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의 모순세계

  퇴근 전... 이번 주에 사용하기 위한 다른 선생님들의 모의고사 문제들을 검토하고 있다.

  확실히 지난 주말의 업무지적의 결과는 힘겨웠다. 그 일을 겪은 뒤로 사람들을 대하는 내 모습 스스로도 변한 느낌이고 수업에서도 억지 활력을 내고 있는 상태다. 혹시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은 저리 가라다. 목요일 저녁에 같은 과목 선생님들끼리 술자리를 하자는 부팀장의 제안에 웃으며 승낙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딱히 가서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테니...

  15일 휴강이 확정되었다. 14일 술자리 잠깐 하고 방에 돌아가 쉰 다음 15일 오전에 일어나서 문제작업이나 교재연구를 하고 오후되기 전에 대형서점 어디라도 가서 책들이나 문구류나 음반 등을 살피고 이후 잡힐지 모르는 약속에 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몸이 제대로 움직여줄지가 의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전날 책 세 페이지 읽다가 누웠는데 깨고 나니 출근채비를 해야 할 시간(핸드폰 진동음에 깨어나서 놀란 것이 오랜만이었다)...

  챙길 것은 많은데 무얼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다. 가져가도 제대로 소화하는 것도 없고... 당장이 이런데 11월을 넘어가면 거의 매주 시험에 면접대비테스트에 문제작업에 원서작성에... 지금 근근히 버티고 있는 심신이 그때까지 버텨줄 것인지... 어찌어찌 12월을 잘 치러내도 이곳에 대한 마음이 붕 뜬 상황에서 잘리는 쪽을 택하느냐 자발적으로 떠나는 쪽을 택하느냐도 적잖이 고민될 듯하다. 어차피 특목고 입시가능 딱지가 붙게 되면(그리고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는 제법 재산이 될 듯도 하니까) 강사로 적잖은 나이라 해도 자리를 구하는데 최악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하지만 평강사직으로 이 나이(유재석과 동갑이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애들은 단기기억주의자들... 항상 놀란다)에 일년단위로 새로운 자리를 구하느라 고생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올해는 일찌감치 그런 홀가분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낫겠지 싶다.

  어제 심판일을 마치고서 같이 배정된 분들과 돌아오는 길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뭐 오늘이 제 생일 - 솔직히 87년 6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이후 제 생일이 5년에 한번씩 오는 대통령 취임일과 겹치는 기분은 좋지 않아요 - 인데 그냥 헤어져서 방에 돌아와 개인정비하고 맞이하고 싶진 않았거던요. 제가 밥값 내겠다고 설레발쳐서 마침 오전에 타 구장에 배정되어 경기를 치른 후 오후에 저희 심판부 자체 강습일정을 소화한 다른 한 분을 콜해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결국은 4인분 밥값을 지불했습니다).
  동료 심판원 분의 차를 같이 타고 **대 근처의 식당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강습일정을 소화하고 오신 다른 분과 합세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글쎄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죠.

  뭐 지난 해 있었던(저희 카페에 올라오지 않았던) 고참 및 기존 심판원의 실수-오심에 대한 건, 현재 심판부를 움직이고 있는 실질적인 운영 주체의 현재를 보는 문제 의식 및 새로이 심판일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자 하는 신입 심판원에 대한 교육 진행 방식, 기존 심판원들에 대한 확실한 재보수교육 등에 대한 의지며 생각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근 십여 년 가까이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전국 및 서울 지역) 야구연합회 심판부라는 위상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다른 심판조직과의 차별성은(혹은 장점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는...
  가장 압권은 이것이었으려나요... [4심제에서 1루에 주자가 나가 있을 때 1루심이 어느 위치에 자리잡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고참 심판원이 [3심 내지 4심제에서 3루심이 타자주자 내지 1루주자가 안타 외 기타 여러 상황에서 3루로 진루를 시도할 때 어느 포지션을 선정하는 것이 옳은 포메이션인가]를 주장하는 것... 제가 그다지 많이 볼 기회도 없던 MLB 경기(우리나라 프로야구 경기는 무시)에서 3루심들의 그럴 때 포지션은 그야말로 "정형이 없습니다." 그럴 수가 없죠. 어느 곳 한 군데가 제일 좋은 곳이라고 해서 그 위치에 맞게 송구가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자들의 슬라이딩이나 야수의 위치도 그렇고... 하지만 주자가 1루에 있을 때는 상황이 하나잖아요. 바로 1루 견제! 그것을 정확하게 보려면 어느 정도 1루에 근접해서 투수의 견제 모습과 투구 모습을 살피고 1루 베이스에서 견제 플레이가 발생했을 때 태그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거리와 각도를 잡아야 하는데 1루 베이스 뒤 10m 뒤에서 꼼짝도 안하는 분이 3루심의 고정 위치를 물어보다뇨...;;; 뭐 공부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지만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생각에 밥이 넘어가는 위와 장 속에서 온갖 허탈한 쇠소리가 우러나더라는...

  사실 요 2주 간(그렇게나 새벽-아침 영하의 날씨에 무거운 장비가 들은 바퀴 가방을 끌고 나서는 것이, 심판복만 착용하고 아침 해가 뜨고서 한참이 지난 오전 9시 경에 강습 장소에 도착해 오전은 규칙 토론이네 실내 교육이네에 보낼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부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자체 강습에 참여하지 않고 배정을 받겠다고 배정담당 총무님께 요청한 까닭은 지난 12월 학원을 나온 뒤 새로이 구직이 되지 않아 슬슬 재정 사정이 악화되지 않을까를 걱정한 개인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위 문단에서 느껴지는 문제에 대해 우리 심판부의 운영 주체들이 "말로만 걱정할 뿐 뭔가 구체적인 행동은 오히려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 단선적인 모습이다"고 느끼기 때문도 있었답니다. 그러한 부분을 지난 해 교육 때부턴가 느끼기 시작했는데 지난 해 진행되는 모습 속에서 별로 발전되는 느낌이 들지를 않더라고요.
   앞으로 자체 강습을 시행함에 있어 일정 문제(내년부터는 1월에 교육을 실시하는 쪽으로 결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와 더불어 교육 커리큘럼과 평가 시스템을, 그간의 모습보다 더욱 체계화하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는 있는데 - 사실 다른 심판부 조직들 중에는 그러한 노력을 눈에 보이게 가시화하는 곳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아는데...  - , 정작 제 자신이 보태기에는 의지가 약해지기 시작하고 있네요. 어쩌면 제 스스로가 그동안 "운영-관리자"로서의 입지를 가지고자 하지 않았기에 따르는 원죄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이젠 내부 비판자로서 의견을 제시하기도 지쳐 버리고(간간이 전화 상으로 투덜대는 정도까진 하지만 그 선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죠) 애시당초 학원 강사 쪽의 일에 접어들면서 정기적인 저녁 모임에 참석도 하지 못하고 결국 일 년 내내 모임 한 번 나가보질 못하니 발언할 기회도 없이 그냥저냥 지나가야 하는 입장...

  어쩌면 지금 일하기로 잠정 결정된 학원의 일정대로 따라갈 때 여름 이후로(여름 이전은 시험 기간 중 보충일정 잡힐 때 빠지는 통상의 일정대로 가겠지만) 수업이 더 많아져서 아예 심판일정에서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을 더욱 기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판으로서의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서로 간의 보조는 점점 안 맞아지는데 마음마저 조직에 마음붙이지 못하는 꼴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려니 속이 터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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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의 모순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곡과 모순에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신감은 없어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이의 이야기...
by trotz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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