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강사로서의 내가 가진 능력, 자존심,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목표... 이것저것 쌓이는 업무 속에서의 불만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잠깐 짬이 나서 블로그의 링크들을 훏어 들어가다 본 펌글... 처지가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째 감정이입이 쉽게 이루어지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불펌을(...혹시 문제가 된다고 여기신다면 알려주시면 비공개 처리하겠습니다.) 하게 되었습니다. 제 내면이 그대로 보인다고나 할까요...

  꺾어진 80대는 내일 모레... 은행 통장의 예금잔고가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직종에서 앞으로의 살 길을, 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살 길을 모색하지 못했을 때 조만간 맞이할 수 있는 불안한 처지를 인식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글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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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한국의 저축률 하락에 대한 외신의 우려

2009.8.4.화요일

지난주 목요일, 7월 30일자로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에는 "지갑을 열고 통장을 비우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인의 저축이 바닥났다는 우려를 표명한 기사가 실렸다. 우선 이 저축률 하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이야기한 부분부터 잠깐 보고, 시사점 분석 들어가자.


7월 30일자 워싱턴 포스트 1면

In the past decade, average savings per household have plunged from about $3,300 to $525. On a percentage basis, it is the steepest savings decline in the developed world. Meanwhile, household debt as a percentage of individual disposable income has risen to 140 percent, higher than in the United States (136 percent), according to the Bank of Korea.
지난 10년간 한국의 가계 평균 저축액은 3,300달러에서 525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백분율로 따지면 선진국 중에서 저축 감소세가 가장 가파르다. 반면 일인당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은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140%까지 증가하여 미국(136%)보다 높아졌다.
"The low savings rate is sapping our capacity to grow, and it is going to get worse…It will lead to credit delinquency. It will cause greater income disparity. It means less resources for our aging population."
"낮은 저축률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고, 앞으로 더 나빠질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신용불이행으로 이어지고, 소득 불균형이 더 심화됩니다. 인구는 노령화되는데 자원은 줄어드는 거죠."
..the fall-off-a-cliff character of what has happened with household savings in South Korea strikes many experts as abnormal and worrisome.
급전직하한 한국의 가계저축 하락폭과 속도는 전문가들도 비정상적이고 우려스러운 것으로 본다.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조선일보와 노컷뉴스 등에서 이 기사를 전했고, mbn, YTN, SBS 등 주요 방송사 뉴스에도 보도된 기사다.

걱정할 만한 의도적인 왜곡은 별로 없다. 글구 놀랍게도, 조선 찌라시가 버블 우려에 대해 제법 양심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얘네 가끔 이런 짓 한다. 엊그제 왜곡보도로 여기저기서 욕 먹더니 발뺌용 물타기 하나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믄 되겠다.

"대한민국은 돈 쓰는 중" (조선일보 1면 헤드라인)
"WP, 한국의 '경쟁적 과소비' 행태 지적" (노컷 뉴스)
"사교육비, 과시성 소비가 韓 저축률 하락 요인" (연합뉴스)

그러나 나는 한국판 기사의 헤드라인들을 보면서 내심 찜찜했다. 헤드라인, 중요하다. 신문 편집에서, 헤드라인은 기사를 읽어 가는 독자의 마음자세를 결정한다. (그나마 본문을 읽는 독자라면 말이다. 헤드라인만 보는 이도 많다.) 저 제목들은, 한국인의 허영심과 사교육비 지출에 대한 조롱처럼 기사 내용을 요약하고 있지 않나.
 
근데 포스트지에서 이 두 가지 이야기만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
이 기사에서 분석된 저축률 급감의 원인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다.

1. 과시형 소비
2. 부동산 정책
3. 사교육비 지출
4. 노령화로 인한 인구의 지출 패턴 변화

그리고, 이 네 가지 원인 분석이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크게 보면 한 가지다.

이명박식 정책은, 국가를 말아먹을 정책이라는거.

자산이라곤 아파트 한 채나 있으면 다행, 1인 자녀 사교육에 목숨걸고 저축액을 털어 기죽지 않기 위해 큰 차 사고 휴가 떠나는, 정리해고에 떨고 월급동결에 이 악무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이건 정말 무서운 현실이다.

이거 왜곡도 아니고 비난도 아니다. 왜 그런지는 이제부터 차분히 보자.

지난번 윌리엄 페섹 기사에서, 통화팽창정책으로 자금이 풀리면서 주식이 반등하고 자산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현재의 상황부터 풀어가 보자. 복습겸.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 쇼크로 제 2의 IMF 사태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줄 알았다. 미네르바의 경고가 나왔고,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자산가치는 폭락하고 주가는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자금을 풀었다. 이른바 '유동성 공급'. 이 효과는 지금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이 아직 상승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원래 실업률이란 경기가 최하점에 도달하고 난 후에도 상승세를 약간 더 유지하는 후행지표다. 하여, '최악은 지나가지 않았나'라는 안도감이 지배하며 주가 견인 주도.

그리고 이대로 고강도 부양책을 유지하면 인플레 등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시중 자금 회수를 시작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미 시작되었다. 이른바 '출구 전략'이다. 현재 풀린 유동성 중 일부 흡수를 시작하여 자산거품이 다시 부푸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페섹의 칼럼에서 경고했던 부분도 바로 이거다. 금리 인상이 되면, 본격 출구전략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출구 전략의 상세 내용과 시기 결정에 필요한 분석은 나도 아는 바 없어 능력 안되므로,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그럼, 이제 중요한 부분이다.
대체 저런 거시 경제, 통화 정책이 나랑 뭔 상관이냐.
물론 상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왜 그런지, 다시 포스트지 기사에서 내세운 네 가지 원인을 하나씩 뜯어 보자.

1. 경쟁적인 과시형 소비 행태

아래는 기사 인용문이다.

When it comes to buying high-priced, brand-name stuff as if there were no tomorrow, Sabina Vaughan concludes that Americans are relative wimps. "Koreans spend more, way more," said Vaughan, 35, who travels to Seoul every summer with her Korean-born mother and spies on her cousins as they shop. "It is a kind of competition for them. It doesn't matter what their income is."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고가의 명품을 서슴없이 구매하는 데는, 미국인들은 한국인에 비하면 오히려 겁쟁이라고 Sabina Vaughan씨(35)는 말한다. "한국인들이 훨씬 더  (돈을) 많이 써요." Vaughan씨는 한국 태생인 어머니와 함께 매년 여름 서울로 여행하면서 사촌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 왔다. "(쇼핑을) 경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기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는 관계 없이요."

이 부분은, 한국의 과소비 행태를 꼬집은 것으로, 국내 언론이 제목으로 뽑아 전한 저축률 급감의 원인이다. 근데 이런 관점은, 정책적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딱 좋다. 느네 글게 왜 돈도 없는 주제에 빚내서 막 쓰고 그래. 그러니까 망하지. 누굴 탓해, 느네 탓이다. 이런 논리. 근데, 이게, 개인 탓만은 아니다.

IMF 이후,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가 마구 발급되었던 때, 기억 나시리라. 신용불량자 대량 양산되는 신용카드 '대란'이 일었고, 무수히 많은 가정이 카드빚 갚다가 파탄 났다. 그럼 이게, 자기 수입은 생각지 않고 빚 내서 탕진한 개인의 탓이냐. 그런 측면도 있다고 해 두자. 동전의 양면 같은 거니까.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건 정책적 실패다. 정부의 의도적 신용카드 규율 완화정책이 한국 금융산업을 총체적 부실 상태에 빠트린 이런 사태를 불러온 거다. 이건 미국 연방의회 조사국(CRS) 보고에서도 한국의 신용카드 대란의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고 비싼 이자 부담을 물게 해서, 개인 경제를 파탄나게 만드는 대출. 영어로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라 해서 금융선진국에서는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우려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불법이다. 근데 이걸, 우린 정부에서 풀어버린 거다.

그럼 지금의 과소비 행태는. 이건 개인의 책임인가? 일단 과소비 그 자체는 개인의 선택이다. 월급은 쥐꼬리여도 10개월 할부로 루이비똥 스피디 핸드백 하나쯤은 들어 줘야 하고, 결혼 비용이 아무리 부담돼도 차마 국내로는 신혼여행 못 가겠고, 김대리 차는 SUV니까, 내 처지에 맞는 경차는 자존심 상해서 못 모는거. 그런 거 개인의 욕망 맞다. 근데 이 개인의 욕망은, 국가정책에 의해 교묘히 부추겨지고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그 중의 하이라이트는, 부동산이다. 부동산, 전국민 구매 품목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품목이다. 게다가 저축해서 사는 사람 없다. 다 빚 내서 산다. 그러니 사실상 저축률이 바닥을 친 제일의 원인은, 이 부동산이다. 함 살펴 보자.

2. 부동산 대출

There are other reasons for the fall in savings that are eminently rational -- and sponsored by the government. When the economy nearly collapsed a decade ago during the Asian financial crisis, the government made low-cost loans available for the purchase of apartments. Borrowing exploded, as did housing values, while savings began to evaporate.
그러나 저축률 하락의 원인에는 매우 이성적인 이유도 있으며, 이는 정부가 유도한 것이다. 10여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가 붕괴 직전까지 갔을 때, 정부는 아파트 수요자를 위해 저리의 주택대출 상품을 만들었다. 이에 대출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집값은 폭등했으며 저축은 동나기 시작했다.

IMF 직후부터 작년 거품붕괴까지, 아파트값이 얼마나 무섭게 올랐는지 다들 알 거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부동산 경기를 진작시키면 당연히 이렇게 되는 거다. 집값이 수 배씩 폭등하는데, 누가 손톱만한 이자 받으려고 저축을 하고 앉았겠나. 앉아서 돈 까먹는 바보 짓이지. 당연히 저축 대신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상식이 된다. 그래서, 이 기사에서는 이를 'rational(이성적, 합리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걸 정부가 후원(sponsor)했다고 표현했고.

여튼 그래서 거품이 부풀어 오르다가, 작년에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빚으로 장만한 아파트 하나로 미래의 희망을 담보해 온 수많은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주택대출상환 부담이 한국에서 가계 가처분 소득의 평균 20%를 잡아 먹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건 서브프라임 사태로 한국보다 더 심각한 자산가격 거품 붕괴를 경험한 미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은 그래도 괜찮다.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근데, 떨어지면 그 때는 가계 소득을 갉아먹는 빚더미 폭탄이 되는거다. 지금처럼 자산 거품 재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진작책은 잠시 멈췄던 이 시한폭탄을 다시 가게 하는 거다.

근데 이명박이 하고 있는 짓이 바로 이거다. 양도세 완화, 세금혜택 요건 완화, 종부세 무력화, 투기지역 지정 해제. 더 무서운 것은, 1가구 다주택을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다는 거다. 집 있는 이들, 투기해서 부동산 시장에서 더 벌어 가라고 등 떠미는 거다. 이렇게 되면 희생자는 실수요자다. 투기자금이 올려 놓은 주택 가격의 거품을 고스란히 얼마 안 되는 월급에서 매월 이자와 원금으로 땜빵하면서, 가처분 소득을 까먹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거품이 터지면, 빚더미에 오른다. 평생을 바쳐 모아 왔던 하나 뿐인 자산이, 심하면 은행에 압류, 아니면, 더 긴 기간을, 더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갚아 나가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을, 페섹도 지적했고 워싱턴 포스트도 우회적으로 지적한 거다. 적어도 포스트지는, 이 아파트에 대한 소비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도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근데 IMF 직후랑은 또 다른 상황이다. 지금 부동산 부양책은, 일반적으로 후행지표인 부동산 가격이 주가와 같이 오르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인위적 부양책으로 부풀어 오른 거품은, 나중에 더 크게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거 알면서 그러는 거다. 다들 잘 살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되는 놈만 되고, 안 되는 놈은 망하는 줄 알면서, 저는 안 망할 자신 있으니까 하는 정책. 이 정책 어디에 한 줌 부유층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배려가 있나.

경기부양책으로 풀린 자금이 이대로 자산 거품만 키우면 극소수 부유층과 해외 자본만 배불린 후 경제는 다시 얼마든지 파탄날 수 있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3년 반이 갑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3. 살인적인 사교육비

그리고 이렇게 국가정책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은, 고스란히 아이들 세대로 전이된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An obsessive pursuit of educational achievement, it seems, is one of the driving forces behind the low savings rate. About 80 percent of all students from elementary age to high school attend after-school cram courses. About 6 percent of the country's gross domestic product is spent on education, more than double the percentage of spending in the United States, Japan or Britain. "Education is a fixed expenditure for Korean parents, even when household income shrinks," said Oh Moon-suk, executive director at LG Economic Research Institute.
학업 성취에 대한 강박이 저축률 하락의 주요 동인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체 학생의 80%가 방과후 보습학원에 다니고 있다. 교육비 지출은 GDP의 6% 수준으로, 이는 미국, 일본, 영국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 부모들은 가계 소득이 줄어도 교육비는 고정 지출이라 생각합니다." LG 경제연구소의 오문석 상무의 말이다.

GDP의 6%가 교육비로 지출되는 현실.

그리고, 이 사교육비 지출을 몰아 가는 것은, 부동산 거품을 만든 동력과 같은 욕망이다. 없는 이들은, 적어도 자녀 세대에는, 가난을 물려 주지 않겠다는 의지. 있는 이들은, 내 자녀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 그래서 경쟁.

결과는, 당연히 돈 있는 놈이 이긴다. 어릴 때부터 조기 연수 보내 영어 익히고, 과외비 쏟아 부어 성적 올려서, 강남에서 오피스텔 빌려 스터디 한 다음 해외유학 떠나, 미국 대학 학사 학위, 혹은 MBA 하나 물고 돌아온다. 공채 아닌 개별 채용으로 컨설팅, 자산관리, 외국계 기업. 돈 많이 버는 알짜업계에서 고액연봉으로 모셔 가는 이들, 요즘 학부 해외 유학이 늘어서 그런지 많더라. 그 애들이랑 경쟁? 두뇌와 노력만 있으면 되나. 소가 웃을 소리다. 거긴 딴 세상이다. 같은 회사에 혹시 들어갔다 치자. 유창한 영어에 해외 유수 학벌인 그들과 같은 대접 받나. 그 아래는 국내 대학 내에서 서열화. 그렇게 다들 줄 서서, 나랑 비슷한 배경 출신들끼리, 다들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가지 않으려, 피터지게 경쟁하는 거다.

