 ‘젊음’에 대해 생각한다. 젊음을 읽기야 싫겠지만, 늙음 또한 받아들여야 할 좋은 것이리라.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이란 ‘배우는 시간’을 보내고 ‘배운 바대로 사는 시간’을 지나 ‘전해주고 떠나는 시간’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누천년 이래 내려온 인간 삶의 과정이다. 젊음에는 ‘방황’의 자유를 보장해주었고, ‘늙음’에는 연륜과 지혜를 받들어주었다. 그러나 참으로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과정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이 시대의 젊음은 방황으로, 저항으로 분출하지 못한다. 이 시대의 늙음이란 외롭고 고단하며 때로 모멸적인 것이다. 단계도 계통도 없이, 오직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밀려났을 때의 공포’로 사회는 재조직됐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에 갇힌다. 일본의 사상가 후지타 쇼조의 표현처럼 이 시대의 우리 인생이란 ‘보육기’(保育器·유치원에서 시작해 학원으로 학교로, 군대로, 회사로, 아파트단지로 그리고 병원과 실버타운으로)를 옮겨다니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거기에 갇히는 데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서다.

젊은이들은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사회는 답한다. “저길봐. 까딱하면 늙어서 실버타운에 못 들어가고 박스나 주워모으며 살아야 할지도 몰라” 젊은이들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벌하게, 경쟁한다. 방황도 일탈도 없이. 인간 삶의 자연스런 과정인 ‘늙음’이, 지혜와 연륜의 상징이던 ‘노인’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모멸적인 대우를 받은 때가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손바닥만 한 미니홈피 속에 소꿉장난하듯 웅크린, 그러면서도 무언강 쫓기는 젊음으로 가득 찬 사회, 여든이 다 된 노인들이 술기운으로 견뎌가며 하수도를 파내는 사회에서 ‘인생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고작 이런 ‘근대의 악몽’ 속에 편입되기 위해 우리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깨부수고 경제성장을 향해 질주해왔단 말인가.”

아래 글은 2차 시험을 치르기 약 2주전 쯤 <한겨레21>에 실린 외부 기고자(고교 교사)의 고정 칼럼입니다. 최하 점수를 맞은 건 ‘최하’라기 보단, 채점 자체를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처음에는 조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상 제 얼굴에 침뱉기 격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수험장에서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다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수험생은 어쩌면 이렇게 글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치 대학에서 시험을 치를 때, 얼마나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적어넣느냐에 따라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입사시험에서 마저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어쨌든,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점수를 낮게 받는 게 아니라, 이는 자신의 글솜씨를 보여줄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게 더 잘 쓴 글인가?>

수험생들의 상당수가 ‘새벽’을 노동문제와 연관지어 쓴 글이 많았습니다. ‘새벽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자, 그럼 똑같은 이 주제를 어떻게 쓰면 더 좋은 글일까요?

아래 수험생의 글을 한 번 봅시다.

<새벽의 실종>

아침형 인간인 덕에 새벽과 친한 편입니다. 더구나 밥벌이 수단을 구하는 장도의 길에 나선 뒤, 새벽과의 만남은 더욱 잦아졌고요. 하여 종종 새벽의 첫 지하철을 타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 첫 지하철이란 걸 타던 날, 새벽공기가 몰고온 추위를 좌석의 뜨뜻함으로 날려버릴 달콤한 생각을 하고 기다리는데, 이게 웬 걸. 빈 자리는 없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얼마나 일찍 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선점한 상태였으니까요. 새벽의 실종을 직감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생각건대 본래 새벽(dawn)은 새 벽(new wall)입니다. 어제와 오늘을 가르고, 쉼의 시간과 일의 시간을 구분하는 벽말입니다. 일종의 완충지대인 셈이죠. 물흐르듯 연속되는 시간을 애써 아침, 점심, 저녁 따위로 나눈 분절적인 시간체제가 등장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죠. 아울러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는 현대 문명의 공세 속에서도 새벽만큼은 공고했습니다. 마치 최후의 보루처럼. 어른도 아이도, 부자도 빈자도, 차도 사람도 모두 쉬는, 그래서 서울을 서울이 아닌 것처럼 만들었던 유일한 시간은 단연 새벽뿐이었습니다.

허나 얼마 전부터 공고했던 새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첫 지하철에서 느꼈던 황당함 역시 이 붕괴의 파편일 뿐이지요.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고 길거리를 미화하는 이들이야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으니 크게 주목할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학원으로 혹은 헬스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 이것은 분명 새로운 상황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새벽에도 일해야 하는 이들에 더해 승리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하고자 하는 이들까지 새벽을 점령하고 있는 사실. 새벽의 실종을 증거하는 명백한 근거입니다.

이렇게 새벽을 새벽이 아니게 만들어 버린 실체는 누구일까요. 승리와 성공을 탐하는 우리의 이기적 욕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상의 심층을 간파하는 이라면 그 욕망을 주조한 자본주의 운명 자체를 지목할 수도 있을 겁니다. 허나 무엇이든 한 칼에 베버릴 만큼의 시원한 대답은 아닙니다. 이렇게 그 실체가 또렷하지 않기에, 그래서 공격의 지점과 방향을 확정하기 힘든 탓에 새벽의 실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벽의 복원, 그것은 이른 시일 안에는 힘들겠지요.

시인 박노해는 인간의 노동이 온전하게 평가받고 대접받는 세상을 희망하며, <노동의 새벽>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아득해 보이기만 합니다. 새벽마저 우리네의 고투와 분투에 점령당해버린 지금. 누군가 <노동의 새벽>이 아닌 <새벽의 노동>을 써내려가도 될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글을 처음 읽고 채점을 위해 제가 쓴 짧은 평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고, 결론이 갑자기 끝을 맺음. 잘 쓴 글이 아님. 노동자들이 안타깝다고 말하는데, 읽는 이에게는 화자의 안타까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음. 진심이 녹아있지 않거나, 전달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음”

자, 다음 글은 윗글보단 조금 나은 듯합니다.

율곡 이이는 새벽을 좋아했다. 공기는 맑고 날씨는 서늘하니 책읽기 좋ㅇ느 시간이라 했다. 깨끗이 씻고 외관을 차려 입고 책을 읽으면 새벽의 기운이 든다고 믿었다. 조선시대 양반에겐 새벽이 여유시간이었다. 서당도 관청도 아침 10시께 시작된다. 의외로 제법 늦다. 그렇다면 양반들이 일과 전에 가만 있었느냐, 그건 아니다. 조선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인들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닌다고 했다. 양반들도 산책을 하고 놀러도 가며 새벽을 부지런히 즐겁게 보냈다.

반면 새벽부터 바쁘긴 하지만 별로 기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바로 노비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육체 노동을 하는 이들은 더운 낮시간을 피해야 한다. 어두운 시간대도 위험하니 피해야 했다. 결국 하루 노무는 새벽시간에 잔뜩 모였다. 집 앞 쓸기부터 손일, 밭일까지, 노비에게 새벽은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층계급의 역사가 늘 그렇듯 노비들의 이야기도 글로 남겨져 있는 게 거의 없다. 대신 양반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가늠해 볼 순 있다. 퇴계 이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노비 관리 잘 하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특히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고 불평을 하는 노비에겐 엄해지라고 강조한다. 아마 불평하는 건 퇴계집 노비만이 아니었을 듯 싶다.

이렇듯 새벽이 즐거울 지 괴로울 지는 그가 보낼 하루에 달려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할 일은 적고 누릴 게 많으면 새벽은 즐겁고, 노비처럼 하기 싫은 일만 잔뜩 쌓여 있으면 새벽이 제일 괴롭다. 그렇다면 양반처럼 무노동 지주도 노비같이 무보수 일꾼도 아닌 현대인들은 새벽을 어떻게 볼까. 출근 버스에 올라탄 현대인들의 얼굴을 보니, 안타깝게도 영락없는 노비의 얼굴이다. 피곤에 절은 표정에 찌푸린 미간하며 하루 일과에 대한 기대감 따위는 자취도 없다.

현대인들에게 노비의 새벽을 벗어나라 이야기하고 싶다. 일찍 자라는 소리가 아니다. 잠도 무관하진 않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하루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현대인은 노비와 달리 하루하루를 개선할 수 있다. 해야할 일, 하기 싫은 일이 쌓였더라도 오늘은 어제와 다를거란 기대감으로 극복할 수 있다.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을 보낸 톨스토이는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누리는 잠이 가장 달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하루를 누릴 기대감으로 깬 새벽이 더 달다고 한다면 톨스토이도 크게 반대하진 않을 듯하다.

이 글의 장점은 논지를 전개하는 흐름과 글의 균형, 그리고 적절한 인용 등 형식적인 면입니다. ‘새벽’이라는 주제에 조금 당황한 듯도 보이지만, 미리 준비했다기보단 그 자리에서 써내려갈 정도로, 꽤 글을 많이 읽고 써본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결론 부분이 좀 헐거워 글의 형식미가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다음 글은, 윗글보다 또 조금 더 나은 듯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드팀전 장사꾼의 후예를 아버지로 둔 까닭에 흰 새벽 갓밝기에 군산의 해망동을 종종 갔더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차머리를 들이밀고 주차시비를 하기도 하거니와, 아는 사람끼리 안면몰수, 깎기, 얹기 흥정에 왁자지껄한 그 곳. 흔히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팔려는 자와 사려는 자의 눈치, 코치 싸움에는 한 치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니... 과연 책 밖에서는 한껏 건조한 수사가 아니겠는가. ‘보이지 않는 드잡이, 결국 다 보이는 죽살이’ 정도가 그나마 현실 앞에 체면치레할 만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긴장 속에 시합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비로소 아침이 시작된다. 질풍노도의 시기,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애면글면 감기는 눈을 부여잡고 보았던 그 광경을,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아침을 기다렸노라고...

여기 이와는 반대되는 노동이 있다. 지지않는 태양, 아니 네온싸인에 이글거리는 거리. 오색찬란, 아니 수백색 혼란한, 한 쪽에서는 토사곽란에 생사를 왔다갔다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엔 ‘쉬었다 가요’ 연예인 뺨치는 강남 텐프로가 일렬 종대로 늘어선 그곳. 그렇다 문단의 서두에 난 이들을 노동이라 불렀다. ‘술’을 마시고 ‘성’을 사고, 팔고, 노동을 가치의 생산이라고 정의하고, 소비를 ‘생산을 위한 소비’로만 이해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사고다. 일찍이 베블린은 ‘사치’를 ‘지위’ 획득을 위한 생산으로 파악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술이 인도하는 향락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흰 새벽을 향락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함은 물론이다. 앞의 노동과 다른 점은 이러한 노동이 ‘불야성’이라는 표현처럼 저녁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김지하의 어구를 빌려 그대에게 묻는다. “흰 새벽에 강물 위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그대는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묻겠다. 저녁과 아침의 틈바귀에 새벽이 있다. 그리고 이 새벽에 이루어지는 두가지 노동이 있다. ‘아침을 기다리는 노동’과 ‘저녁을 거부하는 노동’ 혹자는 비판할 지도 모른다. 철지난, 그래서 조야한 이분법이라고. 또 다른 이는 ‘순진하다고 비웃을 지 모른다. 이제 세상은, 사회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조잡한 정의(Justice)로 정의(Identification)되지 않는 수많은 노동이 존재한다고. 그러면 이건 어떤가. 도덕과 윤리와 당위로 선택되는 노동이 있지 않느냐고. 국가가 만들고 배포하는 국정교과서 속 도덕과 윤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피시즘에 대항하는, 흰 새벽처럼 투명한 인간 본연의 도덕, 윤리가 우리에겐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난 그대들에게 다시 묻는다. 그대 안에 있는 윤리와 도덕은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가, 저녁을 거부하는가.

이 글과 바로 윗 글의 차이점은 ‘절실함’입니다. 이 글은 ‘새벽노동’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평소 고민이 녹아있는 반면, 그 이전 글은 ‘사유’에 치우쳤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 글을 쓴 수험생은 세상에 대해 좀더 많은 고민을 했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글을 얼마나 더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기자직에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글이 선언적이고, 단정적인 점, 특히 끝부분은 어깨에 힘을 ‘빡세게’ 줘 마치 대자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점은 좀 걸리는 대목입니다. 목에 힘을 좀 빼고, 자세를 조금만 더 낮추면 더 좋은 글이 될 듯 합니다.

자, 이 글은 어떻습니까?

외갓집에는 작은 닭장이 있어, 해가 멀리 희미한 먼동의 기운을 내뿜는다 싶으면 곧 우렁찬 ‘꼬끼오’ 소리가 들렸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엄마를 따라나섰던 것은 그 울음소리와 함께 동글동글하고 따뜻한 달걀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무릎께에 치이는 땅안개 틈으로 둥지에 손을 넣으면 신기하게도 하나씩 달걀이 들어있었다.

이웃집에 닭 한 쌍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직 어렸던 나는 은근히 옆집을 넘겨다보곤 했다. 그런데 마땅히 이른 아침에 들려야 할 닭 울음 소리는 깊은 밤에도 시도때도 없이 울려퍼져 동네 주민들의 잠을 설치게 했다. 교회며 가게며 휘황한 네온사인이 많았던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양계장 닭이라 새벽인지 밤인지도 모른다”고 혀를 끌끌 차셨다.

인위적인 조명과 모이공급으로 인해 양계장의 닭들이 보다 많은 달걀을 ‘시도때도 못 가리고’ 산란하게 된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알았다. 그로부터 나온 항생제 달걀을 먹고 사는 우리도, 양계장 닭들처럼 낮과 밤을 모른다. 24시간 편의점, 할인마트, 목욕탕이 불을 훤히 밝히는데 새벽이라고 특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새벽별을 보는 것은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열 때문인 줄만 알았는데, 취업을 위해 끊은 영어 새벽반에서 더이상 ‘학생’이 아닌 많은 직장인들을 본다. ‘샐러던트’라고 불릴만큼 당연해진 추세다. 그런 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지하철 버스는 조는 이들로 가득하다. 시장에 가시는 듯 나물 바구니를 든 할머니, 이른 등교에 나선 교복차림의 학생들, 학원에 가는 직장인들은 모두 피곤한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외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새벽의 거리가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간밤의 취기에 비틀거리는 사람도, 새벽을 쓸어내는 환경미화원도, 아직 불을 켠 가게들도 없는 적막한 거리에서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인공 조명에 몸을 맡기고 ‘양계장의 닭들마냥 모여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는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혹자는 새벽 첫차를 타는 사람들에게서 노동의 신성함을 읽는다지만, 고요한 외국의 거리 앞에서 나는 새삼 노동의 고단함을 깨달았다. 아침형 인간의 채찍에 내어몰려서 새벽같이 불을 밝힌다한들, 저녁이라고 변변히 쉬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자기발전보다는 노동과다에 피로한 현대인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과 함께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발전인 것처럼 설파하는 담론 속에서, 우리는 피로함에 시달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오지 않을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며.