즉, 이건 다단계 리그제다. 하위 리그에서 1등 하면 바로 그 상위 리그로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거기서 하위권에 맴돌다, 다시 내려오지나 않으면 다행. 리어카 끌다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명박의 성공 신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 분은, 내가 했으니까 너희도 하면 돼 정신으로,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 확대, 대학입시 자율화, 일제고사, 고교등급제, 실시했거나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걸 바라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거다. 자녀에게 쏟아 부을 돈이 있는 거다.

이게 돈만의 문제냐. 맞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걸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 단지 과외, 학원의 문제가 아니다. 돈 있으면, 부모가 시간 내기 쉽다. 학교에 끊임없이 드나들며 자녀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간섭하고 신경 쓰고 보호한다. 잘 꾸미고 잘 돌봄 받으니 어디 가도 이쁨 받고 인정 받고 주눅들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어필하고 네트워킹하고 상호작용 하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배운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방치된다. 이 애들이 교과서와 참고서 좀 파고 들었다고, 이 갭을 메울 수 있나. 그런데도 정책은 거꾸로 간다. 돈 있으면 심지어 지금보다도 더 편하게, '성공'할 수 있게. 암울하다. 생각만 해도.

게다가 정작 장기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가 병적인 경쟁에 사로잡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

4. 노령화로 인한 인구의 지출 패턴 변화

By 2050, South Korea will be the most aged society in the world, narrowly edging out Japan, according to the OECD.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일본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가 진전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OECD는 예상했다.

"Parents often overspend. It even appears to be leading to a slowdown in the birthrate."
“능력 이상으로 (교육비를) 지출하는 부모도 많고요. 심지어 이 부담이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As important, the spending patterns of aging parents, many of whom have been tapped for loans by children in pursuit of real estate, mean that cash is steadily disappearing from savings accounts. "Old people do not save," Lee said. "This is a long-term structural phenomenon. It will not change with the business cycle."
또 중요한 점은, 자녀들이 부동산 구매를 위한 자금을 빌리곤 했던 부모 세대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축 계좌에서 현금이 꾸준히 사라지고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저축하지 않아요." Lee의 말이다. "이건 장기적, 구조적 현상입니다. 경기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근검 절약을 미덕으로 알았던 부모 세대의 소비 패턴이 변한 거다.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결혼도 시켰으니, 이제 저축할 이유가 없는 거지. 젊은이들은. 저축할 줄 모른다. 빚 내서 부동산 재테크 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리고 무한 경쟁과 사교육비 두려워 아이는 적게 낳는다. 이대로 한 세대만 지나면, 노령화와 함께 국가 경제는 심각한 위기다. 부자라고, 이 계산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한국의 먼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지점도 여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까 맨 처음에 인용했던 부분을, 좀 더 길게 다시 한 번 인용해 보자.

But the fall-off-a-cliff character of what has happened with household savings in South Korea strikes many experts as abnormal and worrisome. It is one of several trends suggesting that South Korea, as it wrestles with post-industrial affluence, is a society under extraordinary stress. South Koreans work more, sleep less and kill themselves at a higher rate than citizens of any other developed country, according to the OECD. They rank first in time spent online and second to last in spending on recreation, and the per capita birthrate scrapes the bottom of world rankings.
그러나 급전직하한 한국의 가계저축 하락 속도는 전문가들도 비정상적이고 우려스러운 것으로 본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이 산업화가 가져온 풍요와 씨름하면서 사회 전체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음을 시사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 중 최장 근무시간, 최단 수면 시간,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여가 활동 지출은 꼴찌에서 두 번째이며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렇게 보이는 거다. 외신의 눈에는. 극도의 긴장 상태. 그리고 그 키워드로 제시된 것이, '경쟁'이다. 소비 경쟁, 학업 성취 경쟁 하느라 잠도 여가시간도 희생하고, 돈 드는게 무서워 아이 하나 이상 낳기를 포기하고, 그러다 밀려나면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고, 누구나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 근데 우리 내부에서는, 이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다.

이 욕망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명박은 그런 욕망을 부추기는 정책만을 내 놓고 있다. 지금 이명박의 정책은, 국가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저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거다. 저와 함께, 한줌의 가진 이들을 위한 정책.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오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그에게는, 그게 답이겠지. 근데 본인 1인의 사례를 두고, 그분은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가늠한다. 시장 상인들에게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라고 조언하는 걸 보면, 그가 어떤 마인드로 국정을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름 돋을 일이다.

관련 외신 전문 보기

 

그러나 정작 이 기사를 쓴 이유는, 이명박식 정책을 까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명박 찍은 이들을 욕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생각만 해도 한숨만 나는 이 깝깝한 상황 속에서, 내가 어찌 살아야 할지 결정한 바를, 이야기 하고 싶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다.

나, 프리랜서다. 작년에 일 많았다. 돈도 좀 벌었다. 쇼핑, 해외 여행, 저축 대신 펀드랑 부동산. 딱 이 기사에 나오는 대로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는 다 같이 가난했는데, 이젠 비교 대상 그룹이 바뀌어 버린 거다. 2박 3일 홍콩여행 다녀 오면 듀브로니크에서 5박 6일 있다 온 친구 때문에 배가 아팠고, 수십만 원짜리 가방을 들면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든 친구 앞에서 왠지 모르게 주눅 들었다. 
 


지중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듀브로니크..


날 주눅들게 했던 샤넬 클래식 점보...
백화점 신품가격이 400만원을 넘겨 중고가가 몇 년 전 신품가보다 비싼 기현상으로, 재테크 수단으로도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다.

비교 대상만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 비교 대상의 가치관 체계가, 그 전까지 알던 사람들과 너무 달랐다. 그래서 일을 더 많이 했다. 퇴근 후에도 다른 재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말에도 일했다. 통장이 생전 본 적도 없는 자릿수의 현금으로 넘실거렸다. 그런데도, 벌면 벌수록 불행해졌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이가 벌어져 갔다. 벌면 벌수록 모자랐다. 내가 못 가진 것들이 더 잘 보였다. 지치고 힘들었다. 뭔가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올해는 일이 크게 줄었다. 불경기였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알라딘에서 주문하기 시작한 책. 한 달 채 안 되어 플래티넘 회원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조깅도 시작했다. 시사잡지와 인터넷 서점에서 여는 강연회들도 찾아 다녔다. 부모님 모시고 가족여행도 준비해서 다녀 왔다. 답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올해 5월, 봄철에 집에서 거의 놀았는지라, 수입이 처음으로 제로인 달이었다.

 

그리고는 5월 23일이 왔다.

 

며칠을 대한문 앞에 나가 울고, 시청앞 노제에서 서울역까지 따라간 다음, 그리고는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명료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작년에. 남들과 비교하면서, 초조해 하면서, 한 번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살지 않았던 시절이 훨씬 길었는데, 고작 몇 년 새에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게 틀렸다는 걸 그 날 확실히 알았다.

그 전의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기에 어느 날 교보에서 제목에 꽂혀서 집어 든 책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Status Anxiety)'이다. 여기서 보통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한국판 표지. 불안한 사람들에게 강추.

"사회적 서열에서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뒤에 숨은 가장 큰 충동은 거기서 얻을 물질적 풍요나 휘두를 수 있는 권력보다, 높은 지위로 인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양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 사랑의 상징이자 사랑을 얻을 수단으로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중략)...사랑 받는다는 것은 내가 관심의 대상이라고 느끼는 것, 내 존재를 누가 알아 주는 것, 내 이름이 기억 되는 것, 내 의견을 들어 주는 것, 내 실패가 관대히 받아 들여지는 것, 내 필요를 누가 충족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이 말, 난 참 와 닿았다. 그러니 돈, 명성, 영향력을 위해 살 필요는 애초에 없었던 거다. 굳이 남들과 죽어라 경쟁하지 않아도 사랑 받을 수 있는 거니까. 가족, 친구, 애인, 동료, 내 존재를 알고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낀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거다. 나처럼, 본의 아니게 정부 정책으로 인위적으로 형성된 경쟁환경에 휘말려, 때로 초조하고 불안하고 기죽고 우울했던 사람들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5월 23일 이후 딴지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왔다. 5월 23일 이후 나는 세상을 사는 방식에 대한 새 프레임을 짰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할 것 같았던 그 가치관이, 알고 보면 병적이라는 거, 그 경쟁을 초탈해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 거. 그걸 상징하는 게 내겐 딴지였다.

아파트 평수 늘리고, 아이 사교육 시켜서 성적 오르는 것 보고, 물질적 만족 느끼고, 승진하고. 이런 데서 행복을 찾는 삶의 방식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도 필요하고, 그런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도 많겠지. 근데 난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행복해 질 길도 보장해 달라는 거다. 이명박은, 자기의 행복의 등식밖에 모르고, 그걸 전국민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니는, 나쁜 놈인 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먹물님이랑은 술 한잔 했습니다. 그 때 사과드리면서 미처 말씀 못 드린 부분이 있어 여기에 독자 제위께와 같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먹물님의 글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서, 처음에 든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은, 무엇이 되었든,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 글 또한 마찬가지 생각으로 올렸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비아냥과 욕설을 보면서, 이런 표현을 내가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악플이 올라오리라는 것 정도는 감수하고 있었기에,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더군요. 아무리 각오 하고 있었던 결과라도. 그 이유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제 진정성이 짓밟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고. 그리고는, 먹물님의 글이, 비록 저에게는 불쾌한 구절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소통의 진정성만은, 제가 짓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마음 깊이 느낍니다.

제 소통방식의 서투름과 미숙함에 대해, 먹물님과, 제 글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독자 제위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딴지 영미권 전임 통신원 헤라 (hera-_-@hanmail.net)


  링크 : http://www.mediamob.co.kr/msmarple/Blog.aspx?ID=207028

  미디어몹에 들어갔다가 오래간만에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글을 발견. 이번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에 관련한 협상문의 영어본을 제대로(?) 번역하신 분의 글이다. 100분 토론을 끝까지 볼 생각이 없었기에(화가 나서 안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뒷북을 치는 것이 줄겁지는 않지만 내가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고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제시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때아닌 정의감에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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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tire carcass of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is also prohibited, unless the cattle are less than 30 months of age, or the brains and spinal have been removed. The risk of BSE in cattle less than 30 months of age is considered to be exceedingly low ...


이상길 단장은 처음 not inspected의 의미가 송기호 변호사가 지적한 바와는 달리 합격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검사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주장하여 일차적으로 해석의 교란이 일어났다.  

지금 보면 이단장이 설명한 대로 식용을 위해 허가 받는 절차에 오기 전에 목장에서 사료가공업체로 검사되지 않은 채 팔려간 소가  이 단어로 인해 지시될 수 있다 해도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을 연계하여 문장 전체를 볼 경우에는  

"인간의 식용가능 여부를 가르는 절차를 거쳐서 합격되지 않은 (not inspected and not passed for) 축우의 시체를 통째로 가축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중요한 단서가 붙지만). 즉, 이단장의 말이 지시한 바대로 검사단계 이전에 팔려 나간 것은 물론이고 이후 검사탈락 소도 포함하고 기타 등등, 여하간

식용기준검사에 합격되지 않은 축우를 통째로 사료화하는 것은 금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부분은 자구상 논란의 여지가 없고, "식용기준"이라는 보편적인 기준을 먼저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말과는 반대로 중요한 강조점을 뒤에 쓰는 영어식 흐름에 따라서, 사실상의 핵심은

1.축우의 연령이 30개월 미만이 아니라면  
2.뇌와 척수가 제거 되지 않았다면

 (unless가 A, or B의 형태로 두 문장을 A 이거나 B 하나를 충족하면 되는 조건절로 만든다.)
 
이 단서에 있다. 즉, 1이나 2를 뒤집어서 충족하면, 그러니까 축우의 연령이 30개월 미만이거나, 2. 뇌와 척수가 제거 된 축우는, 앞에서 밝힌 "식용기준" 합격이 아니더라도 금지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종합해서 해석해 보면,
1. 30개월 이하의 소는 식용기준 도축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통째로 사료용으로 쓰일 수 있다.
2. 뇌와 척수가 제거된 소는 30개월이 넘고 5세, 6세에도 식용기준 도축허가를 받지 않고 사료용으로 쓰일 수 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왜 30개월 이하의 소는 뇌와 척수 제거 여부나 다른 식용기준검사 및 합격판정을 안 받아도 되는가에 대한 근거를 댄 것으로 보인다. 즉, 30개월 이하는 위험 가능성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뇌와 척수가 제거된 경우에는 월령을 따지지 않고 식용기준 합격 절차를 밟지 않거나 불합격 되어도 사료로 쓰일 수 있다의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싼 소를 두고 그럴리야 없겠지만... 식용기준 합격 소는?
당연, 월령에 상관 없이 사료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이 "강화된 사료조치"라는 것의 실체는 "식용기준"을 잣대로 삼아 그에 미달하는 것 중 사료로 쓰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결코 동물사료를 "완전금지"하는 방향으로 단계적 조치를 취해 온 우리나라와 유럽의 사료정책의 정신과는 일말의 교감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100분토론> 논란과 연결해 보자면, 송변호사가 지적한 대로, 다음과 같은 정부측의 발표는 명백한 오역인 것이다.    


모든 광우병 감염 소,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광우병 위험 물질이 있을 수 있는 뇌나 척수를 제거하도록 하였고,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2면).



  "unless...or"가 과연 이 "오역"을 나은 주범인가?
그렇다면 그 영어로 도대체 협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고 싶고,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이 의도적 오역을 주도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설마 번역담당자를 자르는 것으로 무마하려 들지는 않겠지?)

끙.

  알라딘에서 음반 체크해 놓고 새벽 시간동안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알라딘을 통해 제일 저명한 북 리뷰어 블로거라고 할 수 있는 "로쟈" 님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인문학 계통에 종사하고 계신 그분은 요즘의 전개상황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여타의 인터넷 언론이나 몇몇 아는 블로거 분들의 블로그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측면도 있었고.