이 글은 채점위원 3명 모두로부터 꽤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 글을 쓴 수험생은 같은 주제로 글을 쓴, 예로 든 두번째 글을 쓴 수험생보다 독서량이 더 적을 수도 있고, 세번째 글의 수험생보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덜 치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채점위원들이 주목한 건 일종의 ‘절제미’였습니다.

감정의 과잉없이 끝까지 차분함을 잃지 않았고,(수험생들의 상당수가 글의 끝부분에 마치 무슨 궐기대회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반대로) 단 한 가지 소재를 꼼꼼하게 묘사한 점,(수험생들의 상당수가 여러가지 사례를 이것저것 들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논증이 깊어질 수 없게 만들고, 때론 무리한 억측을 불러오게 됩니다.

하나의 주제나 소재에 자신이 없을 때, 백화점식으로 이것저것 들게 됩니다. 하나에 파고드는 건 기자로선 적합한 재질입니다) 글의 배치가 적절했던 점(수험생들의 상당수가 자신에게 인상깊었던 부분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체험을 지나치게 길게 서술한다든지, 논지와 직접적인 연관없는 에피소드를 길게 늘어놓아 결과적으로 글을 가분수로 만듭니다) 등이 좋은 점수를 받게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벽’에서 ‘새벽노동’을 이야기하려 했고, 이를 ‘양계장’에서 도출해낸 건 나름대로의 창의성과 시사연관능력을 인정받기에도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

<심사위원들을 고민하게 만든 글들>

자신의 삶을 적은 2개의 글을 나란히 봅시다.

돈이 필요했다. 학자금 대출이자에 생활비까지 더해 나날이 쪼들리는 터라 과외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빵 배달 일을 시작했다. 새벽 3시 반이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외곽의 빵공장으로 출근했다. 썩어가는 빵냄새를 맡으며 반송품들을 쓰레기 창고에 묻고 휘청거리며 냉동빵 박스들을 트럭에 싣다보면 잠이 달아나곤 했다.

땀 냄새가 고약하다고 느꼈던 운전하는 형님들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된 그즈음, 목에 수건을 걸친 나에게서도 그들과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다.

“넌 절대 운전대는 잡지마라” 말이 없던 내 파트너는 가끔 혼잣말처럼 당부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을 던지곤 했다. 근 이백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으로 전임자로부터 빚을 내 구입한 냉동차 대출금을 내고, 회사에서 주는 알량한 기름값에 더해 기름값과 보험금을 낸다고 했다. 아침과 밤이 뒤바뀐 채 하루 13시간을 노동하는 그 ‘형님’들의 삶은 강의실에서 배운 세련된 경영학 이론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내포한 것인줄은 그때 알게된 수확이다. 새벽이면 삶의 무게에 찌든 소사장들과 마주하다가 오후에는 학교에서 ‘분사’(spin off)와 ‘외주’(outsorcing)의 효용에 대해 일방적 찬사를 들었다. 재무관리 시간이면 너무나 명징한 사실인 양 “인건비는 고정비이기에 가변비용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들을 받아적으며 인간과 삶이 배제된 ‘경제’를 배웠다.

“요즘 세상에 ‘계급’이 어디있냐”는 후배와 노동자들의 파업소식에 “저 자식들 배불러서 그래”라며 습관적으로 짜증어린 반응을 내보이는 동기들 속에서 이따금 막막함을 느낀다.

확실히 새벽이면 헬스장에 가는 내 동기들과 어둠 속에서 발이라도 헛디딜까 전전긍긍하며 냉동반죽들을 짊어지고 역사 계단을 오르락거리는 형님들의 삶은 다르다. 꼬박꼬박 아침밥이 식탁에 차려진 이들이 느끼는 새벽의 허기가 고속도로 위에서 반품된 상한 빵으로 아침을 때우는 이들의 배고픔과는 다른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새벽’이라는 말에서 희망과 상쾌함을 연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새벽이면 예전의 곰팡이 핀 빵들의 악취와 함께 일하던 형님들의 퀴퀴한 땀냄새가 기억난다. 그래서 내게 새벽은 희망이 아닌 처연함으로 다가온다.

한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실은 다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는다. 인식의 차이를 넘어 삶의 대척점에 마주선 이들 사이에서 새벽공기는 내게 아득한 공허함만을 던진다.

또다른 수험생의 글입니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0년 2월28일. 무서운 새벽이었다.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그들이 나를 잡으러온 사람들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 근처에 있던 철거촌. 우리는 그곳의 아이들과 놀아 주었고 밤에 잠을 같이 잤다.

대학생들이 같이 있으면 함부로 철거를 못 한다는 주민들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대학교 1학년으로서의 마지막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서운 새벽이었다.

대학교 1학년이 무얼 알겠는가? 영문도 모른 채 잡혀와서 내가 아는 것을 몽땅 뱉어내고는 다시 유치장에 왔다. 히죽히죽 웃는 녀석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너도 다 불고 왔느냐고 묻는다. 이심전심, 염화미소. 나란히 누워 손을 꼭 잡고 이 차가운 등의 감촉을 잊지 말자고 약속했다. 배는 고프고 등은 차갑고 마음은 불안한 새벽이었지만 꼭 움켜쥔 친구의 손 때문에 따뜻한 새벽이었다.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였다.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나도 변했지만 한결같이 살던 친구였다. 여느 때처럼 새벽녘까지 이어진 술자리였지만 여느 때보다 고성이 많이 오고간 술자리였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해 온갖 말들이 오고가던 그때. 그 친구는 다시 내 손을 잡으며 외롭다고 했다. 여전히 좋은 친구들이지만 조금씩 함께 하는 것들이 줄어드는 관계. 여전했던 그 친구는 조금은 변한 우리를 원망하는 대신 외롭다고 했다. 해장국은 줄고 술병은 늘어가던 씁쓸한 새벽이었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 소리에 잠이 깬 어느 새벽이었다. 짜증과 함께 확인한 휴대폰에는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그 친구였다. 황새울의 누런 들판이 새까맣게 변했다며 얼른 와 달라고 했다. 끝까지 평택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미 잠은 달아났고 나는 미안하다고 힘내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픈 새벽이었다.

그날 그 친구는 다시 경찰서 신세를 졌고, 우리는 오랜만에 광화문에 갔다. 그 친구를 기다리며 지샜던 그 날은 미안한 새벽이었다. 평택의 새벽도 함께하지 못하면서 무슨 기자를 하겠다는 거냐며,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새벽이었다.

그러던 중 한겨레신문에서 ‘담론이 사라진 시대’라는 칼럼을 읽었다. 그리고 뭔가 울컥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짭쪼름함을 느끼며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새벽을 떠올렸다. 새벽은 어둠이 극에 달한 때이다. 곧 밝은 태양이 솟을 듯 하지만 지금 주위는 어둡기만 하다. 그 새벽을 여는 등불 중 하나이고 싶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이제는 나도 그 친구 곁에 서야겠다. 세상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의 모순에 순응하지 않는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약속을 했다. 담론이 사라진 시대. 소통과 연대의 새벽을 여는 작은 촛불 중 하나이리라 마음먹으며 눈을 뜬 10월28일 새벽은 희망찬 새벽이었다.

이 두 글은 자신의 삶을 적은 글입니다만, 신변잡기라 할 순 없습니다. 이 글에는 시대의 삶과 고민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글 자체로만 보자면, 첫번째 글이 훨씬 더 잘 쓴 글입니다. 두번째 글은 기어가 좀 덜 풀린 자동차처럼 군데군데 덜커덕덜커덕 거리는 대목이 있다면, 첫번째 글은 일필휘지로 죽 써내려간 듯 보입니다. 삶에 대한 고민도 환경 탓인진 몰라도 첫번째 수험생이 좀더 치열했던 듯 하구요.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채점위원들 사이에선 두번째 수험생이 더 마음에 끌렸습니다. 예리한 맛은 첫번째 수험생에 비해 조금 덜하지만,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약자에 대한 관심을 그저 입에 발린 소리로가 아니라 삶 자체로 보여주고 있고, 청년의 순결함 등도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아직 ‘흰 도화지’처럼 보여져 기자가 되면, 특히 한겨레신문 기자가 되면 특유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좋은 기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첫번째 수험생은 날카롭습니다. 아마 지금 두 수험생을 맞붙여놓고 토론을 벌인다면, 첫번째 수험생이 쉽게 이길 듯 보입니다. 다만 그 지나친 ‘날카로움’이 조금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또 ‘세상에 대한 분노’가 글에 어려있는 것도 또다른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채점위원들간의 토론 결과, ‘글 이외의 이면에 대한 채점까진 무리하게 하지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글만으로 섣부른 ‘예단’을 잘못 내릴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들간에 의견이 엇갈린 또 하나의 글을 더 볼까요? 사진기자직에 응모한 수험생입니다.

김씨는 편집장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전까지는 편집장한테 전화가 올까봐 초조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아마 그냥 컴퓨터 앞에서 노닥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안으로 꼭 보내겠습니다” 마감시간은 3일 전이었다. 몇 개월 뒤에 원고료를 받을 지 그게 얼마나 될 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김씨는 늘 초라하고 편집장은 늘 당당하다. 공짜로 나눠주는 생활잡지, 그런 것에 목메지 않는다는 김씨이지만 본의 아니게 어느덧 남들은 그를 글쟁이라고 부른다. 고학력 백수보다는 낫지만 바라던 바는 아니다. 그의 인생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누구도 유심히 보지않을 재활용 쓰레기가 된 것이지만 자기 이름이 나올 글을 박사 체면에 대충 쓸 수가 없다.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네이버사전을 뒤져본다.

‘아나운서 강수정씨 두꺼운 다리 부끄러워...’ 정말 안 궁금한데 매일같이 보고 있다. 공짜사전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MC몽 성기노출 악몽딛고...’ 엇! 그런 일이...? 역시나... 그럴 줄은 알지만 늘상 포털사이트의 먹이감이다. 1시. 드디어 맘에 없는 글질을 시작하신다. 발행인과 친분이 두터우시다는 재력가의 사설박물관을 소개하는 글이다. 어느 시골 촌락에서 도난당했음이 뻔해 보이는 민속품들, 취향이 참으로 소박하시기 그지 없다. 쓰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리겠지만 늘 3일은 고민을 한다. 좋게좋게 그리고 끝에다 입장료가 비싼 게 흠이라는 나름대로 과감하신 지적을 잊지 않는다. 편집장이 잘라낼 것이지만,야간버스가 끊기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선배 작업실 밖으로 나오니 역시나 술안주를 게워내는 철부지들이 입구에 죽치고 있고, 신호등 앞에서는 노려보고 싸우는 남녀. ‘헤어져라, 헤어져... 두 블럭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왔다. 만오천원이면 미터요금이 가능하지만 30대 중반이 되도록 얹혀사는 김씨는 좌석을 두번 갈아타는 것보다 부담스럽다. 아무도 없는 길에 혼자 있으니 택시들이 계속 한 대씩 서서 노려보다 가버린다. 떼지어 사냥하는 포식동물처럼. 그럴 때면 죽은 척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들을 피해 서성거릴 자유도 없다.

모두 잠든 집에서 소리를 끌고 TV를 튼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 아가씨들이 레이스가 특별하신 속옷을 입고 무대를 활보한다. 소피 마르소의 육체의 문, 베터댄 섹스... 일 끝내고 돌아온 이 시간 마땅한 교양프로가 없다며 김씨는 홈쇼핑과 영화채널 사이를 방황한다.

그리고 그는 내일 다시 이시대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드는 포털사이트의 폐해를 따지기 위해 백과사전 페이지를 열고 본의 아니게 패리스 힐튼이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셨는 지 들어보고 남들이 다 잘 때가 되어서야 보람찬 하루를마감하는 찌뿌둥함을 느끼며 밤거리를 배회하는 철없는 아이들을 속으로만 나무랄 것이다.

마치 인터넷 글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글솜씨는 인정합니다만, 메시지가 약하고, 신경질적인 글쓰기를 한 게 흠입니다.

<창의력이 돋보인 글>

채점위원들 모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수험생의 글을 봅시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상념

한명숙 총리의 애도사가 시작되었다. 지긋이 눈을 감으니 옛 일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새벽이라, 인연치고는 기묘하구만’ 최규하 전 대통령이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고 하자 든 생각이다. ‘그가 본인에게 대통령을 물러나겠다고 한 것도 새벽이었지’

최규하가 하야하겠다고 하자 전두환은 청와대로 부하들을 보냈다. 당시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수거하려 했지만, 메모나 녹음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당시로는 최고의 요원인 보안사 부하들이라 믿음은 가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일처리가 꼼꼼하고 메모 남기기로 유명한 최규하가 아무 기록도 안 남길 리 없었다. 하지만 머리 속을 지울 수도 없고 그도 우리의 힘을 아니 그냥 두었던 기억이 난다.

“탕, 탕, 탕” 조포가 시끄럽다. 눈을 떴다. ‘기록이 밝혀진들 어떠하리’, ‘그 새벽 대통령을 물러난 것은 최규하였고, 나는 대통령이 되었어. 그리고 그제 새벽 그는 죽었고,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 최경침(최규하의 손자)의 독백

그도 저기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전두환은 눈을 감고 잇었다. 분노가 솟구치지만 참아야 한다. ‘새벽’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싫었었다. 무책임한 모습에 고집까지, 내 닮은 얼굴까지 혐오스러웠다. ‘대통령 재직 중에 일어난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며 사학과에 진학했다. 나는 역사에 진실하고 싶었다. 학생운동을 하며 집에서 ‘왕따’도 되었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며칠 전 할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메모를 주며 그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예전 그를 내려오게 한 사람들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고, 국가기록 보존체계도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새벽마다 과거의 기억에 아파하셨다. 새벽에 전두환에게 전화해야만 했던 숙명은 감당하기엔 너무나 컸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날 새벽에도 무척 아파하셨다.

나는 비망록의 제목을 ‘새벽’이라 정했다. 할아버지는 외교부장관과 총리로서 ‘박정희의 핵개발’, ‘신군부와 미국의 관계’ 등에 소상히 알고 기록해 놓았다. 의미보다는 역사는 기록되고 기억되어야만 한다. 나는 이제야 온 집안이 반대하던 사학과 진학을 할아버지만 말이 없으셨던 게 이해가 갔다. 역사는 미래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내 ‘새벽’은 이제 세상을 깨우고 모든 것을 드러내는 밝은 아침을 불러올 것이라 믿는다.

신선했습니다. 비슷비슷한 글들을 계속 읽어나가다, 단편영화 한토막 같은 이 글을 접하는 순간 갑자기 박하사탕을 입에 문듯 ‘화~’한 느낌이 왔습니다. 색다른 접근도 좋았지만, 짧은 글이지만 꽉 짜여진 완결성을 띄고 있는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수험생은 PD 지망생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막판에는 “창의력은 인정할만 하나, 색다른 형식을 제외하면 내용은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짧은 1시간동안 이런 글을 과감하게 쓸 수 있는 그 ‘자신감’과 ‘역시 남다른 창의성’을 좋게 평가했습니다.