  아래의 부분은 그분의 블로그에서 미국 쇠고기의 수입 협상과 관련해 프레시안에서 칼럼을 옮겨온 것을 불펌해 온 것이다. 프레시안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뭔가 한 번 더 재확인하는 기분이랄까... 어쩌면 이 글들을 파일화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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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읽어보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사를 옮겨온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04095610). 이번 '광우병' 사단을 불러일으킨 한미간의 합의문 내역에 대한 법학자의 해석인데, 그에 따르면 이번 협상 결과를 정부는 은폐했다. 그리고 그 핵심이란 건 '굴욕'이다. 이 해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확한 해명이 듣고 싶다.

프레시안(08. 05. 04) [송기호 칼럼] 국민이 몰랐던 네 가지 진실 

나폴레옹의 진짜 업적은 전쟁 승리보다는,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법전은 최초의 근대적 민법으로, 사유 재산제와 계약 자유를 담았다. 그리고 그의 법은 나폴레옹 자신의 말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민법을 만들 때, 조문의 해석에 다툼의 소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법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완성된 법전에 만족하면서, 이 정도면 장차 어떤 프랑스인이 읽더라도 그 의미가 명확할 것이라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에, 파리에서는 그의 법률 조항의 의미를 놓고 해석론의 대립이 발생했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라도 그 해석에서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서로 언어와 가치가 다른 나라 대 나라 사이의 합의문을 놓고 그 해석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아예 1969년에, 유엔 회원국은 비엔나에 모여,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안에 국가 간의 합의문을 어떻게 해석할 지 그 원칙을 정해두기까지 했다. 여기서 합의된 일반 원칙은, "합의문의 문맥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ordinary meaning to be given to the terms of the treaty)"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이다.
 
나라 간 합의문의 해석의 출발은 그 문항의 문언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률가라도 조문 없이 해석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운천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18일 미국과의 쇠고기 광우병 검역 협상을 타결하면서도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보도 자료만을 냈다. 법률가가 합의문 문항을 보지 못하고, 보도 자료를 보고 그 의미를 새겨야 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법률가에게 필요한 것은 조문이지 보도 자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즉시, 미국과의 합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고자, 농림부 장관에게 합의문 영문본과 한글본 공개를 청구했다.


 
은폐 1 : 국제수역사무국 결정 없이 검역 주권 행사 못한다
나는 농림부 장관의 공개를 기다리면서, 보도 자료라도 읽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도 자료였다.  

미국 내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미국 측은 즉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한국 정부에 통보하고 상호 협의키로 하였으며, 동 역학조사 결과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일 경우 수입을 전면 중단키로 하였음.


가슴이 꽉 막혔다.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 회원국이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SPS 협정)이 보장하는 검역 주권을 누리고 있다. 특히 국제 검역법은 조류독감, 광우병 등과 같이 확실한 과학적 설명을 하기 어려운 전염병에 대하여,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라도 회원국이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국제법적 권한을 주고 있다. 해당 조문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관련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회원국은 이용가능한 적절한 정보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 (In cases where relevant scientific evidence is insufficient, a Member may provisionally adopt sanitary or phytosanitary measures on the basis of available pertinent information…) : 위생검역협정 5조 7항


만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이는 일단 미국의 광우병 통제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왜 광우병이 추가 발생했고,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판명하여 거기에 맞는 수준의 검역 조치를 취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바로 위 조문은 이와 같이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라도, 그 시점에서 여러 이용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권한을 한국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서의 광우병 추가 발생을 급히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해 놓고 나서, 광우병 추가 발생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한 후, 심각하지 않은 사건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다시 수입을 하면 된다. 이는 국제법이 보장한 한국의 검역 주권이다. 그리고 이는 농림부 장관의 고시인 '지정 검역물의 수입 금지 지역'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 고시는 악성 가축 전염병인 광우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에도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5조(수입 금지 등) 농림부장관은 제3조 제1항의 수입 금지 지역으로 지정되지 아니한 지역에서 악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법 제32조의 규정에 의하여 당해 지정 검역물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법 제52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검역 중단·출고 중지 등 당해 병원체의 국내 유입 방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 농림부 보도 자료는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누리고 있는 잠정 조치 권한과 농림부 고시 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오늘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미국의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이다. 그 결과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일 경우"가 아니면,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위와 같은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의 합의문 영문본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22일, 미국과의 합의 내용을 입법 예고를 했다. 이제 위 보도 자료는 이렇게 5항으로 조문화되어 있었다.
  

5.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다.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법률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는 앞의 보도 자료와 다르다. 앞에서는 마치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한국이 마치 어떤 독자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위 입법 예고안에서는 미국의 조사 결과는 조사 결과일 뿐이다. 닫혀 있다. 그리고 한국의 자주적 권한은 점점 사라진다. 아예 문장의 주어가 "추가 발생 사례"라고 하는 과거의 사건, 곧 한국이 개입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그리고 국제 기구의 지위 분류라는 사건에 한국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써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위 조항을 다시 읽었다. 한국의 실낱같은 희망처럼 보이는 단어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를 새겼다. "영향"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는 "어떤 사물의 효과나 작용이 다른 것에 미치는 일"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은 본질상 미국의 광우병 등급 지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부정적 영향 여부를 결정할 것인가? 결국 내겐 합의문 영문본이 필요했다.
 
그런데 농림부 장관은 지난 28일에, 내게 통지를 했다. 아직 자구 수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문본 공개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난 22일에 그 한글본을 입법 예고를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영문본을 보기 위해 농림부 장관을 제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통상법을 한다는 법률가가 통상법 조문을 보려면 장관을 제소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게는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합의문 영문본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영문본을 보고 해석하지만, 나는 소송에서 장관으로부터 당당히 영문본을 건네받을 것이다. 앞으로 통상법과 식품법을 하려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마침내 영문 합의문의 문항을 보면서 해석의 궁금증은 모두 풀렸지만, 결론은 비참했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5. In the event (an) additional case(s) of BSE occur(s) in the Untietd States, the US government shall immediately conduct a thorough epidemiological investigation and inform the Korean government of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The U.S. government will consult with the Korean government about the findings of the investigation. The Korean government will suspend the importation of beef and beef products if the additional case(s) results in the OIE recognizing an adverse change in the classification of the U.S. BSE status.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사례(들)이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다. 미국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들)이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 '하향 변경(adverse change)' '공인(recognizing)'으로 귀결되는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명확했다. 마치 나폴레옹이 만들려고 했던 민법처럼, 위 조항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아무리 많이 발생하더라도 자주적으로 검역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농림부 장관이 그토록 사랑하는 국제수역사무국에 달려 있다.
 
영문본과 한글본을 대조하면서, 나는 농림부 장관의 능력을 재발견했다. 그는 영문 합의문에는 있는 "case(s)"의 복수 명사를 한글 보도 자료와 입법 예고안에서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합의문의 "adverse change"를 한글에서는 "반하는 상황" 혹은 "부정적인 영향"으로 옮겼다. 아마도 농림부의 영어 사전에서는 "change"란 "상황" 혹은 "영향"이라고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농림부 장관의 유능한 대가로, 한국은 WTO 회원국으로서 가지고 있는 잠정 조치 권한, 그러니까 국제법에 의하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한 법적 권한을 포기했다. 이것은 헌법 위반 행위이다. 그 어떠한 장관도 국회의 동의 없이 주권의 제약을 가져오는 합의를 외국과 할 수는 없다.



 
은폐 2 : 미국 쇠고기의 월령 표시는 어떻게 되는가?
농림부 장관의 능력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그의 능력은 빠짐없이 발휘되었다. 쇠고기 월령 구분제를 보자. 30개월령이 넘은 쇠고기를 포장 상자에 표시하도록 하는 문제(Marking requirements for OTM meat)는 한국으로서는 검역의 실효성을 좌우하는 본질적 문제이다. 눈앞의 쇠고기나 등뼈만을 달랑 보고 그 나이를 판별할 수 있는 검역 공무원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검역 기준에는 미국 정부의 검역 공무원은 쇠고기 수출 검역 증명서에 반드시 소의 월령이 30개월 미만임을 확인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19조 1항). 그런데 농림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예의 그 보도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협상에서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수출 검역 증명서상의 도축 소 월령 표시 여부와 관련해서는 개정된 수입 위생 조건 발효 후 180일간 등뼈가 정상적으로 포함되어 가공되는 티-본 스테이크 수출품 등에 한해 해당 쇠고기가 30개월령 이하임을 표기하고 180일 이후 계속 표시 여부에 대해 추가 협의키로 하였음….


이 보도 자료가 우리에게 정말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 검역 공무원이 발행하는 수출 검역 증명서에, 도축소의 월령 표시를 하지 않기로 한국이 합의해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공무원이 수출 검역 증명서에 기재해야 할 사항에서 소 월령 표시는 삭제되었다(합의문 22조 1항). 이로써 미국 정부는 개개의 쇠고기 제품에 대한 월령 보장 책임에서 벗어났다. 미국 도축장의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선적되는 제품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쇠고기 월령 확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사라졌다.
 
나의 해석이 맞는다면, 앞으로 한국의 검역 공무원은 초능력자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그는 쇠고기 상자에서 뼈와 살을 구별하면 되었다. 소의 나이는 미국 공무원이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보이지 않는 미국 도축업자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눈앞의 등뼈가 실은 30개월령이 넘는 소의 광우병 위험 부위인데도 미국 도축업자가 그만 나이를 잘못 감별하는 바람에 한국으로 불법 수출된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보고? 나의 해석대로라면 단지 그 등뼈만을 보고.
 
그래서 미국 도축장을 직접 철저 현지 점검하시겠다고? 불가능하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기준에서는 한국이 개별 승인해 준 도축장만이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농무부의 검사를 받는 모든 도축장이 자격이 있다. 둘째, 노무현 정부 시절의 기준에서는 한국 검역관은 모든 미국 도축장에 대해 현지 점검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중대한 위반을 적발해서 해당 작업장에서 한국으로의 수출 작업이 중단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표성 있는 표본에 대해서만 현지 점검을 할 수 있다. 한국이 도축장에서 중대한 위반을 적발하더라도 그 결과를 미국정부에 통보할 수 있을 뿐이다(8항). 이 표본에 포함되지 않으면, 미국의 도축장은 한 차례 정도의 심각한 위반을 저질러도 한국의 현지 점검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는다(24항).


 
은폐 3 :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전수 검사를 할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전수 검역 검사를 할 권한을 정면으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물론 연간 약 2억3000만㎏ 의 미국산 쇠고기 선적 물량을 전수 검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특별 점검 대상이 되는 도축장의 제품이라든지, 혹은 특정 상황에서는 전수 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합의문 영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3. If an SRM is found, FSIS will conduct an investigation to determine the cause of the problem. Product produced by the pertinent meat establishment shall continue to be eligible for import quarantine inspection. However, the Korean government will increase the rate of inspection of subsequent beef and beef products from the meat establishment. After the Korean government inspects five lots of equal or greater quantity of the same product without finding a food-safety hazard, the Korean government shall apply its standard inspection procedures and rates.(광우병 특정 위험 부위가 발견될 경우, 미국 식품안전검사국은 그 원인을 판정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해당 도축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한국의 수입 검역 검사를 받을 자격을 계속 가져야 한다. 단, 한국 정부는 해당 도축장의 향후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 대한 검사 비율을 높일 것이다.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수량인 동일 제품 5개 수입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검사를 한 후, 식품 안전 위해 요인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한국 정부는 표준 검사 절차와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검사에서는 표준 검사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즉 전수 검사는 안 된다. 이렇게 새기지 않는다면, 이 조항은 존재 의의를 잃는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다시피 광우병 위험 특정 부위가 발견된 경우라 해도, 한국은 그저 검사 비율을 높일 수 있을 뿐이고, 그것도 5회 검사 합격이면 그 비율을 다시 내려야만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전수 검사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의 조약 해석 원칙에 어긋난다. 조약을 해석하는 데에서, 어느 조약 문구를 무의미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는다(effective interpretation principle).
 
농림부 장관의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합의문 시행 후 180일이 지나면, 한국의 소비자는 눈앞의 갈비 스테이크(티본 스테이크)만 보고, 그 월령을 구별할 능력을 지녀야 한다. 앞에서 보았던 보도 자료는 마치 180일 이후 계속 표시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80일이 지나면 갈비 스테이크 월령 표시 제도는 폐지된다. 대신 한국과 미국의 협의가 시작될 뿐이다. 이 협의에서 미국은 자신에게 불리할 경우, 결코 갈비 스테이크 월령 표시 제도 부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합의문 부칙 3항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U.S. government agree to have consultations upon the completion of the 180 day period with a view to addressing concerns after reviewing the notation's effect on beef trade and its inspection.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180일 기간이 다하면, 쇠고기 교역과 검사에 미치는 표시의 영향을 검토한 다음, 관심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 부칙 3항


은폐 4 :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 등의 뇌, 척수를 동물 사료로 사용한다
 
글이 길어지지만, 마지막으로 농림부의 노력이 얼마나 핵심적 주제를 대상으로 일관되게 진행되는 지를 확인하자. 농림부는 지난 2일, 그러니까 기자들과의 이른바 끝장 토론에서 미국의 이른바 강화된 사료 조치를 놓고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 자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광우병 감염 소,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광우병 위험 물질이 있을 수 있는 뇌나 척수를 제거하도록 하였고,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2면).


그러나 나는 미국의 사료 조치에 대해 달리 해석한다. 미국의 사료 조치는 '주저앉는 소'와 같이, 사람의 식용을 위한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라도 30개월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뇌와 척수마저도 동물 사료로 급여하도록 하는, 그런 것이다. 그 원문은 이렇다(73FR22720).
  

The FDA is amending the agency's regulations to prohibit the use of certain cattle origin materials in the food or feed of all animals. These materials include the following: The entire carcass of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y(BSE)-positive cattle; the brains and spinal cords from cattle 30 months of age and older; the entire carcass of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that are 30 months of age or older from which brains and spinal cords were not removed; tallow that is derived from BSE-positive cattle; tallow that is derived from other materials prohibited by this rule that contains more than 0.15 percent insoluble impurities; and mechanically separated beef that is derived from the materials prohibited by this rule. These measures will further strengthen existing safeguards against BSE. (미국 식약청은 소에서 나온 특정의 물질을 모든 동물 사료로 급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규정을 개정한다. 이 사료 급여 금지 물질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광우병 감염 소의 전체 부위, 30개월령이 넘은 소의 뇌와 척수, 30개월령이 넘는 소로서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에서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은 경우 그 소의 전체 부위, 광우병 감염 소에서 나온 우지, 이 규정에서 금지 물질로 정한 것에서 나온 우지로서 불용성 불순물 함유가 0.15% 이상인 것, 그리고 이 규정에서 금지 물질로 정한 것에서 나온 기계적 분리육. 이러한 조치는 현행 광우병 안전 조치를 더 강화시켜 줄 것이다.)