다음 글은 또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깬 사람은 외롭다. 과음한 다음날 술기운으로 잠을 다 자지 못하고 깨어버린 새벽은 당혹스럽다. 숙취로 아픈 머리를 움켜쥐고 창문을 열었을 때, 미동도 없는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 시간도 외롭다. 안개로 축축한 집앞 골목엔 인적도 없이 노란 외등만 밤새 제 몸을 사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새벽은 아름답다. 그것은 끝과 시작의 연결고리이며 경계선을 지우는 지우개이다. 햇빛이 없어도 어렴풋이 사물을 식별할 수 있게 밝고 환하다. 그러나 똑똑히 알아볼 수 있는 시계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과음을 한 간밤의 끝이면서도 숙취에 머리가 아픈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이 모호함은 낯익음과 낯설음, 절망과 희망 등의 상반된 말들로 범벅이 되어 아름답다.

새벽이 외로운 것은, 불행히도 혼자 깨어 이 아름다움을 함께할 동반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의 끝과 오늘의 시작을 함께 말할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농민반란이든 군사 쿠데타이든 무엇이든 벌어질 수 있는 이 불온한 시간에 혼자라는 사실은 외롭고, 외로워서 두렵다. 그래서 홀로 깬 자는 불행하다.

초나라의 삼려대부 굴원이 조정의 모함을 받고 낙향했을 때, 어부가 낙향한 이유를 물었다. 굴원은 “세상이 다 취했으나 나만 깨어 그렇다”고 대답한다. 굴원에게는 물리적인 시간이 낮이든 밤이든 이 세상은 항상 새벽이었을거다. 너무도 외로웠던 그는 결국 돌을 지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

당나라 시인인 맹호연은 봄잠에 새벽을 몰랐던 자신을 한탄했다. 새벽을 놓친 아침에 그는 밤새 비바람에 꽃이 많이 져버렸을 것임을 안타까워한다. 모르긴 해도 굴원에게 맹호연 같은 친구가 있었더라면 강물에 빠져 자결하진 않았으리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복잡하고 요란한 이 시대에서는 새벽이 나날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새벽이야 예전과 별 다를 바 없지만 모든 세상살이가 모호하여 종잡을 수 없는 게 딱 새벽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에 취해 있을 동안 날은 가고오고 다시 흘러간다.

이런 시대에 새벽에 깨어 혼자라는 사실은 역시나 외롭고 두렵다. 필시 굴원처럼 홀로 깬 자가 또 있을 터인데 찾기 힘들다. 그래도 날이 밝기 전에 숙취로 아픈 머리를 이고 나간다. 혹 나처럼 새벽이 외로워 밖에 나온 사람이 있다면 수인사라도 할 작정이다.

이 글은 메시지는 좀 약하고 추상적입니다. 하지만 상당한 독서량이 엿보이고, 또 ‘새벽’이라는 주제에 맞추려 애쓴 흔적도 느껴집니다. 아마 또다른 주제였다면, 이 수험생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래 글을 마지막으로 수험생들의 글 엿보기를 마치도록 합시다.

아래 수험생은 ‘새벽’을 ‘새 벽’(New Wall)으로 바꾸어 쓴 어느 수험생의 글입니다.

- 새 벽의 기억-

벽은 흔히 장애물이나 한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벽이 때로는 얼마나 눈물겹고 고마운 존재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안다. 길어야 2년, 혹은 더 짧은 기간마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이사를 다녀야 하는 이 시대 집없는 이들은 모두 안다. 4개의 벽으로 둘러쌓여 있을 뿐인 집의 절실함을...

어린 시절부터 나는 지독하게 많은 이사를 다녔다. 끊임없이 바뀌는 주소지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범접하기 힘든 남의 집 벽들이었다. 수많은 이사 속에서 마주보는 새 벽들. 나는 그곳에 아무런 추억도 심지 못했다. 친구들의 집에 갈 때면 벽들에 나란히 걸린 상장, 그림 혹은 옛날 사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새 집에 들어가 만난 벽들은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새 벽으로 남았다. 그 벽들에 내가 무언가를 심기에는 머무를 시간이 짧다는 것을 나도, 부모님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것만 걸고, 남의 집 벽에 괜히 흠집내지 마라”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언젠가 글짓기에서 타온 커다란 상장을 마루에 못 걸었던 것은 끝내 아쉬워하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우리의 집도 있다. 그러나 다 큰 자식들은 또 따로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 대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 붙이기 힘든 새 벽들을 지나가며 살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그저 단촐히 4개의 벽만으로 이루어진 집은 그저 먼 꿈이다.

매일같이 주변에는 새로운 벽들이 올려진다. 그리고 어느새 보면 높이 솟은 집들이 즐비하다.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은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집없이 그래서 마음 붙일 벽 없이 떠돌고 있다. 자고나면 수억이 집값 위에 얹혀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방랑이 곧 끝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민의 신음이 깊어지자 늦었지만 곳곳에서 원가공개, 후분양제와 같은 해결책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느닷없는 신도시 건설 계획으로 국민을 새벽에 뛰쳐나가게 만드는 관료도 여전히 존재한다.

집은 기호품이나 사치품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집은 아직 투기꾼들의 멋진 사냥감이다. 이런 뒤틀린 현실을 보면서 나는 나 역시 끝까지 낯선 새 벽들 사이를 전전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동시에 벽들을 둘러싼 이 기괴한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은 강한 욕망도 끓어 오른다. 내 아이들은, 아니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낯선 새 벽을 떠돌지 않고, 추억을 심을 곳을 가지는 세상을 나는 꿈꾼다. 집이 절실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될 때, 새 벽은 낯선 것이 아니라 신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취재·편집 지망생 60명의 글 중 14편을 소개했습니다. 60명 중 14명이 2차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4명이 선발됩니다. 대부분의 개별시험에서 4등 안에 들어야 합격이 보장됩니다. 여기에 소개한 글들 외에도 채점위원들로부터 잘 썼다는 평가를 받은 글이 2개 정도 더 있습니다. 윗글 중 잘 썼다고 판단되는 글 4개를 뽑아 보십시오. 그리고 최소한 그보다 더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작문을 잘 쓰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서 ‘어떻게 쓴 글이 좋은 글인지’ 절로 알게 되셨을 듯 합니다.

1. 남의 글이 아닌 자기 글 쓰기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우선 가장 지양해야 할 것은 미리 준비한 글을 억지로 주제에 끼워맞추는 건 피해야 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생각은 없이 남의 생각과 글만 편집해서 내놓는 듯한 글은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 이렇게 쓴 글은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중간 정도 점수를 받으면, 결코 시험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합격하기 위해선 ‘자기 글’을 써야 합니다.

2. 자기 글과 신변잡기는 다르다

자기 글을 쓴다고 해서 시험준비하는 이야기, 자기 가족 이야기 등 일기에나 쓸 사항들을 적으면 아무리 미사여구와 미문으로 가득찼다 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긴 힘듭니다. 물론 자신의 체험은 글에 강한 힘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그 체험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소재’, 글의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글의 ‘모든 것’이 되고, 그나마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 자신의 경험담 소개에 그친다면, 신문사 입사 작문시험 뿐 아니라 다른 시험에서도 그리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듭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면, 그 자신의 이야기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 또는 ‘많은 사람’의 공통된 문제로 확대시킬 수 있는 사안이어야 합니다.

3. 책을 많이 읽고, 직전에 훑어보기

시험준비를 하면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더욱이 수험관련 서적이 아닌, 고전 등을 읽는다는 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막상 기자가 되고 나면, 사고의 밑바탕이 되는 독서량이 사안을 판단하거나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더욱이 기자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기자생활을 시작하면, 책 읽는 게 일인 문화부 등 몇몇 부서를 제외하고 나면, 책 읽는 시간을 매일 확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도 기자가 되기 전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시험 직전에 대비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논문의 경우, 예상문제를 뽑아 미리 준비해 보는 것이 매우 유효합니다. 그러나 작문의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채점을 하면서 ‘꽤 많은 수의 수험생들이 작문 예상문제를 뽑아 연습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제가 예상문제와 다르다면, 주어진 주제에 맞게 써야하는데, 무리하게 자신이 준비했던 것에 맞춰 쓴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또 그렇다 하더라도, 작문에서 보고자 하는 건 개인적인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 △세계관 △사고의 깊이(독서량과 관련 깊음) 등인데, 자신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빌어 잔뜩 써놓으면 제대로 점수를 주기가 어렵게 됩니다.

차리리 작문 시험 2~3일 전에는 그동안 자신이 읽어온 책들을 발췌독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하거나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그으면서 독서를 하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발췌독은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밑줄 그은 부분만을 빠르게 훑어가며 다시 읽어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머리 속에 ‘이런 주제가 나오면 이 부분을 인용하면 괜찮겠다’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시간이 좀더 있다면, 작문시험 답안지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이런 내용들을 적당히 분류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군요. 또 자신의 지난 삶이나 체험들을 돌아보면서, 그 체험들이 공적인 메시지를 주거나, 연관지을 수 있는 부분도 끌어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논문은 어떻게?>

논문 채점위원은 아니었으나, 사진기자 지원자의 논문 답안에 대해서만 작문 채점위원들이 채점했습니다. 올해 논문 주제는 ‘코시안의 이름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답안은 예상대로입니다. 다문화를 인정하고, 인종편견을 극복하자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

논문은 작문과 달리, 답안이 매우 비슷비슷합니다. 사진기자 지원자들의 논문 가운데, 일부 답안지의 첫 문장만 가려 뽑아 봤습니다.

(수험생 1)

“국적따윈 개에게나 줘버려라!“ 일생을 ‘단일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조국수호’의 열띤 가슴을 품고 살아온 한국 국민들에게 재일교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GO’라는 소설에서 충격적인 일갈을 내뱉는 구절이다.

(수험생 2)

백인 아이가 흑인 여성의 젖을 물고 있다. 몇년 전 발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베네통사의 인쇄광고다.

(수험생 3)

유전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은 줄곧 우리 국민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인식체계로서 큰 힘을 발휘해 왔다.

(수험생 4)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사회로의 국제 이민자들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예상하셨겠지만, 1~2번이 3~4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첫 문장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후 이야기를 풀어놓는 과정은 어떠할 진 굳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실 듯 합니다.

<에필로그>

채점을 하면서, 채점위원들끼리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펜과 종이만 준 채, ‘새벽’이란 주제어를 툭 던지고 1시간 안에 글을 쓰라고 한다면, 여기 이 글들보다 얼마나 더 잘 쓸 지 자신이 없다”고 말입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이 글을 띄우기 전에 ‘새벽’이란 주제어를 갖고 수험생들처럼 1시간 안에 작문을 해 일종의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객기’를 부릴 뻔도 했습니다.

언론사 시험, 특히 논·작문 시험이란 건 결국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얼마나 쏟아붓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위에 언급한 것은 채점위원으로서 느낀 최소한의 스킬일 뿐입니다.

올해 시험을 통과해 새 <한겨레> 식구가 된 이들에겐 축하를, 아깝게 탈락한 이들에겐 위로를 전합니다.

<한겨레> 작문시험 평가위원 ho@hani.co.kr

[이글루의 모 블로거께서 퍼놓으신 글을 불펌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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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노리스가 누군지 모른다면 낭패:b






작년 말경부터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척 노리스 놀이라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이소룡이나 성룡이 위대한 무술인으로 추앙받아도 척 노리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왠지 피식하고 웃음이 먼저 나오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는 나름대로 잘 나갔지만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나 "델타 포스" 등으로 기억되는 80년대 액션 스타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척 노리스. 그러나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그에 대한 "사실"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그가 다시 뜨고 있다. 다음의 발췌문은 그 수많은 진실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실: 척 노리스의 눈물은 암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척 노리스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사실: 척 노리스는 잠을 자지 않는다. 오직 기다릴 뿐.

사실: 척 노리스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사냥"이란 단어가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하므로. 척 노리스에겐 오직 "살상"만이 있을 뿐.

사실: 척 노리스는 무한대까지 세어 보았다. 그것도 두 번.

사실: 척 노리스는 그의 수려한 용모와 빼어난 무술 실력을 손에 넣기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악마와의 거래가 성사되자마자 척 노리스는 악마의 면상에 돌려차기를 날린 후 자신의 영혼을 되찾았다. 악마는 현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깨닫고 화를 풀고 미소를 지으며 그 정도는 자신도 예상할 수 있었어야 했음을 인정했다. 그 사건 이후로 척 노리스와 악마는 매달 수요일 저녁이면 함께 포커를 친다.

사실: 유령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 밑에 척 노리스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사실: 당신이 척 노리스를 볼 수 있다면 척 노리스도 당신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척 노리스를 볼 수 없다면 당신은 수 초 내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사실: 척 노리스의 주요 수출품은 고통이다.

사실: 척 노리스는 세금 신고를 할 때에 빈 서류에다가 공격 자세로 몸을 숙이고 있는 자신의 사진 한 장만을 첨부하여 보낸다. 척 노리스는 단 한 번도 세금을 낸 적이 없다.

사실: 한 번은 공룡들이 척 노리스를 째려본 적이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실: 척 노리스는 잠자리에 들 때 불을 켜 놓는다. 척 노리스가 어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둠이 척 노리스를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척 노리스는 케네디 암살사건을 저지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과거로 간 적이 있었다. 오스왈드가 총을 쏘자 척 노리스는 자신의 턱수염으로 세 방의 탄알을 모두 튕겨내었다. 케네디는 이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고는 놀라서 죽었다.

사실: 척 노리스는 이미 화성에 다녀왔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한 맹인이 실수로 척 노리스의 발을 밟았다. 척 노리스가 "내가 누군지나 아시오? 내가 바로 척 노리스요!"라고 말하자, 척 노리스라는 그 이름만 듣고도 장님이 눈을 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가 자신의 두 눈으로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유일한 장면은 필살의 돌려차기를 날리는 척 노리스의 모습이었다.

사실: 언젠가 어떤 한 사람이 척 노리스에게 돌려차기는 그다지 효율적인 발차기 기술이 아니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인간 역사상 최대의 실수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척 노리스는 10년 전에 이미 죽었다. 저승사자가 쫄아서 여태 그 소식을 전하지 못했을 뿐.

사실: 척 노리스는 책을 읽지 않는다.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때까지 노려볼 뿐.

사실: 척 노리스가 미소를 한 번 지으면 죽어가던 사람도 되살아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척 노리스는 오직 누군가를 죽인 후에만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다.

사실: 척 노리스는 수시로 적십자에 헌혈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피는 한 번도 헌혈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척 노리스는 엄마의 배에서 나올 때 의사 선생의 면상에 돌려차기를 날려 주기 위해 얼굴보다 발이 먼저 나왔다. 척 노리스의 분만은 척 노리스만이 할 수 있다.

사실: 척 노리스에게 선물을 안 주기 전까지만 해도 산타 클로스는 진짜였다.