이를 두고, 농림부는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미 식약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73FR22733).
  

Further, the regulations were revised to exclude from the definition of CMPAF certain cattle that have not been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Under the proposed rule, cattle that wer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were excluded from the definition of CMPAF if their brains and spinal cords were removed. The final rule was revised to indicate such cattle are not considered CMPAF if the animals were shown to be less than 30 months of age, regardless of whether the brain and spinal cord have been removed. (또 당해 규정은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특정 소를 사료 급여 금지 물질의 정의에서 제외하도록 개정되었다. 종래의 입법 예고에서는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는 그 뇌와 척수가 제거되어야 사료 급여 금지 물질의 정의에서 제외했었다. 본 최종 규정에서는 그런 소라도 뇌와 척수의 제거를 불문하고 30개월령 미만인 경우에는 사료 금지 물질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를 개정한다.)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조항에 항상 유일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실패한다. 나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학자적 소신으로 문언적으로 살펴보았을 땐, 이건 굴욕의 합의문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굴욕은 은폐되었다.(송기호/변호사·조선대법대 겸임교수)

08. 05. 04.

P.S. 프레시안의 후속기사로는 진중권의 '대중은 무엇에 분노하는가?'(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505124327) 참조.

  마음에 드는 좋은 글이 있을 때, 인터넷의 속도와 날짜 속에 밀려 기억 저편으로 자리잡아야 하는 불편함을 피하고자 펌질을 하는 것 자체는 딱히 탓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을 한다. 다만 원글을 쓴 이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다소나마 나아질 테지만...
  하지만 결국 불펌으로 옮겨놓았다. 내가 쓸 수 없는 글이기에 가지게 되는 질투심이라고나 할까?



[카이져 야구스페셜]우리가 페드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카이져의 야구스페셜]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가 돌아온다. 복귀를 위한 시뮬레이션 피칭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페드로의 팬들은 벌써부터 흥분과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특히나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선수다. 물론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선수지만 한국에서 페드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


" 현역 투수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는 누구인가? " 라는 설문이 미국 현지에서 행해진다면 페드로가 로져 클레멘스와 그렉 매덕스 그리고 랜디 존슨을 제치고 1위를 할 확률은 거의 없다. 단순히 인기투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도미니카 출신의 흑인 페드로가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 투수라는 이점을 지니고 있는 저들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두 투표 모두 페드로가 넉넉하게 1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한국의 팬들은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투수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통산 206승 92패 방어율 2.81의 뛰어난 성적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투수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일까?



▷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실력이 없이 슈퍼스타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페드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의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3번의 사이영상(그 중 두 번은 만장일치), 트리플 크라운(1999년), 리그 방어율 1위 5회, 탈삼진 1위 3회, 현역 선수 중 통산 방어율 1위(2.81), 200승을 달성한 투수 가운데 역대 승률 1위(.692), 올스타전 4타자 연속 삼진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자이언츠, 에인절스 그리고 양키스 등에서 뛰며 통산 350홈런 1372타점의 뛰어난 성적을 남기고 은퇴한 칠리 데이비스에게는 한 가지 자랑거리가 있다. 1999년 양키스 선수로 은퇴 시즌을 마감하고 있던 데이비스는 9월 10일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6번 타자로 나서서 2회에 솔로 홈런을 때린다. 그리고 그 홈런은 그 경기에서 양키스가 기록한 유일한 안타였다.


9이닝 1피안타 1실점 17삼진 완투승! 보스턴 선발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그날 경기 성적이었다. 120구를 던지는 동안 스트라익은 80개, 볼넷 하나 없는 완벽한 경기였다. 1회 선두타자 척 노블락의 몸에 맞는 공과 데이비스의 홈런이 아니었다면 양키스에게 사상 처음으로 퍼펙트 패배의 치욕을 안겨줄 뻔 했다. 그것도 17개의 삼진을 곁들여서.


이어서 한 달 후 레드삭스와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서 맞붙는다. 3차전에서 로져 클레멘스와 선발 맞대결을 한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7이닝 동안 단 2개의 안타만 허용하며 12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13-1의 대승을 이끈다. 이 경기는 그 해 양키스가 포스트 시즌에서 당했던 유일한 패배였다.


연이은 두 번의 등판에서 자신들을 완전히 제압한 페드로를 보며 기가 질린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은 인터뷰에서, " 야구는 인간들끼리 하는 경기이므로 '인간이 아닌 자'에게 진 경기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일이고, 따라서 자신들은 전승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 라는 말을 남겼다. 이 후 페드로의 별명은 '외계인'이 되었다.


몇 년 전에 한 메이저리그 사이트에서 빅리그 최고의 구질을 뽑는 설문 발표를 하며 재미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각 구질별로 1위부터 5위까지를 뽑는 이 설문에 많은 선수가 이름을 올렸지만 그 가운데 페드로의 이름은 없었다. 화려한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포심과 '전가의 보도' 체인지업 그리고 무서운 위력의 커브까지도 순위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찬찬히 살펴봤더니 맨 마지막에 참조표시(#)와 함께 이러한 문구가 있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구사하는 모든 구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 판타지(fantasy) 스타


NBA의 앨런 아이버슨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단지 그의 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80센티의 단신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게임을 지배하는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아이버슨은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키가 커야 유리한 스포츠에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최고의 반열에 오른 아이버슨은 인간승리의 표상이다.


종목의 특성은 다르지만 키 큰 선수가 유리하다는 면에서 현대 야구는 농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랜디 존슨(206센티), 로져 클레멘스(193), 존 스몰츠(190), 커트 쉴링(193), 자쉬 베켓(193), 제이슨 슈미트(195), 크리스 카펜터(198), 로이 할라데이(198), 카를로스 잠브라노(195), C.C. 싸바시아(201), 브래드 페니(193), 케리 우드(195) 등 내 노라 하는 파워피처들을 보면 하나 같이 190대의 장신들이다.


비교적 키가 작은 180대 초반의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기교파 투수로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만능형 투수였던 그렉 매덕스(183)는 제외하면 탐 글래빈(185), 케니 로져스(185), 제이미 모이어(183) 등은 기교파 투수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성공한 몇 안 되는 케이스다.


심지어 지난 60년간 6피트(183) 미만의 키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투수는 양키스 소속으로 6번이나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화이티 포드(178, 236승 106패 방어율 2.75)뿐이다. 대부분의 키 작은 강속구 투수들은 파워피처로의 길을 포기하고 기교파 투수로의 변신을 모색해야만 했고, 그 또한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실정이니 공식 프로필에 키 5피트 11인치(180) 몸무게 170파운드(77kg)로 나와 있는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그 존재 자체가 신기할 수밖에 없다. 동갑내기인 '마무리계의 페드로' 빌리 와그너(178)를 비롯해 뒤이어 등장한 로이 오스왈트(183)와 요한 산타나(183), 그리고 올해 데뷔한 신인 팀 린스컴(178) 등도 마찬가지로 180안팎의 키로 불같은 강속구를 구사한다.


같은 힘이라면 키가 큰 투수가 더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 위치에너지와 원심력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온 몸의 탄력을 모두 이끌어 내는 투구 동작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투구 폼은 바람직하다 볼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들의 뒤에는 항상 '부상의 위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가냘픈 체구지만 100마일의 포심을 뿌리는 와그너에게 전문가들은 항상 투구 폼을 바꿀 것을 권유했고, 이렇다 할 부상 경력도 없는 린스컴은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 하나로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음에도 불구하고 10순위까지 밀렸다. 필자도 요한 산타나가 투구 동작 이후 자세가 무너지는 약점을 하루 빨리 극복하지 못한다면 3년 내에 부상으로 신음하게 될 것으로 본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작은 체구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토미 라소다 전 다져스 감독에게 버림받고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 된다. 물론 라소다 감독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페드로는 몸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시기가 틀렸다. 트레이드 된 이후 10년 동안 큰 부상 없이 커리어를 이어온 페드로는 이미 그 10년 동안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섰다.


'제국'이라 불리는 양키스에게 항상 눌린 보스턴의 선수로서 그들과 싸워왔고, 실제로도 양키스의 가장 큰 위협이 된 선수 페드로 마르티네즈. 2004년 마침내 보스턴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서 시리즈 전적 3:0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4차전부터 내리 4연승 하며 양키스를 물리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 마침내 86년 묶은 오랜 한을 푸는 데 성공한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실제로는 180센티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페드로가 97마일의 강속구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라 평가받는 각종 구질들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 스타' 그 자체였다. 이 점이 한국의 팬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했을 것이 분명하다.



▷ 부상... 부상... 부상...


조만간 페드로가 복귀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다.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몸 상태가 좋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고 1년 만에 복귀하는 페드로, 어깨 부상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오른쪽 종아리와 허벅다리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을 들락거렸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경우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작년 페드로의 투구를 본 팬들이라면 누구나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0마일에 불과했다. 물론 제대로 제구 되었을 때는 여전히 위력적이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그러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1년 반 만에 찾은 펜웨이파크에서는 상대팀 선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투구는 보스턴 시절의 그것이 아니었고, 결국 옛 동료들에게 난타당하며 3이닝 동안 8실점한 후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만다.

그 경기부터 시작해 부상까지 겹친 페드로는 후반기 7경기에서 31이닝동안 무려 28실점(27자책) 방어율 7.84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뉴욕 메츠로 이적한 첫 해 다시금 2점대 방어율(2.82)을 기록하면서 다시금 페드로의 시대가 열리나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지만, 작년은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생애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만 것이다.


페드로는 작년에 얼핏 자신은 2008년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부상을 완전히 이겨내지 못할 것을 우려했음일까? 이번의 복귀에서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의 말은 사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 역대 최고가 되기 위해서


누군가 필자에게 현역 투수 중 가장 위대한 선수를 뽑으라면 주저 없이 그렉 매덕스의 이름을 언급할 것이다. 가장 뛰어난 파워피처의 이름을 묻는다면 로져 클레멘스라고 답할 것이며, 가장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했던 투수는 랜디 존슨이라고 답할 것이다. 활동 기간이나 쌓아온 업적을 봤을 때 페드로가 이들 세 명 보다 더 위대한 투수로 기억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필자조차도, 모두가 전성기라고 가정할 때 월드시리즈 7차전 선발 투수로 누구를 내세우겠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매덕스의 등판 경기에서는 상대 타자들의 무기력함이 보이고, 클레멘스의 경기에서는 우완 정통파 파워피쳐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랜디 존슨에게서는 압도적인 투구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


페드로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라운드에 나와 있는 선수들 중 가장 작은 키였던 페드로였지만, 마운드에 서 있을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큰 거인으로 보였던 선수가 바로 페드로다.


페드로가 전성기 시절 보여준 임팩트는 5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 샌디 쿠펙스를 비롯해, 현역이면서 이미 역대 탑 10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매덕스와 클레멘스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아니 99-00년도에 걸쳐 2년 동안 보여준 그의 엄청난 성적은 94-95년의 매덕스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의 비교도 불허한다.


이미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샌디 쿠펙스가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를 역대 최고의 투수로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오히려 ESPN의 유명한 칼럼리스트 제이슨 스탁스는 그의 저서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좌완투수로 쿠펙스의 이름을 거론했다)


'최고' 라는 단어는 단기간의 임팩트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온 업적까지 함께 남긴 선수에게 어울리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올해 36살인 페드로 마르티네즈에게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 45살의 클레멘스와 44살의 존슨의 예에서 보더라도 페드로가 이들처럼 못할 이유는 없다. 그는 기교파 투수로 변신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정교한 컨트롤과 뛰어난 변화구를 지니고 있다.


'탐 글래빈 이후로 300승 투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지금 페드로가 기적처럼 부활에 성공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300승을 돌파한다면 그 때는 그의 이름 앞에 '역대 최고' 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 200승을 달성한 페드로는 3000탈삼진(역대 14번째)에 단 두 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덕분에 이번 페드로의 복귀 등판은 축제가 될 전망이다. 그 축제가 계속 이어져서 다시금 페드로가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우뚝 설 수 있을지는 그 자신에게 달렸다.


라이벌 애틀란타가 마크 테익세이라를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에 열을 올리는 동안 메츠는 페드로를 기다리며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페드로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복귀한다면, 많은 팬들이 바라는 것처럼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두 주역인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커트 쉴링이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맞대결 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찬호로 시작된 메이저리그 열풍이 한국에 불어온 그 시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가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의 '작은 거인'으로 남아 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섞인 가운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만한 투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글쓴이 블로그 : http://blog.daum.net/pridekhs


  꽤 예전에 프리챌 쪽의 대학야구동아리 연합회 커뮤니티 쪽에 심판섭외 건이 언급되었을 때 작성했던 글입니다.
  그쪽에 그냥 놓아두고 방치하기에는 지금도 제 자신에게 생각할 바가 여럿 느껴지는 바가 있어 제 블로그에도 옮겨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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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이곳에 글을 끄적여 보는군요. 뭐 이제 기억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되시는지도 모를 일이겠지만요.

 

  모처럼 이곳에 들어와 보니 [예상맨들의 자리] 게시판에 2006년도는 심판을 섭외해서 쓰는 것이 어떻느냐는 글이 올라왔더군요. 그리고 그에 대한 댓글들에서 여러 견해들을 볼 수 있었고요.