사실: 척 노리스가 버거킹에서 빅맥을 주문하면 빅맥이 나온다.

사실: 척 노리스는 MC 해머를 만질 수 있다. (MC 해머의 히트곡 "You can"t touch this"를 패러디한 말)

사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척 노리스는 당신에게 "어제" 돌려차기를 날리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척 노리스는 스트리트 파이터 II 비디오 게임에 원래 포함되어 있었으나 베타 테스터들이 제거하였다. 어떤 버튼을 누르든지간에 무조건 돌려차기밖에 안 했기 때문이다. 훗날 척 노리스에게 이 "버그"가 왜 생긴 것이냐고 묻자 척 노리스는 "그건 버그가 아니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 표시는 사실 그것이 장애인을 위한 주자공간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공간이 척 노리스의 자리이며 만약 그 자리에 주차를 하는 사람은 곧 장애인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경고 표지일 뿐이다.

사실: 남의 잔디밭은 언제나 더 푸르러 보인다.(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의미의 영미 속담). 그러나 척 노리스가 다녀간 잔디밭이라면 이야기가 틀리다. 척 노리스가 다녀간 잔디밭은 피와 눈물에 젖어서 시뻘겋다.

사실: 한 번은 회색곰이 척 노리스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척 노리스가 자신의 주먹을 곰에게 보여주자 곰은 이내 곧 자기 자신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현명한 곰은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했다.

사실: 산소는 생명 유지를 위해 척 노리스를 필요로 한다.

사실: 척 노리스가 자신이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운 좋은 놈"이다.

사실: 척 노리스는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 쉬워서 숟가락을 발명했다.

사실: 척 노리스에게 시간을 물어 보면 척 노리스는 언제나 "2초 전"이라고 대답한다. 이 때 당신이 "무슨 2초 전이냐?"고 되물으면 바로 그 때 척 노리스는 당신의 면상에 회심의 돌려차기를 날린다.

사실: 척 노리스는 네 번째 동방박사였다. 척 노리스는 아기 예수에게 "턱수염"을 선물하였으며 예수는 죽을 때까지 이 수염을 착용하였다. 다른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의 선물이 무시당한 것에 질투심이 일어나 척 노리스를 성경에서 삭제하였다. 얼마 후 세 명의 동방박사들의 죽은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그 사인은 돌려차기로 추정된다.

사실: 45~65세의 여성들에게 있어 사망 원인 1위는 심장 질환이지만 0~125세의 남성들에게 있어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여전히 척 노리스다.

사실: 척 노리스는 자신의 동상과 눈싸움을 해서 이겼다.

사실: 드라마 텍사스 레인저를 찍을 때마다 척 노리스는 치사량의 5배에 해당하는 코끼리 마취제를 맞는다. 이것은 그의 근력과 순발력을 마비시켜 동료 배우들의 사망률을 낮추어 보고자 함이다.

사실: 척 노리스는 팔굽혀펴기를 할 때 자신을 밀어 올리지 않는다. 지구를 밀어내릴 뿐.

사실: 일식은 척 노리스가 태양과 눈싸움을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척 노리스는 절대로 눈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사실 : 척 노리스는 돋보기로 개미를 죽일 수 있다. 밤에.

사실 : 척 노리스가 중학생일때 선생님이 "용기"에 대해서 작문을 해오라고 시켰다. 척 노리스는 백지에 자기 이름만 적어서 냈다. 다음날 척 노리스는 A+를 받았다.


(snu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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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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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20. 05:50

미국의 정치학자인 맥키버는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 즉, 민주주의체제와 전체주의적 독재체제와 같은 비민주주의체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판별 기준의 첫 번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정부의 시책에 대해서 자유롭게 또는 전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그 이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포함한 이른바‘표현의 자유’의 유무에 해당하는 질문인데,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면 그 나라는 일단 민주주의체제의 자격이 있지만,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아무리 자기네 체제가 민주주의체제라고 ‘우기더라도’ 그러한 체제는 ‘실질적으로’ 비민주주의적 독재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보면, 북한은 정식 국호가 아무리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더라도 비민주주의체제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일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명했다가는 그 표명 이전과 다름이 없이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아오지 탄광행’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나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군사깡패강도살인 독재정부 시절에 공공연하게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가는, ‘남산’이나 ‘남영동’ 혹은 ‘서빙고 호텔’에 끌려가서 ‘전기치료’나 ‘물치료’ 혹은 ‘몽둥이치료’를 혹독하게 받는 수가 허다하게 있었고 어떤 사람은 '증발'까지 해서 지금도 깜깜 무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은 우리나라의 정치 체제를 아무리‘민주주의’체제라고 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비민주주의적 독재체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맥키버가 제시한 나머지 네 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부의 시책에 반대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조직을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집회와 결사의 자유 유무)

“집권당에 대해서 자유롭게 반대 투표를 할 수 있는가?”(투표의 자유 유무)

“만일 집권당을 반대하는 투표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 투표로써 정부를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을까?”(정권의 평화적 교체가 이룩될 수 있는 가의 여부)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를 결정짓는 선거가 일정 기간 동안 또는 일정 조건 밑에서 실시될 수 있는 입헌적인 조치가 되어 있는가? (민주적인 선거 절차가 확립되어 있는가의 여부)

맥키버가 제시한 이러한 다섯 가지 판별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하나라도 ‘아니오(No!)’라고 하면 그 나라는 참다운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놓고 보면, 이 다섯 가지 기준 중에서 ‘아니오’에 가장 가까운 것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두 번째 기준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 아래에서는 ‘공산당’과 같은 정당 조직은 불법으로 되어있어서 자유롭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맥키버가 제시한 민주주의체제의 ‘판별 기준’에 비추어보면,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체제에 속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그 비율이 절반 아니 그 절반의 절반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조금씩이라도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는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를 놓고 볼 때, 지금처럼 표현의 자유가 많이 보장된 적은 없었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시책에 대해서 공공연히 반대 의사를 표현하더라도 과거의‘박전노’군사깡패강도살인 독재정권 시절처럼 어디로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거나, 옛 왕조 시대처럼 ‘네 죄를 알렸다!’하면서 주리를 틀리는 경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정부의 시책(정책)에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다가’ 방패에 찍히거나 곤봉에 얻어터지는 경우는 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에 끌려가서 ‘모진 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는 모두 사라졌고 그래서 단군 할아버지가 개국한 이래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개나 소’도 최대로 누리고 있음은 거의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의 시책에 대해 왈가왈부 하면서 왕창 누리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이상하게도 어떤 대상을 향할 때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쉽사리 살펴볼 수 있다. 즉, 어떤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그 표현의 자유를 유보하거나 아예 회피하면서 포기하기조차 하는 것이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유보하거나 회피하면서 포기조차 하게 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개는 자기의 ‘밥줄’과 직결된 상황에 직면했을 때인 것 같다.

밥줄과 직결된 상황에서 공공연하게 반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찬성하는 등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다가는 밥줄이 끊겨 자기 가족을 굶기는 수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지켜 보아왔기 때문이다.

민주국가 체제에서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혹은 누려야할 사람들은  말과 글로써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예를 들면 언론인들과 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수들과 학자들 그리고 문필인들일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르는 책임도 당연히 져야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국민의 대표 노릇을 하는 국회의원도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 못지않게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에게는 자신이 한 특별한 발언에 대해서는 아예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하는 면책특권까지 부여되어 있을 정도로 막강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어떤 경우에는 거의 무한정하게 무책임하다시피 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런 자유를 포기하거나 공공연하게 회피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조선일보의 기자들을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때나 노동자들이 노동파업을 벌이는 경우에는, 없는 사실도 만들면서까지 혹은 교묘하게 왜곡하면서 무책임할 정도로 신나게 글을 쓰면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허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삼성전자와 같은 재벌 회사 또는 이에 버금가는 경제적 강자나 미국이나 주한미군과 관련된 사건을 접하게 될 경우에는 그들은 갑자기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거나 아예 회피까지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아니 자주 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조선일보 기자가 ‘지꼴리는대로’ 표현의 자유에 입각한(?) 기사를 쓰는 이유는 삼성 재벌이나 미국은 자기네와 이해(利害)관계를 같이 하는 부류이기(부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노무현 정부나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졸라게’ 까대면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더라도 자기들에게는 큰 손해가 아니 거의 손해가 없으리라는 계산 아래서 기사를 쓰고 논평도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더라도 커다란 무리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과거 행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깡패강도살인 독재정권 아래서는 조선일보가‘할 말을 하는 신문’이기는커녕 ‘알아서 설설 기는 신문’ 혹은 ‘아부와 아첨의 첨단을 달리는 신문’이라는 것은 그 당시 신문 기사나 사설 혹은 논단 등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시대에도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던(!)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그렇게 ‘박전노’ 정권에 알아서 설설 기었던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일제시대 때도 조선일보(사주와 어용기자들)가 반민족적인 행위를 했던 것도 이득 때문에 그런 행위를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대학 교수나 문필인들과 국회의원들도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부류 중에 하나인데, 이들도 자기와 직접 이해(利害) 관계에 부딪히는 일이 생기면 갑자기 표현의 자유를 회피하거나 포기까지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살펴볼 수 있다. (아래 부록으로 실은 이명원 교수의 글 참조)

우리의 ‘자랑스런’대~한민국은 명색이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표현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지만, 누구나 ‘동등하게’ 그러한 자유를 실제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돈과 권력 등을 움켜쥐고 있는 이른바 힘깨나 있는 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면서 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거나 회피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단체 혹은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침묵은 금’ 혹은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인생철학’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공공연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강자’에게 감히 ‘아니오!’라고 하거나 그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등‘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밥줄’을 놓아야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조용히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눈치껏 생활하는 것이 살아남는 상책이요 처세술이 되었던 것이다.

약자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공간은 회사나 직장과 같은 공적 공간이 아니라 술집골방과 같은 사적 공간일 뿐이다. 그런 공간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면서 직장 상사와 같은 최종의사결정권자에 대해 마음 놓고 씹거나 그들에 대한 불만을 자유롭게 표현 하더라도, 누가 꼬나 바치지 않는 한, 약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올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내 인생 경험상, ‘정의감이나 이타심’이 넘치는 사람이거나 타고난(?) 성격이나 성질이 ‘더러운 혹은 급한’사람이거나 아니면 ‘무식하지만 용감한(?)’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다.

다행히 이러한 사람들을 묵인해주거나 내버려두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는(?)‘강자’들을 만나면 밥줄을 보존하면서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않은 ‘못된’ 인간을 만나면 다른 길로 인생의 방향을 틀거나 남들처럼 ‘침묵은 금’ 혹은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인생철학’을 지니고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든가 해야만 할 것이다. 아니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박터지게’ 그들과 싸워 그들을 굴복시키거나 해야만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면에 있어서는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 같다. 직장 초짜 시절부터 직장 상사들에게 따지고 덤벼들거나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과감하게 피력했더라도, ‘면도날 저자식은 성격이 으래 그려려니’ 하면서 그냥 내버려두었던 덕분에(?) 혹은 “그래도 면도날 쟤는 일은 그렁저렁 잘 하는 편이잖아요” 하면서 나를 끝까지 옹호해 주었던 직장 선배 한 분 덕분에, 시말서도 몇 장 썼고 조건부 사표도 강요당해서 쓴 적도 있었지만,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도 나름대로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놓고 볼 때는 직장과 사람 운이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어느덧 직장에서 대략‘고참급’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표현의 자유를 회피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앞으로도 내가 직장을 그만 둘 때까지도 최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물론 내가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면서, 살게 될 것이다.

'고참'으로서의‘혜택’을 누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름대로 좌절도 맛보았지만, 이러한 혜택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도 나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형편이 여의치 못하거나 약자인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혹은 대변하면서 - 나도 많은 시간 동안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서 분하고 억울하게 지낸 적이 있음을 생각해서라도 - 나머지 인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바이다.

(덧글)
이 글의 제목은 아래 이명원 교수의 글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명원 교수의 글을 부록으로 함께 올린다.

(부록)

표현의 자유, 표현의 회피

자유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내 가슴은 고동친다. 부자유가 가져다 줄 비만보다 나는 자유를 찾음으로써 얻게 되는 강골의 마른 몸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 역시 좋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제의 가장 소중한 덕목이 표현의 자유 아닌가. 그러나 김수영이 어떤 시에서 쓴 것처럼 자유에는 얼마간 피 냄새가 섞여 있다.

그러나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를 진정으로 염려해주었던 분들이 자주 내게 들려주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웬만하면 눈 질끈 감고 살아라.” 이 말 속에는 오랜 세월 세속적 처세를 통해 근근이 눈치 보며 살 수밖에 없었던 생활인들의 통계학적 지혜(?)가 잘 담겨 있다.

그 지혜를 내 식으로 말하자면 ‘표현의 회피’ 정도가 되겠다. 나는 이 표현 회피 현상이야말로 생활인들의 가장 유력한 생존본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표현의 회피를 통해서 개인들의 삶은 더욱 옥죄어간다는 게 이 사회의 기이한 구조다.

가령 비리로 얼룩진 어느 분규사학에 ‘표현의 회피’를 추종하는 한 교수가 있다고 치자. 그 교수의 옆방에는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다른 교수가 있다고도 생각해 보자. 표현 회피를 추구하는 교수는 옆방의 교수가 머지않아 연구실을 비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생각은 대체로 합리적인데, 실제로 재단의 전횡과 비리를 고발하고 그것을 바로잡는 데 혼신의 열정을 다한 교수들은 지금 거리에 있거나, 법원에서 지루한 소송을 벌이고 있거나, 아니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고 또한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회피를 선택한 교수의 삶은 쾌적한가? 이 또한 합리적인 결과를 낳는데, 표현 회피가 자신을 재단의 꼭두각시로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동료교수를 찍어내는 재단과 대학본부의 구사대 역할로 이끄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다는 생활인의 안도감에 빠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이 표현의 회피를 추종하는 교수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표현 자유의 잔존세력을 박멸하고자 더욱 분주해질 것이다. 말 그대로 교수가 아닌 구사대가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분명히 인간다우며 아름다운 삶인지는 분명하다. 표현의 자유에 기꺼이 참여하는 자의 삶이 그러하다. 그러나 자유에는 제도가 보호해줄 수 없는 지극히 내면적인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표현 회피를 선택한 자가 쾌적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신은 인형처럼 타인의 입 모양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 움직임은 점점 동물 형상을 닮아가게 되고, 성정 또한 그렇게 변해 가는데, 그래서 얻게 되는 것이 밥통 속의 쌀 한줌일 것이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선택하는 편에 서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가 표현 회피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기꺼이 경멸받아 마땅할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히려 이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표현의 자유 쪽에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도와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 제도와 구조 역시 사람이 만든 것 아닌가. 회피보다는 자유의 욕망이 힘이 세다. 그렇게 믿고 싶다.

글쓴이 : 이명원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출처 : 한겨레 (2006년 7월 21자)

함께 읽어볼 글 : 김윤식 교수 표절 사건과 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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