 

  그런데 그 본문을 쓴 분의 비용산정을 보니 심판아카데미 쪽의 심판비를 생각하신 것인지, 아니면 서울권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진 지역의 심판비용을 산정하신 것인지 상당히 거리감이 멀게 느껴지네요. 제가 소속되어 있는 [국민생활체육 야구연합회](솔직이 간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간판이 있는 심판 중에도 자격미달인 이들도 분명 있다고 보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분들 중에도 뛰어난 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물론 개인자격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동료들과의 절차탁마하는 과정이 적다 보니 기량의 유지가 쉽지 않은 어려움은 있겠죠.)의 경우는 그 글에 씌어진 비용보다 높은 비용이 요구됩니다. 일요일의 거의 하루 종일을 나가서 있어야 하는데 따르는 체력부담에 차량이동자의 경우 발생하는 소요비용 등을 고려하고 단순한 일용직 노동자의 개념이 아니라 남들 쉬는 휴일에 쉬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플레이에 대한 재정을 내려야 하는 일의 특성 상(즐기니까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면 이젠 인상이 좀 찌푸려집니다. 양해하시길) 경기 중 불거질 우려가 있는 시비에 휘말리며 -- 열심히 하는 이들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죠 -- 스트레스를 만방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적은 비용에 그러고 싶은 이들은 거의 없겠죠.

 

  서울권에서 활동하는 다른 조직의 심판부들도 큰 차이는 없다고 보입니다. 오죽하면 고교 전국대회의 시도지부 예선, 그 중에 서울시 예선을 관장하는 대한야구협회 산하 서울시 야구협회 심판부에서는 사회인야구를 진행하다 시달리게 되는 판정시비에 대한 고충까지 일정부분 비용으로 환산해서 리그 측에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말 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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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도, 아니 거의 매해마다 불거지는 심판에 대한 불만들에 대해 저도 거의 매해마다 끄적여 온 내용을 또 끄적여야 겠군요. -- 이 점이 얼마나 현재의 동아리 야구계의 헛점을 잘 보여주는지 알아 두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비용을 들여 외부 심판을 초빙하는 것도 동아리의 재정 상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아리 구성원 대다수에게 제대로 된 규칙 교육과 심판으로 경기에 투입되었을 때 어느 정도의 자질과 노력, 성의를 보일 이들을 키워 내야 한다는 것 말이죠. 항상 써 왔던 이야기이지만 한 해만 지나면 다 지나가 버린 기억이 되어 버리고 다음 시즌이 되면 또 전년도의 상황을 전혀 전달받지 못한 이들과 또는 신규 가입 학교의 구성원들이 "속된 표현으로 깽판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을 보면서 근 10년 가까이 졸업 후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의 심정으로 애가 타는군요.

 

  지적하자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또 나오게 될 테고, 자칫 쓰다가 감정에라도 휘말려 버리면 그 대상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비난글이 될 우려가 있기에(이미 그런 우려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기억에서 상세한 사례를 끄집어 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지만, 부탁드리건대 심판을 내보낼 이에게 "기본적인 요령" 과 "금기사항" 및 "주의사항"을 숙지시켜 내보냈으면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이젠 지치려고 하네요. (도대체가 몇 년 째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안 바뀌는 걸까요?)

 

  만약 제가 지닌 과거의 기억에서 상세한 사례를 언급하길(설령 그 사례로 욕먹을 이가 있다 한들)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개선을 원한다면 기존의 폐해에 대한 뼈아픈 자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니 그러한 부분에 대해 혹시 마음에 찔려 할 분이 계시다면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는 일일테죠. 만약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저 "외부심판을 쓰지 않고 내부에서 소화할 경우" 에 대해 보다 더 신중하고 성의있는 공부를 통해 심판을 보도록 학생들 내부의 자정 작용이 있었으면 합니다.

 

  [경기결과]를 보면서 그저 심판을 본 학교의 이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만 글을 남겨놓는 것이 그들이 결코 그 경기에 대한 성의있는, 제대로 된 판정과 경기운영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간의 경험(얼마 안 되지만) 을 통해 대략 짐작을 합니다. 이는 현재 동아리들의 구성원 중 일부인 선수출신인 사람들도 벗어날 수 없는 비판이 되겠죠.

 

  글이 적잖이 격해진 듯한 느낌이군요. 미리 사과드립니다.

  비나리 님의 블로그 글을 읽고 "과연 대통령이 직접 쓴 글은 어떤 것일까? 정녕 그렇게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 글일까?" 하는 심정으로 청와대 사이트에 들어가서 퍼옵니다. 분석의 틀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일이길 바랄 뿐이라죠.(읽을 시간이 있을까의 문제도 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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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요즈음 소설을 읽거나 TV드라마를 보면서, 아내에게 “작가는 참 좋겠다.” 이런 푸념을 곧잘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비판이나 논쟁을 보면서도 역시 ‘학자들은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학자는 말하는 사람이고, 집권한 정치인은 실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제약이 없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논리구조의 제약은 있겠지만, 현실을 해석함에 있어서 현실의 중요한 변수를 외면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온갖 가정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을 하는 사람은 상황의 제약을 단 하나도 도외시 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가정을 동원할 수도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장기적인 전략으로, 또는 의제화·담론화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당장의 가능성이 낮은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합니다.

  신문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분들 간의 논쟁을 보면서 난감함을 느낍니다. 사실에 대한 인식이나 논리 모두 할 말이 있으나, 논점이 너무 많고 어려운 전략논리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서 일일이 반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저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몇 가지 의견과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고시합격을 위해 유신헌법을 공부했습니다. 한때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유신헌법 책을 쓴 학자들도 민주주의의 원리에 관하여는 소상하게 써놓아서, 민주주의를 받치고 있는 상대주의 철학을 접할 수는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일생동안 저의 생각을 지배하는 철학이 됐습니다. 저는 이것을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신과 5공은 저에게 새로운 사상에 접할 기회와 방황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 변호사시절, 단지 정의감만으로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많은 사회과학분야 서적과 자료를 접하게 됐습니다.
  물론 심오한 이론이 담긴 원론서도 접하기는 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종속이론, 사회구성체이론, 민족경제론,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5.18 광주 이후 계속된 당시의 숨막히는 현실이 이런 이론과 유사하다는 점에 동의하여 비타협적 투쟁을 실천도 하고 주장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도 젊은 대학교수들을 모셔서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이니,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이니 하는 이론적 조류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버리려 한 일도 있고, 89년 전민련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거기에 은근히 기대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현실은, 우리가 읽고 말하던 이론이 예언했던 방향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외채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했던 우리경제는 이를 극복했고, 87년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4배의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하며 격차를 줄이고 있었습니다.

  진보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개방으로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우리경제는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했습니다. 이제는 2만불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급속한 구조조정과 97년 외환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정책으로 교정할 문제이지 시장경제원리나 세계화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민주진영은 단결을 내세웠지만 작은 차이로 분열하는 일도 많았고, 대의를 내세웠지만 이기주의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들어왔던 논리가 틀렸거나 현실이 논리를 배반한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저는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체계적으로 정연한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논리에 빠져 현실에 맹목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해 왔습니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상체계의 완결성을 신봉하거나, 현실을 사상과 논리체계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보진영이라 하여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아무 지적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이름을 걸고 도와주다가 ‘그것 맞느냐’고 물으면 ‘그냥 이름만 걸어준 것’이라고 변명하는 무책임도 옳지 않습니다.

  참여정부가 민심의 지지를 잃은 책임을 묻는다면 저는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아무 한 일도 없이 국정에 실패만 했다고 한다면,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따져보자고 말합니다. 참여정부 때문에 진보진영이 망하게 생겼다고 원망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얘기입니다. 진보진영 스스로 전체를 돌아봐야 할 일은 없을까요.

  참여정부에 진보적 정책이 없다는 비판도 사실이 아닙니다.
  참여정부 동안에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맞습니다. 저도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과거 외환위기와 가계부도라는 경제적 위기에서 심화된 것이고 참여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4년 동안 재정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이 20%에서 28%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어느 정부보다 빠른 속도입니다. 그리고 지방재정에서도 복지예산을 31%에서 36%로 늘렸습니다. 이것 역시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재정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은 유럽국가들과 비교해 절반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 정부의 공공서비스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공공서비스로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못하면서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복지지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민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을 2020년까지는 현재의 미국·일본 수준으로, 2030년까지는 현재의 유럽 수준으로 높이자는 ‘비전 2030’도 이전에 없던 국가 장기발전 계획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는 저출산·고령화·양극화가 계층간 부문간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방치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비전 2030’ 미래전략입니다. 이것은 혁신주도형 경제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사회투자를 통해 동반성장을 추구하자는 전략입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에서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가졌는지 의문입니다. 진보가 진보다우려면 미래문제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용산 미군기지가 서울을 떠납니다. 진보진영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일부는 평택기지 건설을 반대해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고, 이를 지원했습니다. 주한미군 나가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고 가능한 일입니까. 국제정치의 현실도 현실이지만, 국내 사정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입니까. 진보진영이라고 다 미군철수를 타당하다고 생각합니까.
  앞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단지 상징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든 평상시든 남북관계나 대외관계 등 한반도 문제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일입니다. “노 정권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었다”는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특권을 누리는 국가기관은 지금 없습니다. 권력이 합리화되고 정경유착이 끊어졌습니다. 정치와 권력뿐만 아니라 시장과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졌습니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확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도 해소되었습니다.

  언론권력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권언유착의 근절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언론의 행태도, 언론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끝나면 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일부 언론권력도 참여정부에서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을 것이나, 이후에는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하다가는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참여정부 동안에는 ‘앞으로 계속 그래서는 곤란하다’는 학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불만을 가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떻든 이것은 이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보기에는 이 모두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까?

  이라크 파병, FTA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실은 인정합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것이, 지식을 가지고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지역주의가 별 문제 아니다’거나 ‘일부 언론권력, 정치언론의 횡포가 별 것 아니다’는 논리까지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는 지금도 지역주의, 언론권력과 싸우고 있을 뿐, 책임모면이나 ‘알리바이’를 위해 지역주의나 언론 이야기를 한 일은 없습니다.

  참여정부가 진보진영의 비주류라서 실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오래전 저는 어느 모임에서 진보진영의 학자 한 분에게 “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 분은, 그 때 “그럴 것”이라고 상당히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런 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려운 처지의 저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일부 정치언론이 말하는 그런 좌파도 아닙니다. 저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무슨 사상과 교리의 틀을 가지고 현실을 재단하는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개방도, 노동의 유연성도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효용성의 문제입니다.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하는 방향으로 가는 시대의 대세는, 중국의 지도자들도 거역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런 마당에 개방을 거부하자는 주장이나 법으로 직장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난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입니다.

  비판 가운데엔 ‘진정성’이라는 말과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까지 시비가 돼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엉뚱한 오해입니다.
  청와대는 정권에 대한 평가에 대해 책임회피를 하자고 진정성이라는 말을 쓴 일은 없습니다. 개헌이 정략이니 아니니 하는 논쟁의 와중에서 누군가가 진정성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청와대도 이 말을 따라 쓴 모양이나, 이것을 가지고 청와대가 진정성을 내세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고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우스개 표현마저 심각한 논란이 되는 현실은 비극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한 것은, 참여정부를 굳이 교조적인 이념의 틀에 가두어 놓고 두드리려는 의도로 한 쪽에서는 ‘좌파정부’라 비난하고, 한 쪽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하는 상황이 못마땅하여, 이런 비판을 교조적 논리라고 비꼬아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두고 언론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뜻이냐 묻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바람에 난감한 기분이 든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학자들마저 이 말을 정색하면서 받아들이고 무슨 의미를 붙이니, 입장이 참으로 난처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밝힙니다. 이 말은 참여정부를 교조적 사상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비꼬아서 쓴 말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니 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우리 진보가 달라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필요하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채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유럽의 진보진영은 진작부터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노선은 이런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유연한 진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교조적 진보’에 대응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붙인 이름입니다.

  저 때문에 진보진영이 다음 정권을 놓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정권에 대한 지지가 다음 정권을 결정한다면, 지난번에도 정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저는 다음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도 없습니다. 저 또한 대세를 잡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민주 혹은 진보진영이 성공하고 안 하고는 스스로의 문제이고,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에게 다음 정권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진보진영이 행동하기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진보진영이 무엇을 잘하자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무엇을 잘해서 정권을 잡을 일이라면 참여정부 시대에도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사적 이익을 보겠다는 말이라면 다음에도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거기서 더 나아가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대단히 부당한 논리입니다. 과거의 군사정권과 비교해서 무능하다는 것인지, 다른 나라 민주세력과 비교해서 무능하다는 것인지 기준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비록 민주화 이행과정에 있어서 갈등과 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것은 어느 나라고 할 것 없이 사회변동과정에서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87년 이후 우리나라가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전 세계 사람들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 20여년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민주진영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지지도가 낮다고 하여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대두되는 최근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근거와 논거를 갖춰 이뤄지길 바라는 것과 같이, 민주세력의 공과(功過) 역시 시대적 요구를 중심으로 비교의 기준과 사실적 논거를 갖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민주화와 사회발전 과정에서 생긴 분열과 좌절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 분열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차이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민주화 과정 20년의 한 획을 긋는 나름대로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보람과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진보진영의 논쟁이 서로가 책임을 다하는 범위 안에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냉정하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2007.2.
대 통 령 노 무 현
교사도 우울하다.
유영미 (고교 교사) / 녹색평론에 실린 글



25년 전 내가 첫 발령을 받을 때만 해도 남학생들은 교직을 탐탁해 하지 않아 다른 데로 진출할 만큼 교직은 보수도 짜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천직(賤職)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서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위태로워지고 고용불안이 일반화되면서 교직은 안정적이고 보수도 괜찮은 직업으로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더니 급기야 철밥통이라는 아주 조소어린 명예(?)까지 얻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산업 분류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선생님을 서비스산업 종사자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참 당혹스러운 때가 있었다(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되고 말았지만) 교육 인적 자원부라는 말처럼 모든 걸 경제적 시각으로 표현하는 자본주의적 발상의 천박함을 그 땐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긴 했었다

그러더니 이제 아이들 앞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보고 철밥통이라고 하고 아이들이 제 선생을 고발하는 걸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란다

물론 교사들이 그 권위를 이용하여 교활하게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 학부형과 아이들에게 저질러 온 비인간적 폭력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고 사라져야 하겠지만 그 방식이 기껏 아이들 앞에서 교사를 모멸적으로 짓밟아놓는 길이었다니......

무엇보다도 그렇게 될 경우 교사가 받는 상처보다 아이들의 영혼이 일그러지며 생기는 상처가 훨씬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 것일까.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과 다를 게 무엇이랴

그러나 사실 요즘 교사로서 나를 가장 우울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종철 선생님이 환경파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경제성장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라고 자주 걱정스럽게 얘기하시곤 하는데 실제로 학교에서 무섭게 변해가는 아이들을 두렵게 지켜보아온 나로서는 그것이 단지 노파심에 의한 걱정이 아님을 안다

해마다 2월이면 새로 상급학교를 배정받은 신입생들이 등록을 하러 학교에 온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는 그 아이들은 낯선 곳에 들어온 이가 가지는 수줍고 조심스러운 낯빛을 하고 화장실을 물어보거나 했다. 아이고 이놈들 또 나랑 한참 싸우고 정들 놈들이구만 이런 생각으로 그 귀여운 모습들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풍경은 접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예비소집으로 학교를 구경하는 건 똑같지만 그 놈들이 예비신입생인지 그냥 다니던 재학생인지 구별이 힘들어질 정도로 처음 와보는 학교를 마치 제집 안방인 것처럼 휘젓고 다니며 아무 경계심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학교 후졌다고 흉보고 하는 아이들만 발견될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면서 아이들의 변화가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사오년 전부터는 아이들을 볼 때면 외계인들 속에 내가 끼어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분명히 같은 한국 사람이고 같은 한국말 쓰고 그러는데 대화가 겉도는 것 같은 느낌, 내 얘기가 저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 앉지 않는다는 느낌, 도대체 언어의 공유는 되나 정서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 느낌의 원인이 무얼까 하고 혼자 당혹해 했다

복도를 지나쳐 갈 때 아이들의 인사를 받다보면 (물론 고개 숙이는 애들 거의 없지만) 간혹 아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을 때도 웬지 백화점에서 절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마네킹처럼 기계적으로 고객을 향해서 필요이상의 예의를 차려 인사하는 백화점 점원들의 인사처럼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몇 마디 말이 다이다

자신의 점수를 쥐고 있는 선생에 대한 계산된 예의 차원에서 나온 인사이기 때문이라 그럴까? 쾌활하게 큰 소리로 인사는 하지만 녹음된 것 잠시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뿐이다. 간혹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이 묻어나는 인사를 받으면 정말 고맙다(사실 이게 선생 하는 맛인데. 힘들어도 선생 하는 건 애들 예쁜 맛 그거 하난데 말이다)

더욱이 학년이 바뀌고 더 이상 수업에서 만나지 않게 되면 아이들은 요즘 말로 거의 완벽하게 생깐다(모른 척 하고 무시한다)는 것이 여러 교사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아는 아이를 발견하곤 반가움에 내 얼굴 표정이 웃음으로 바뀌려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애들 앞에서 느끼던 그 당혹스러움이란......

물론 이런 현상이 이 학교의 지역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으나 곧 다른 지역으로도 서서히 퍼져 갈 것이 분명해 보이니 걱정이다

한편으론 어쩌면 이 아이들이 엄마들의 영향을 받아 교사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래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좋겠다. 단지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집단을 향해서만 그러는 거라면 기분은 더럽지만 그래도 안도의 숨을 내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현재의 학교에서는 일단 학생들에게 신뢰 얻으려면 수능 점수 잘 나오도록 수업을 해야 하고 담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시정보의 전달과 자율학습 감독을 확실히 해주는 것이 최고다 아이들은 교사한테 예전처럼 인간적인 이해, 친밀함 같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걸 요구한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한테 담임하면서 통제보다는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개인면담에 더 중점을 두고 아이들을 지도해 왔고 여전히 그 소신은 변함이 없다

지나간 고등학교시절 아침에 등교하여 엷은 아침햇살이 비쳐드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자유롭게 얘기하던 시간이 나는 참 좋았으므로 교사가 된 다음에도 아침부터 담임이 인상 쓰고 교실 앞에 딱 버티고 앉아 스트레스주기보다는 나처럼 자유롭게 아침을 시작하게 하고 싶었다

교장, 교감으로부턴 늘 싫은 소리 들었으나 사실 별 거 아닌 내 소신은 변함없이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지켜져 왔었고 아이들과 잘 지내왔었다

그러나 재작년에 나는 담임 일을 중도하차하는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감독하지 않는다는 교장과 학부형들의 비난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일부이긴 해도 아이들마저 아침시간의 느긋한 자유를 맛보게 해주려는 나의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효과적인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담임 사직 인사를 몇 마디 하고 교실을 나오는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는 안심했다. 아이들이 아직 살아있구나

슬픔이란 걸 못 느낄 것 같은 애들이었는데 그래도 예전처럼 이런 일로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게 그나마 고맙고 위안을 주었다 물론 담임을 그만둔 실제의 가장 큰 이유는 건강상 담임 일을 계속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내 편이 아니라는 충격은 이제 더 이상 나 같은 교육철학 가지고는 아이들 맡는 게 곤란해지게 되었다는 우울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침이면 잠이 부족해 충혈된 눈으로 등교하는 애들이 너무 안스러워 학원과 독서실을 강요하며 잠도 못 자게 매섭게 몰아대는 엄마가 밉지 않냐고 농담처럼 물어보니 아이들은 무슨 말씀이냐며 엄마가 너무 고맙단다 오히려 엄마가 자기를 통제해 주지 않을 경우 비난이 나오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정서이다 방학에도 학원에 붙잡혀 있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천만의 말씀.

요즘 애들한텐 학원 안 보낸다고 하는 것이 꽤 효과적인 협박용 멘트가 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근원적으로는 불행한 아이들인 거 맞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억압당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얘들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니 억압을 억압이라고 느끼지조차 못하는 그 정서가 진짜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지난 해에 내가 맡았던 지리과 교생은 지금 아이들의 10년 선배여서 더욱 더 아이들과의 대화를 기대하며 그들과 가까워지려 애썼는데 기대대로 되지 않아 당혹스러워했다 예전 같으면 학교 안에서 교생선생님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아이들은 교생한테조차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달라진 점이 많아졌다는 고백도 내게는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자신의 고교시절에는 부모와 진로문제로 마찰을 빚어 갈등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는데 지금 애들에겐 그런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부모가 지목하는 길로 (현실지향적인 출세 성공의 길) 아주 순순히 부모 자식 사이에 의견일치가 이루어져 그 험난한 입시지옥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 때란 이제 유아기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 들어가게 되고 이상을 더 추구하는 시기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감각은 부족해서 냉정한 현실적 기준을 가진 기성세대와 충돌하는 게 한 인간의 성장에서 필요불가결한 과정 아닌가? 그러나 그런 사춘기의 반항은 이제 사라져버리고 있다

지금 아이들에겐 인생에 대한 고민 같은 건 할 시간도 여건도 안되거니와 현실적으로 원하는 건 풍요로운 소비가 최고이고 이를 위해서는 좋은 직장 가지는 게 필수적이니 돈 많이 버는 직업 원하는 부모의 바램에 아이들이 반항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생이나 되는 아이들이 날이 갈수록 마마보이, 마마걸들로 자라 학교에서도 교사가 옆에서 지켜봐줘야만 안심하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출세에 눈이 어두워 진짜 행복이 뭔지 생각도 못하고 남들한테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물불가리지 않는 엄마들까지는 그 욕심으로 보아 이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저 자식세대가 남보다 많이 가진 자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단순무식한 욕심일 것이고 그런 욕심이야 언제나 있어오지 않았는가

이태백 얘기가 큰 과장이 아닌 현실에서 절박함을 느낀 부모세대가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악다구니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볶아치는 건 그래도 납득이 가는 정서다 그런데 그럴 경우 아이들은 거기에 절망하고 반항하고 몸부림쳐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나 한참 꿈을 갖고 자유를 열망할 나이에 부모와 짝짜꿍이 되어 현실적인 목표에 얄미우리만치 자신을 갈고 닦는 이 아이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진짜 무서운 일 아닐까? 이런 일들은 인간의 품성이 가지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 각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적이며 그것은 모든 이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하는 개인주의가 바람직한 덕목으로 되어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원자화된 개인이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개인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며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속의 개인 또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훨씬 더 현실에 부합되는 말일 것이다 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교감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과연 그 속의 개인이 혼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좀비 같은 인간들, 영혼이 없는, 계산만 할 줄 아는 인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일은 끔찍하다

근대의 개인주의와 기술의 진보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지적처럼 수공예의 퇴보를 불러오고 그에 따라 생활의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것에서만 그친 게 아니라, 더 무서운 파괴,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파괴를 불러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장주의 원리가 모든 삶의 부분에 침투하여 인간관계마저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거래되는 상업적 성격을 띠어가고 있고 기술 진보에 의해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는 인간관계도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디지털 카메라나 컴퓨터가 그동안의 흔적을 순식간에 삭제해버리는 것처럼 잠시 존재했던 인간관계도 금방 냉혹하게 폐기처분되는 무서운 현상이 실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점점 사람들의 도덕성 자체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악한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도덕성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 이동하게 될 것 같다 부모나 지인을 죽인다는(거의 돈 때문에), 예전엔 경악의 대상으로나 여겨졌을 범죄행위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로 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신경쓰며 예전에는 비난받을 짓이었던 타인에 대한 무관심, 외면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비교적 도덕적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적극적으로 남을 해치거나 하지 않을 정도의 단계에 머무를 뿐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는 다른 생물체와 따뜻한 교감을 나누면 행복을 느끼는 감성이 있을진대 이런 원초적인 감수성을 사회적 조건화에 의해 억압당하는 인간들이 과연 자기의 껍질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할까 의문이다

얼마 전에 본 황석영 원작의 7,80년대 운동권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사회운동으로 오랜 세월을 감옥생활을 하고 나온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삶을 회한에 잠겨 이렇게 얘기한다

'그땐 나 혼자 행복하면 나쁜 놈인 줄 알았어, 바보같이.'

나는 이 ‘바보같이’라는 마지막 말에서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감독 입장에선 지나간 시대의 그들의 그런 삶은 확실히 삶의 낭비였고 바보같은 짓이었지만 그들의 그런 삶에 애정을 갖고 껴안아야 한다고 말하려 한 건 알겠는데 내겐 오히려 감독의 한계가 엿보여 씁쓸했다 하긴 감독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대사에는 요즘 우리사회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들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익은 소홀히 하고 상관없는 다른 이들의 일에 힘을 바치는 그 바보같음이야말로 단순한 생존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는, 오직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 아닌가 나 혼자 행복하면 나쁜 놈인 것 같은, 이런 마음으로 평생 살아간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알고 산 사람이 아닐까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삶의 태도로 서로를 걱정해가며 기대고 살아가는 게, 각자의 오만함으로 이루어진 사회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회 아닌가 나하나 행복한 게 최고라는 인간들 틈에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면 그건 거의 지옥 수준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랫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늘 수수께끼같이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이 죽은 교육을 왜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교과서와 밀폐된 교실과 교사의 주입식 수업에 의한 완벽한 죽은 교육을 아무 흥미없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죽어라고 집어넣으려 애쓰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정말 이해가 안갔다 누군들 이게 말도 안 되는 죽은 교육이란 걸 느끼지 못하겠는가?

사회 전체적인 구조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아이들에게 산 교육을 시킬 수 있을 텐데도 왜 이렇게 아까운 예산과 시간을 어리석게도 낭비하며 이런 쓰레기같은 교육을 고집하는가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시스템 속에서 죽은 교육을 날마다 하고 있지만 나라 전체가 바보짓을 열심히 하고 있다니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다

그러나 이젠 그게 사실은 계산된 바보짓임을 느낀다 이 사회의 지배계층들에겐 지금의 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바로 이죽은 교육이었던 것이다 사고가 자유로워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볼 줄 알며, 자신보다 공동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으며, 자신의 이익추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소비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인간형이 사회에 많이 배출된다면 현재의 이 체제는 영락없이 붕괴해 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현사회의 지배적 통념에 저항하며 참교육을 내세우는 전교조를 현재의 5적이라고 꼽은 것은 아주 정확한 지적이었다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적당히 멍청한 생각없는 좀비형의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완전히 죽어있으면 일을 부려먹을 수가 없고, 완전히 깨어 있으면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들을 눈뜨고 볼 수 없으니 그것들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날 게 뻔한 것이다 그러니 이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인간형, 즉 적당히 일은 시킬 수 있을 만큼 기능을 갖춘, 그러나 사회의식이나 타자들을 볼 수 있는 시각 같은 건 갖추지 않은 그런 인간을 충실히 키워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제도교육인 것이다

요즘은 거기서 더 나아가 소비를 통한 자신의 과시를 제일 과제로 삼는 인간형이 만들어져 기업의 요구를 충실히 채워주고 있는 지경이다 이렇게 아주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잘 수행해온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왜들 이럴까 하면서 혼자 끙끙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뿐이다

이 사회는 내 걱정과는 달리 원래의 의도대로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던 거다 그나마 그동안은 제도교육이 아무리 인간을 완벽하게 개조하려 애써도 인간을 죄는 지배이념의 작동방식이 그런대로 느슨했고 그동안의 사회가 지닌 문화의 힘에 의해 나름대로 그 벽을 허물고 제도교육이 의도하지 않은 인간형이 여기저기서 사회운동세력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서 지나간 시대의 모든 문화전통들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예전처럼 감옥에 가두고 협박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압살할 수 없었지만 물질의 풍요 앞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품성들은 그만 맥을 못추고 허물어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소비주의가 극에 달한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이제 정신을 잠들게 하는 데에 이보다 더 특효약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약발이 좋은 방법인 물질적 풍요 속에 파묻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제도의 측면에서는 아이들을 사회문제에 눈 돌리지 않고 잘 순응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한참 인생의 방향을 모색할 나이에 입시와 취업으로 꼼짝 못하게 묶어놓는 좋은 방법이 있다

거기다 소비생활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남들과의 권력구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영혼이 빈 아이들을 길러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런 사회를 원하는 쪽에서는 춤이라도 추고 싶어 할 것 같다 제도적 공교육이 결국은 지배층의 이익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면 이제 진정한 교육은 공교육에선 기대할 수 없음이 내겐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막강한 공교육체제,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는 대중매체들, 이기주의에 빠진 학부모들의 파워, 이런 것들로 끊임없이 포화를 맞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른 길을 보여준단 말인가 다만 그동안은 이 틀 내에서도 즉 교육부, 교과서, 학교단위의 교장의 지시, 그리고 학부모들의 성화 속에서도 아직 기존 체제의 세례를 확실히 받지 않은 아이들이 나의 편이 되어 주었기에 그런 대로 교사 개인의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이 지배적 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전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아군이었던 아이들마저도 이제는 기존 체제의 입장을 제 것으로 하고 오히려 더욱 무서워진 소비문화의 첨병으로 자라고 냉혹한 이기주의의 화신으로 변하여 교사에게 입시서비스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교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만 있는 것이다

인클로져 운동 당시의 사람들이 토지를 개인 소유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듯이,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땅을 팔라는 백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듯이, 어쩌면 이제 새로운 인간형이 바야흐로 탄생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같은 구시대의 인간들은 그들을 어이없어하며 바라보고 그들 또한 우리의 당혹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변화가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어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감 잡을 수가 없지만 어쩌면 인류역사는 이미 한 곳으로 방향을 틀고 나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안타까운 시대에 학교현장에 서서 달라지고 있는 아이들을 한해한해 지켜보며 그들의 무서운 변화를 이 사회의 누구보다도 앞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교사에겐 요즘 우울한 때가 자주 찾아온다 지난 해 어느 땐가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로 인해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바깥의 나무라도 좀 보기 위해 창가 쪽으로 다가가니, 창틀엔 아이들이 뱉어놓은 가래침이 질펀하니 고여 있었다

그날 나는 정말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다




출처 :
http://cafe255.daum.net/_c21_/bbs_read?grpid=17Lyi&mgrpid=&fldid=D5FC&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N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23
  내부고발자, 분명 조직 내에서는 "배신자"로 치부될지언정 사회 공익을 위한 그들의 행동에 우리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진대 여전히 우리 모두 과거의 인습에 젖어 그러한 긍정적인 기능을 저버리려 하는 느낌에 괜한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물론 이상호 기자의 경우 그런 자료를 입수, 유통(프로그램 방송)시킨 인물이니 100% 내부고발자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람의 행동마저 싸잡아 사회적 매장을 시키려 하는군요.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라온 글을 불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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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민주헌정 파괴 쿠데타'
'X파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이상호 MBC 기자의 'X파일' 상고 이유서
텍스트만보기   이상호(GOBALNEWS) 기자   
2005년 여름, 'X파일' 사건을 보도해 큰 파장을 일으킨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06년 8월 11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3일 열린 2심에선 유죄가 인정돼,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과 형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29일 이 기자가 X파일 보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상고이유서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 이상호 MBC 기자가 2005년 8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조사에 응하는 입장을 밝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법원 최고의 경륜가들이신 대법관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MBC 기자 이상호라고 합니다. X파일 사건 관련 피고인입니다.

그럼 상고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재판 결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기소 자체를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심 판결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우리 법원이?' 그랬다가 2심 판결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특히 판결내용 중 기소되지도 않은 다른 언론 보도까지 싸잡아 유죄라고 '선언'해 버리는 대목이 아주 박력 있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유죄라도 괜찮습니다. 보도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각오했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고맙지요.

주제넘게도 저는 법원이 걱정입니다. 이따금 상식에 반하는 판결로 법원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법원을 다음 세대는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요. 저야 제가 보도한 X파일 내용을 상기시키고자 상고하게 되었지만, 대법관님들께서는 법원 신뢰 회복을 위한 천재일우의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X파일'이 시민이 알 필요 없는 사안인가요?

재판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관계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대신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특히 2심 재판부와는 달라도 보통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국민들도 큰 시각차에 깜짝 놀랐고요.

이른바 X파일은 '삼성그룹이 수백 억 원대의 뇌물을 정치권과 검찰 등에 살포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한 모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 모의는 상당 부분 실제 이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 모의를 '민주공화제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쿠데타적 범죄행각'으로 보고 '시민들이 알 필요가 있다' 싶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X파일의 모의 내용이 '국가질서에 직접 영향을 미칠 만한 일도 아니고, 그저 부끄럽고 추잡한 수준의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알 필요가 없는 사안'으로 봤습니다.

사실을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사소한 부분까지 견해가 엇갈립니다. 이를테면 저는 X파일 내용을 현재진행형으로 본 반면, 2심 재판부에겐 이미 지난 '과거의 일'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일견 법리 공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의식의 경합입니다. 공동체의식의 경합입니다. 대법관님들의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바쁘신 대법관님들께서는 이제 그만 읽으셔도 됩니다. 여기까지가 제 법률적 상고 이유거든요.

고발기자질의 대가로 법원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절감하게 됐습니다. 소송과잉, 판결만사! 세상 모든 진실을 법원이 재단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재판관들의 어깨가 너무도 무거워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자신들의 모든 책임을 법원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석궁 테러' 사건도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진실 회복의 일차적 책임을 대학 스스로 다하지 못하고 법원에 떠넘겨 생긴 일 아닙니까. 화살은 법원이 맞았지만 대학이나 언론, 어느 누구도 그 화살촉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법복을 입은 재판관들을 보며 문득 방탄복을 입은 우주인 모습의 폭발물 처리반원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얼까요. 모두 대화 박스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법원 담벼락 너머로 투척하고 있습니다.

다 우리 사회 윤리 자산이 부족한 탓입니다. 공동체 내 합의를 통해 이견이 통합되고 잘잘못이 가려지는 것이 옳습니다. 사회에 어른도 없고 축적된 가치가 없으니 저마다 제 관점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툽니다. 신문은 한 줌 사주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인터넷엔 저주의 주문들이 종양처럼 증식되고 있습니다.

세계 11위의 부국이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공동체의 가치가 너무도 결핍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제 역할을 못하고 젊음은 쉬 시들어갑니다. 상식의 회복이야말로 마지막 보루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상식에 입각한 제 상고 이유를 잠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언론개혁국민행동이 2005년 8월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이 옛 안기부 불법도청테이프를 공개한 MBC 이상호 기자를 출두하도록 한 것을 규탄하고, 이건희 삼성 회장 및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판사님들은 테러계획 담긴 도청테이프, 못 본 척 하실 건가요

X파일의 진실은 법원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멍에였습니다. 사회적 규탄이 책임 있는 자의 무릎을 꿇리고 잘못을 고백하게 하면 의외로 손쉬운 용서도 가능했습니다.

2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법원의 보수적인 판결,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청이 나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길을 가다 도청 테이프를 주웠습니다. 들어보니 납치범들이 옆집 딸아이를 납치할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나쁜 테이프니까 테이프를 그대로 길바닥에 버리고 와야 합니까?

대법관님들께 묻습니다. 그게 상식적으로 옳은 일입니까? 만일 제가 도청을 한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납치가 인륜에 반하는 일이라면, 길에서 주운 테이프라 '찝찝'하기는 하지만 옆집 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상식에 맞는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한 재벌그룹이 수백 억 원대의 뇌물을 정치권과 검찰 등에 살포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했고 또 실제 그렇게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면, 그것은 납치와 같은 중대한 범죄혐의입니까 아니면 보호받아야할 사적인 대화입니까?

프라이버시 보호는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입니다. 누군가 민주공화제를 뒤엎는 모의를 실행한다면 우리 모두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민주공화제의 납치범은 처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원한다면 이것이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2심 재판부는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만일 김명호 교수가 '석궁 테러'를 기획하는 내용을 누군가 녹음해서 법원행정처에 제보했다면 법원행정처는 그때도 한가하게 독수독과(毒樹毒果)를 주장만하고 계실 겁니까. 의당 박홍우 부장판사에 대한 경호조치를 강화하는 게 상식 아닙니까.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부랴부랴 테러방지 대책에 나선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 검찰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구조본부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05년 12월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과거지사라니요, 아픈 가시는 어서 뽑아야 합니다

2심 재판부는 또 X파일의 내용이 '과거'의 일이라서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도 판시했습니다. 순간 문민정부 시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의 몰상식이 생각나더군요. 유감스럽게도 한번 덧칠된 몰상식의 때는 쉽게 벗겨지지 않습니다.

환자의 발바닥에 가시가 깊이 박혀있는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과거'에 박힌 가시니 빼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 X파일 속 범행이 실제 실현되는 바람에 민주공화제가 흔들리고 있고 여기저기서 '이젠 삼성공화제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가 유린되면 서민들이 먼저 다칩니다. 국민들 가슴에 박힌 가시는 점점 더 깊이 파고듭니다. 정작 가시를 박도록 지시한 사람은 한국 경제를 더욱 굳건히 장악해나가고 있고, 가시의 운반책은 언론계 수장으로 복귀했으며, 가시를 박은 사람들은 정치권과 관계의 중진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일이라니요. 아픈 가시는 빨리 뽑아내야 합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3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었지만 인혁당 사건은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던 우리 모두 마음속의 가시였습니다. 하나하나 가시들이 뽑혀나갈 때 우리 사회는 그만큼 상식에 접근합니다.

꼭 상식대로 법이 가는 것은 아니라고요? 당장은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상식이 몰상식의 법리를 몰아낼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도 아니겠지요.

저 역시 제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렇게 제 위치에서 이렇듯 주장할 따름입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저 역시 큰 기대 않겠습니다. 다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한번쯤 찾아봐주십시오. 상식의 손수건을 말입니다. 구겨진 채로 지금 어느 두꺼운 법전 밑에 깔려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죽으러가는게 아니야..내가 살아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가는거야.

- 카우보이 비밥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냐!?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스프를 먹었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 원피스




사람은 무언가의 희생없이 아무것도 얻을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위해선 대등한 대가가 필요하다

그게 연금술의 등가교환의 법칙 그시절 우리들은 그게 세계의 진실이라고 믿고있었다

- 강철의 연금술사 中 알폰소 에릭의 말



나에겐 꿈이 없어...그렇지만 꿈을 지키는 건 할 수 있지

- 가면라이더 555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그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그것이 진실

-바람의검심-



세상에 악한 사람은 없어 단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갈 뿐이지

- 열혈강호, 한비광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얻는다

- 아르미안의 네딸들.





내전력을다해 널 거부해주겠어~

- 바토르로와이야르




레이서가 머신에서 내리는것은 체커기를 통과했을때뿐이다

그것이 설령 슈퍼콤마퍼센트라도 그가능성에 도전을 걸고 가는것이다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 사이버 포뮬러 더블원 나이트슈마허에게 카자미하야토가




설령 가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도 믿고 소중히 여긴다면 사랑은 생겨날까?

- 나나中




날지 않는 돼지는 평범한 돼지일 뿐이야..

- 붉은돼지 中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 판 감마 비젠 (공감)





형태로 남아있든 그렇지 않든, 약속의 중요성은 소중한 것이죠

- 오! 나의 여신님 (베르단디)




엑셀, 일어나세요. 엑셀... 주인공이 벌써 죽으면 안되죠.

- 엑셀사가 (대우주의 의지)




이 세상 어디에도... 길 따윈 없어.

- 영혼기병 라젠카 (아틴)





그 사람은 여기서... 전설이 되어버렸다.

- 상남순애조(오니즈카 에이키치)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일든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 원피스




마리메이아는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전쟁의 슬픈 역사를.

- 건담윙 엔들리스왈츠~히이로





아직은... 세상의 끝이 보이지 않아.

- 법학부의 요한 리베르토



남자는 가슴이 먼저울고 다음에 어께가운다.

그리고 더디게 눈물이 나고 쉽게 마르지 않는다.

- 남자이야기-권가야





자유란.. 저 따뜻한 햇살과.. 지금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

- 미스터부中-미스터부의대사




노력한다고 항상 성공할수는 없겠지..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다는걸 기억해둬

- 더파이팅-





역사는 이를테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왈츠와 같은거올시다.

- 마리메이어-건담W Endless waltz 中





네놈들에게 말해 줄 이름 따위는 없다!!!

- 머신로보 "크로노스의 역습"




나는 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다.

- 슬램덩크




"나는,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배가본드





"나는 한번 내뱉은 말은 굽히지 않아 "

- 나루토





너는 개먹이다.

- 헬싱中 아카도.



자신을 믿지 않는 자는 노력할 가치도 없다.

- 나루토




즐거운 일부터 시작하자.

- 양의눈물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는 악마가 될수밖에 없어

- 카우보이 비밥중 비샤스



정의는 어디에나 있다.

- 나데시코





나는 깨지 않는 꿈을 꾸고있을뿐이야

- 카우보이비밥




우리는 개의 가죽을 쓴 인간이 아니라 사람의 가죽을 쓴 늑대인거야

- 인랑





사람들은 빛을 찾죠.

하지만 그 빛은 자기안에 있는거에요.

그리고 그 빛을 찾으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길 바래요.

우리 아들은 커서 모든 사람들과 빛을 나눌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게 어미의 꿈이랍니다.

- 3X3 EYES




저항할 수 없는 상대에게만 강해지는

이사쿠씨는 어른의 탈을 쓴 어린아이같아.

- 유작 中 미유키가 문에 매달린 고양이 시체를 보며





믿을수있어서 믿는게 아니라 믿게위해 믿는거다..

- 엑스파일



자립이란게 혼자서 하는거니?

그런 자립이란거 난 하고 싶지 않구나."

- 좋은사람 中 기타노 유지




세상이 아름다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넓은것만은 확실해."

- 키노의 여행 中 에르메스




약속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단지 살 기회만 주면 돼는거야.

- 가고일




생존이 정의다.그래서역사는 항상 승자의편견이다

- 프리스트




남자는 조용히 이별하는거다 멍청이들아

- 제프




남자의길을 벗어난다해도 여자의 길을 벗어난다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길 흩어진다면

다함께 저 진짜하늘에 피워보자꾸나 뉴하프웨이

- 봉쿠레




바보에 쓸약은 없다니까!! - 도르돈




등짝의 상처는 검사의 수치다

- 롤로노아조로




순간의 굴욕에 부질없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 작은 용기라면,

굴욕을 딯고 일어서 언젠가 스스로 복수를 하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이건 게임인데..)

- [살라딘-창세기전3파트1-얀의 말 인용]





사랑합니다!

- 침묵의 함대 마지막대사




신은 잊어라! 그는 영원히 방관자일 뿐이다!!

- 프리스트의 베시엘




도망쳐도착한 곳에 낙원이란없다.......

-베르세르크




당신이 나를 구하기위해 존재하듯이 나는 당신을 구하기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 취작 中 에리





"아프지? 봐, 마음이 아프지?" "아파? 아니야, 틀려.. 외로워.."

- 에바23화 레이의 심상세계 ..





"죽음은 우리의 절대적인 자유인거야."

- 에바 카오루




"나는 나, 너는 너다."

- 사이버 포뮬러 더블원中 (신형 Asurada를 제대로 못다루고 벌벌거리는 하야토에게) 카가




인간은 인간을 초월하고..기어는기어를 초월한다..

- 길티기어이그젝스 그남자

언덕은 하늘과 땅을 모두 정복할수 있는곳이니까요

- 스피드 도둑 "테루의 대사"




俺(おれ)は..... 君(きみ)を.....君(きみ)を...... 守(まも)る.(오레와 ..... 키미오....키미오......마모루...)

- 추억편 켄신




무념무상의 거리에 불을 켜자꾸나

- 크로마티 고교-




"태어날때 부터 천재라..시작부터 재미없잖아?"

- 나루토-





가솔린 만땅 잊지마

- intial D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 [올드보이- 오대수]




살아있다면..언젠가...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날이올거야...그때까지만..살아있자...

- [에반게리온에서 신지가 레이에게]




깊이깊이 냉동시키고싶은기억이 있습니까?

- 막차시간



네 이름을 기억해.

- 하쿠




당신을 죽게 놔두지 않아!사람을 살리는것이 의사의 일이니까..!!

- 길티기어이그젝스 파우스트



괴로워도 웃어, 슬퍼도 웃어, 웃으면서 날려버려. 하하하하...

- 하레와 구우 중 구우의 대사.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고?아니야..

다른사람으로부터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때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거야..

여자마음은 바다보다 깊어서 남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든..

- 봉신연의 (달기)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 약점이 하나 생기는 것과 같다.

- 연상연하 中




「토오루는 토오루답게」

- 후르츠 바스켓, 혼다 쿄코(토오루 엄마)




「...눈이 녹으면 뭐가 되는 줄 알아?」

「 눈이 녹으면 봄이 돼요.지금은 아무리 추워도, 봄은 꼭 와요.」

- 후르츠 바스켓, 토오루와 하토리의 대화 中  


미디어몹의 술이부작 님이 구하신 글(퍼왔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겠다 싶어) 을 가져왔습니다. 나름 테러리즘에 대한 최근의 분위기를 익히는데 도움이 될 듯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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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ign Affairs 2006년 9/10월호에 수록된 "Is There Still a Terrorist Threat?"(원문보기)를 요약 번역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얘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글이 '포린 어페어스'에 실렸다는 게 중요하겠죠. 미국의 지식인이나 정치인들 대부분은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이라크 공격과 대테러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인 듯합니다. 이제 부시만 남은 걸까요.


누가 아직도 테러를 말하는가

존 뮐러(John Mueller)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정치학)



지난 5년간 미국인들은 계속해서 알 카에다의 테러가 임박했다는 경고를 들어왔다. 2003년에는 200여 명의 정·재계 안보 전문가들이 모여 2004년 중으로 9.11보다 더 파괴적인, 어쩌면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04년 5월에는 애쉬크로포트 법무장관이 몇 달 안으로 알 카에다의 공격이 있을 것이며, 테러 계획의 90%가 완료됐다고 경고했다. 그 해 가을에는 "대테러 담당자들은 알 카에다가 2004년 11월 선거 이전에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믿고있다"고 <뉴스위크>지가 보도했다. 그 "10월 기습공격"이 일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역량 부족으로 선거 전에는 공격을 할 수 없었지만, 몇 달 내에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는 성명에 관심이 쏠렸다. 이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것이라고 전해졌다.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창설 선언문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오늘날 테러리스트들은 사실상 모든 무기를 사용해 모든 곳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테러가 그렇게 쉬운 것이고 테러리스트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왜 이제까지 테러가 없었던 건가? 왜 테러리스트들은 백화점에서 총을 쏘고, 터널을 무너뜨리고, 음식에 독을 타고, 전깃줄을 끊고, 열차를 탈선시키고, 송유관을 폭파하고, 대규모 교통체증을 유발하지 않는 걸까? 안보 전문가들의 말대로라면 테러의 기회는 정말 셀 수 없을만큼 널려있는데 말이다.

미국 안에는 테러리스트가 거의 없고, 해외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으로 들어올 수단이나 의사가 없다는 설명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왜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 대신 미국에 테러가 없었던 것은 9.11 이후 신속하게 취해진 대응책 덕분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테러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던 사람들이다. 지난 5년간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9.11 이전 5년간 역시 테러는 없었다. 그 때 미국은 지금과 같은 대응책을 실시하지 않았다.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서는 총이나 폭탄을 가진 사람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2002년 워싱턴 DC 총격사건에서처럼. 따라서 정부의 대책은 이런 시도까지 모두 막아낼 수 있을만큼 완벽해야 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을 때 정부가 보여준 무능이나, FBI의 정보 교류·정리용 컴퓨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의 와해를 생각하면 이같은 설명은 억지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미국보다 훨씬 철저한 대테러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테러를 겪고 있다.

테러리스트가 미국으로 들어오기는 더 어려워졌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방문객과 이민자는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합법적인 외국인 입국자는 연 3억 명에 이르고, 매일 1천~4천 명의 밀입국자가 있다. 정부는 수십년간 많은 예산을 투입해 '마약과의 전쟁'을 치렀지만, 상당량의 마약은 정부가 압수하지도, 발견하지도 못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매년 대략 수백 명의 무슬림 국가 출신자들이 멕시코를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되며, 입국에 성공한 사람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테러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 9.11 기획자들은 중동 출신들의 미국 입국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여권을 가진 비아랍계를 이용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그렇게 확고한 계획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지금 여기 있어야 한다. 그들이 여기 없다면, 그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게으르거나, 의지가 없거나, 무능하기 때문이다.

테러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또다른 설명은 2001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알 카에다가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믿을 수 없다.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테러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알 카에다 훈련 캠프에는 가본 적도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자행했다. 그들은 13개의 원격 폭탄을 이용한 치밀한 테러를 계획했고, 그 중 10개가 예정대로 폭발해 191명이 죽고 1800명 이상이 다쳤다. 이 테러와 2005년의 런던 폭탄 테러는, 미국의 전 대테러 담당관 다니엘 벤자민과 스티븐 시몬이 말한 대로 테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휴대하기 좋고, 발견해낼 수 없는 이것만 있으면 테러를 할 수 있다. 바로 아이디어다."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에서 활동하느라 미국에서 테러를 저지를 인력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알 카에다 동조자들은 지난 3년간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터키, 영국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모든 테러 지원자가 이라크로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미국의 무슬림 공동체가 유럽 일부 국가와 달리 사회에 잘 통합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2005년에 대규모 공격을 당한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슬림 공동체가 사회에 잘 통합되지 않은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에서는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테러리스트라면 무슬림 공동체를 이용하진 않을 것이다. 이곳은 경찰 당국이 가장 강력히 테러 단속을 벌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9.11 테러 주도자들 역시 미국의 무슬림과 모스크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런 사실과 마드리드 열차 테러는 공격을 위해 광범위한 조직적 후원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알 카에다가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왜? 9.11 테러 준비에는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테러는 6개월만에 모든 일이 끝났다. (마찬가지로 티모시 맥베이의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사건도 계획에 1년이 안 걸렸다.)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도발을 생각하면 테러리스트들은 일정을 앞당겨야 하지 않는가. 그들이 그렇게 신중하다면, 그들은 왜 계속해서 또다른 공격이 임박했다고 주장하는가. 2003년에는 알 카에다 지도부가 오스트레일리아, 바레인, 이집트, 이탈리아, 일본,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예멘에 대한 테러 계획을 선언했다. 3년 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예멘, 요르단(및 예정엔 없던 터키)에서 폭탄이 터졌다. 하지만 명단에 있던 다른 나라들은 무사했다. 테러가 발생한 것은 비극이지만, 그 횟수를 생각하면 뻥치고 과장하는 이들은 대테러 담당관들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테러범들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위험하다."

9.11 이후 왜 미국에 테러 공격이 없는지에 대한 확실한 설명은, 현재 선전되는 테러 위협론이 극도로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2차대전 때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냉전 시대에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그런 위협으로 지목되었듯이 말이다.

FBI의 테러 위험 평가는 "내 생각은 이렇다. 따라서 그들은 이렇다"와 같은 식이다. 2003년에 FBI 로버트 뮐러 국장은 "현재 가장 큰 위협은 우리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미국 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다"라고 선언했다.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이런 확인되지 않은 조직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2002년 워싱턴 총격사건이나 2001년 탄저균 공격으로 지명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들 사건은 알 카에다와 관련이 없다). 하지만 9.11 테러범들은 미국내 알 카에다 조직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와 상황이 바뀌었는지는 전혀 분명치 않다.

뮐러는 2003년에 "알 카에다는 경고 없이 미국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낼 능력과 의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실로 조용히 지내온 셈이다. 그럼에도 뮐러는 흔들림없이 2005년에 똑같은 주문을 외운다. "나는 현재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정보 당국은 2002년 미국에 5천 명의 알 카에다 동조자가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2005년 FBI 비밀 보고서는 3년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강력한 작전을 폈지만, 몇 군데에서 일부 불량배를 검거한 외에는 단 한 명의 알 카에다 조직원도 검거하지 못했다고 실토하고 있다.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감시 프로그램에 의해 해외 통화를 도청당하고 있다. 이들 중 정보기관이 국내 통화 도청 영장을 청구할만한 혐의가 있던 사람은 열 명도 안 된다. 도청을 통해 어떤 혐의든지 밝혀져 기소가 된 사례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규모 도청·구금 프로그램 외에도, 매년 3만 장의 "국가 안보 영장(National Security Letters)"이 법원 심사도 없이 발부되어 기업들의 고객 정보 등 기밀 자료가 비밀리에 제공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수천 건의 수사가 있었으나 성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8만여 명의 아랍·무슬림 이민자의 지문을 채취하고, 또다른 8천 명은 FBI 조사에 불려가고, 5천명 이상의 외국인이 테러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수감됐다. 조지타운 대학 데이비드 콜(법학) 교수에 의하면 이들 중 테러범으로 처벌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정확히는 몇 사람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테러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대개 이민법 위반 등 다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중 일부는 정신병자거나 단순한 과대망상증 환자였을 뿐이다. 용접기로 브룩클린 다리를 무너뜨리겠다는 둥, 시카고에 갈 수만 있으면 시어즈 타워를 무너뜨리겠다는 둥, 캐나다 수상을 참수하겠다는 둥, 혹은 맨해튼의 터널을 어떻게 해서 저지대를 침수시키겠다는 둥.

- 외국의 대테러 진압 사례

알 카에다가 9.11 공격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것이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국가들은 서로 합의할 수 없는 주제들이 있지만(이를테면 이라크 전쟁), 이란, 리비아, 수단, 시리아같은 국가조차도 알 카에다 진압에 동참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 역시 알 카에다의 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9.11에 대해 대부분의 지하드 운동가 및 종교 지도자들은 알 카에다의 전략과 방법을 강력히 비판했다. 소련이 1979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땐 수만 명의 지하드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몰려갔지만, 2001년 미군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을 때 무슬림 세계는 침묵했다. 다른 지하드 운동가들은 9.11 공격이 크나큰 오산이었다며 알 카에다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9.11 이후 각국 정부가 보여준 광범위한 대테러 연대는 일련의 테러 사건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2002년 발리 폭탄 테러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대규모 작전으로 인도네시아의 주요 지하드 그룹 '제마 이슬라마야'는 심각하게 약화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3년 테러 공격 이후 급진파 성직자를 탄압하며 테러에 대한 조치를 강화했다. 2003년의 카사블랑카 테러 사건은 모로코 정부의 강력한 탄압을 불러왔다. 2005년 요르단 결혼식장 폭탄테러(테러리스트치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멍청한 목표물 선정이었다)는 모든 요르단 국민들의 공분을 야기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오사마 빈 라덴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종전 25%에서 테러 이후 1% 이하로 떨어졌다.

- 테러 위협을 과장하지 말라

해외에서 벌어진 대테러 수사 결과를 볼 때, 미국에서 수사 성과가 없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이 영리해서도, 정보 기관이 무능해서도 아니다. 미국 내에 테러리스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알 카에다의 존재와 능력 역시 과장되어 왔다. 테러리스트 몇 명이 엄청난 짓을 꾸미기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 가능한 건 아니다.

거기스 교수에 의하면 주류 이슬람 운동가들은 9.11 이전에 이미 대 이스라엘 투쟁을 빼면 무력 사용을 포기했다. 아직도 무장 투쟁을 옹호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이들 극소수 분파조차 '이단적' 이슬람 정권에 초점을 맞출 뿐, 유럽이나 미국같은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전체 운동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9.11은 알 카에다의 능력이 아니라 절망과 고립, 쇠퇴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9.11은 알 카에다가 여전히 힘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글은 미국에서 또다른 테러가 가능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알 카에다는 흉악한 운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라크 사태가 끝나면 거기서 활동하던 지하드 운동가들은 다른 활동 무대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보단 체첸과 같은 곳이 되겠지만. 미국이 이란을 일방적으로 공격한다면 이란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의 반미 투쟁을 지원하거나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미국의 국익을 손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잠재적 위험을 염두에 두면서도,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이외의 지역에서 알 카에다 등에 의한 테러 희생자 수는 미국에서 1년간 욕조에 빠져 죽는 사람 수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이 국제 테러로 죽을 확률은 8만분의 1이다. 이건 별똥별에 맞아 죽을 확률과 같다. 9.11 수준의 테러가 앞으로 5년간 3개월마다 일어난다고 해도 개인이 죽을 확률은 5천분의 1이다.

아직 이런 주장은 생소하게 들리지만, 이제까지의 증거로는 '만연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포, 알 카에다가 미국에 가하는 위협은 극도로 과장되었다는 판단이다. 9.11 이후 대규모로 확장된 안보 관련 기구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적으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소수를 박해하고, 다수를 감시하며, 대부분을 불편하게 하고, 모두에게 세금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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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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